"도덕적 책임 있는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으니 탄핵이라는 정치적 문제가 끼어든 것"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는 결국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이 작년 처음 세상에 드러났을 때 보수우파의 최전선에서 ‘대통령 하야’ 주장이 나왔다.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씨는 당시에도 “이미 대통령이 도덕적 권위를 잃었으니 사임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장미 대선’이라는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복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으니까 탄핵이라는 정치적 문제가 끼어들게 됐고, 당초 정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풀 문제가 아닌 것을 그렇게 해결하려다보니 광장에 촛불을 든 사람, 또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나갔다”며 최순실 사태의 본질을 요약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결의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모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원래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인데 사익을 챙긴 물증 하나 없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파면을 선고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헌재의 마지막 선고에서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거부하고 헌재에 불출석한 것은 스스로 헌법수호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라고 한 부분을 비판하며 “헌재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복 씨는 “박 전 대통령의 검찰과 헌재 불출석은 어리석은 행위였을지 몰라도 위법적인 행위는 아니다”며 “이런 식으로 박 전 대통령의 좁은 소견의 인사와 국정 운영이 스스로를 망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 파면 사태에 대해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살아남을 길만 찾았다. 그래서 결국 죽는 길로 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라를 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그 순간부터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는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우파 진영은 당시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중에서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었다. 따라서 대통령 파면으로 일각에서는 ‘보수의 위기’를 얘기하기도 한다. ‘차기 대선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를 묻는 질문에 복 씨는 “지난 대선 때도 보수우파들은 ‘박 대통령이 안 되어도 큰일이지만 되어도 큰일’이라는 말을 했었다”며 “대개 선거란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수의 가치가 대한민국을 지켜온 것은 사실이지 않나. 보수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을 기준 삼아 다음 대통령을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복거일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작년 처음 세상에 드러났을 때 보수우파의 최전선에서 ‘대통령 하야’ 주장이 나왔다.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씨는 당시에도 “이미 대통령이 도덕적 권위를 잃었으니 사임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사진=미디어펜


-지금 보수의 위기인가.

“원래 보수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보수란 말 그대로 지킨다는 것 아니냐. 자유민주, 시장경제 등 보수가 제일 낫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원래 중요하니까 신선하지가 않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뒤집어엎는 게 호소력도 크고, 매력적이지 않겠나.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보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뽑는게 가장 낫겠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보수가 뽑은 대통령이 통치를 잘 못했다고 보수가 지향하는 체제가 틀렸다고 할 수 있나.  

그렇지는 않다. 지금 보수의 위기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과도한 반응이다. 정말 위기인데도 위기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위기가 아닌 것을 사실보다 크게 평가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지난해 최순실 사태 직후 대통령 하야 주장을 왜 하셨나.

“지도자가 도덕적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그때부터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권위를 잃었으니 나라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온 국민이 경악하는 최순실 사태가 벌어졌다. 모두들 박 대통령이 왜 그랬을까 의아해하고 충격받았다. 대통령이 권위를 잃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 나라가 위험해진다. 이럴 경우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도덕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버텼고, 탄핵이라는 법적 차원이 전개됐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고 버티다보니 이를 정치적·법적으로 해결하려는 탄핵 절차가 시작됐다. 여기에 보수우파까지 동참했다. 

이때 보수우파는 양 갈래로 각각의 다른 목적이 있었다. 일부 보수는 차기 대선에서 ‘반기문 대통령’을 기대하며 박 전 대통령을 버렸다. 일부 보수는 ‘헌재 기각’을 기대하며 시간벌기로 탄핵을 이용했다. 

하지만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 대통령을 버린 보수는 탄핵을 선거에 이용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매우 수준 낮은 처신이었다. 탄핵으로 시간벌기에 나선 보수도 도덕적으로 옳지 못했다. 

이것이 이번 사태에서 박 전 대통령과 보수우파가 저지른 잘못이다. 박 대통령이 사임했더라면 그의 도덕권 권위는 회복됐을 것이고, 보수우파도 스스로 무너지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탄핵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덕적 문제를 법적으로 다루려면 문제가 생긴다. 가령 세월호 문제를 보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사고현장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시를 내린다면 잘못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과다한 화물선적 등 위법적인 문제와 구조작업의 미비로 수백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다. 이 사건에서 박 대통령의 도덕적 책임은 크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 법은 도덕에 바탕을 두지만 법이 곧 도덕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은 탄핵소추안에도 처음 포함됐지만 이후에 빠졌다. 

또 지난 특검 수사로 박 대통령의 청렴성이 오히려 드러났다고 본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서 수조원대의 개인비리가 나오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특검이 밝힌 것 가운데 박 대통령이 사사롭게 개인적으로 취한 이득은 없다. 사익을 취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제3자 뇌물이니 경제적 공동체와 같은 생소한 용어들이 박 대통령의 혐의가 됐다. 무엇보다 검찰의 공소장으로 대통령 탄핵을 하는 게 세상에 어디 있나. 법원의 재판 결과없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탄핵시켜버린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무능력했나.

