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수록 보수주의 원칙·철학 점검 중요…시간 촉박 이달 말까지 교통정리해야
   
▲ 조우석 주필
참 어려운 국면이다. 민심 이반에 더해 '난쟁이 후보' 난립까지 겹친 보수진영의 현상황이 그러한데, 그럼에도 지금의 백가쟁명을 분열-반목이라고 예단하는 건 빠르다. 대선 패배를 미리 예상할 필요도 없다. 아직은 시간이 없지 않기 때문인데, 지금의 논의를 늦어도 이달 말 이전 모양새 있게 교통정리할 수 있다면 반등 효과도 내다볼 수 있다.

후보등록을 마치고 오늘부터 본격화된 '5.9 대선' 레이스에서 보수진영의 선택은 두 갈래로 요약된다. 흐름의 한 자락을 쥐고 있는 건 국민의당 안철수에 대한 전략적 투표론이다. 그건 최악(문재인)보다는 차악(안철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다.

당장 일도양단의 해법 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은 물론 새누리 조원진, 통일한국 남재준 등 보수진영의 후보 4명의 지지율 모두를 합쳐도 10% 남짓인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자는 제안이다. 홍준표를 찍으면 안철수에게 갈 수 있는 표를 갉아먹어 결국 문재인이 당선된다고 현실론자들은 걱정한다. 설득력이 큰 분석이지만, 정반대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당장의 판세는 불리하지만, 홍준표의 보수진영 표만 잘 결집할 경우 문재인-안철수를 어렵지 않게 제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얼치기 좌파 안철수를 믿을 수 없는데다가 이번 대선은 노태우가 김대중-김영삼을 각각 누르고 당선된 87년 대선과 비슷한 양상이라는 게 저들의 논리다.

대통령 탄핵 이후 6개월, 여론시장이 거의 붕괴된 상황에서도 '어게인 87년'이 가능할까? 그게 걱정이지만, 지난 4.12 재보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압승하면서 이 논리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어차피 유권자는 40%(보수)-40%(좌파)-20%(중도)인데, 투표일 막판에는 더욱 그렇게 전개된다는 셈법도 그럴듯하다.

   
▲ 홍준표 유승민 조원진 남재준 등 보수진영 후보 4명의 지짖율을 모두 합쳐도 10% 남짓이다. 그야말로 난쟁이 후보의 난립이다.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시민사회는 물론 보수정당 전체를 아우르는 교통정리 가 늦어도 이달말까지는 이루어져야 한다. 사진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11일 안보 행보의 일환으로 경기도 파주 판문점을 방문했다./사진=홍준표 후보 캠프

이 두 갈래 입장과 별도로 태극기 신당 두 개도 변수다. 각각 조원진-남재준을 후보로 추대한 새누리-통일한국의 분열 자체가 태극기 민심에 대한 모독이자, 표 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개탄이다. 여기까지가 보수진영 앞에 주어진 불리한 상황인데, 당장 일도양단의 해법은 없다.

다만 늦어도 이달 말 이전까지 '각개약진 앞으로!'가 허용되며, 그때는 후보별 지지율과 보수주의 원칙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공감대가 형성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시민사회는 물론 보수정당 전체를 아우르는 콘트롤 타워가 작동할 경우 교통정리 효과는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점에서 필요한 건 대선 못지않게 '그 이후'를 내다보는 통찰이 아닐까? 분분한 선거전략-선거공학적 고려와 별도로 보수주의 철학과 원칙을 잘 견지해야 하며, 너른 시야로 대선 이후 펼쳐질 상황까지 훑어내야 옳다.

행랑채 대신 천막 칠 각오부터

즉 우파 시민사회와 자유한국당은 공히 이번 대선에서 행랑채 하나 