“사실 사태 초기에 법무부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퇴하면서 이번 사태의 결말이 어떨지를 보여주는 시그널이 됐다고 본다. 당시 아마도 박 전 대통령이 저 분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을 잘못 쓰는 우를 범해왔다. 탄핵심판을 맡은 변호인단의 행위에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검찰 발표를 놓고 터무니없다고 한 것, 검찰에서 증거가 나온 것까지 모조리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답변을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변호인단의 법률적인 조언을 듣기보다 자신이 믿는 확신을 고집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 현실을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태극기집회에 보수우파가 몰려간 까닭은.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었다. 태극기집회의 본류는 탄핵 자체를 반대한 시민들이었다. ‘탄핵 반대’의 외침은 ‘박 대통령 탄핵 반대’가 아니라 ‘절차상 문제 있는 탄핵 반대’였다. 

무슨 절차상 문제가 있었냐 묻는다면 첫째 검찰의 공소장으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예가 없다. 둘째 특검수사나 국정감사 청문회가 끝나기도 전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결의됐다. 셋째 국회에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대통령 본인 해명도 안듣고 반대토론도 없었다. 넷째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도 편파적이었다.

분명히 이번 박 대통령의 탄핵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는 태극기집회였지만 제대로 어필이 안됐고, 전혀 반영도 안됐다. 이유는 이번 사태에서 유난히 언론이 편파적이었다. 젊은 기자들이야 진보적일 수밖에 없고 박 대통령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메이저 언론사 논설실마저 등을 돌렸다.”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시나.

“촛불집회는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노동조합이 주도한다. 전교조, 공무원노조가 대표적이다. 이들 노조는 돈과 조직이 탄탄하다.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태극기집회와 상반된다. 태극기집회에서 가장 큰 규모가 박사모이지만 이 모임도 회비로 운영된다.” 

-앞으로 보수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 때 보수우파는 좌파에 처음부터 밀리면 안된다. 밀리지 않으려면 보수우파는 그 누구보다 도덕적이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사태가 터졌을 때 곧바로 물러났더라면 오히려 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다. 국회에 제안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총리를 임명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버리는 것을 선택했더라면 나라는 안정됐고, 자신의 도덕적 권위도 회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살아남을 길만 찾았다. 그래서 결국 죽는 길로 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라를 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 순간부터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는 영원히 사라졌다. 보수우파는 이를 교훈삼아야 한다.” 

-차기 대선을 전망해달라.

“지난 대선 때에도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박 대통령이 안 되어도 큰일이지만 되어도 큰일’이라는 말이 있었다. 심지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보수가 망하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었다. 즉 당시 보수우파는 차악을 선택했던 것이다.

좌파에서 나온 후보라도 좋은 후보라면 다음 정권을 맡겨야 한다. 그런데 도덕적으로 불리해진 보수 입장에서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친북 성향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또 지난 정권을 되돌아볼 때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좌파정부 때 부패는 더욱 심했고, 안보 위협에 경제적으로도 활력을 잃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 역대 정부의 경험을 거울삼아 지금 나온 대선후보들 가운데 가장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문재인 후보는 노동조합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집권하면 좌파정권으로 규정된다. 민주당은 민주노총의 정치적인 무기(political arm)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돈 많고 파업권이 보장된 데다 방대하고 정치적 활동까지 보장된 유일 조직이다.
 
그런데 이런 노조를 기반으로 한 좌파정권이 들어선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이란 판단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우파는 이런 인물이 아니라면 그 어느 당 출신이라도 능력 있는 대통령후보라면 지지를 보낼 수 있다.”

-중도보수 진영의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후보를 평가한다면.

“보수의 본류인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로 홍준표 경남지사가 뽑혔다. 난세에는 홍 지사처럼 모진 면이 있는 사람이 낫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이고 정서라고 생각한다.

중도보수 후보라면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단연 포함시켜야 한다. 만약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호남을 우로 돌리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가장 큰 공적이 될 것이다. 

차기 대선의 이슈가 ‘통합’이더라. 이는 ‘관성적인 것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역사적으로 호남은 우파였다. ‘대구폭동 사건’ 등을 볼 때 영남이 오히려 좌파였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호남=좌파’라는 공식이 등장했던 것이다. 영남 출신의 안 후보가 국민의당 대선주자로 나선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려면 ‘호남은 좌파’라는 화학적 공식을 떼버리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안 후보의 정치적 성장을 높게 평가한다. 대개 인간은 무너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좌절하기 마련이지만 끝내 우뚝 선 안 후보의 성공 비결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본다. 특히 지도자로서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높이 사고 싶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늘 배우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의 실패를 막기 위한 비결이란. 

“대선 때 남발한 공약을 다 지킬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박 전 대통령도 취임 후 1년간 자신이 내건 공약을 지키려다가 허송세월하지 않았나. 취임 초 1년간 경제민주화를 실천해보려다가 경제가 몰락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노동개혁을 밀어붙였어야 했다. 

과거 김대정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어땠나. 그때 기업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또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날씨가 조금 궂어도 대통령을 욕하던 시기였다.    

대통령 후보 때 내걸었던 공약은 비록 당선에 도움이 됐을지언정 막상 집권하면 버릴 공약은 버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공약은 부도수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경선 과정에서 남발한 공약은 모두 버려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을 다 지키려고 하면 나라가 거덜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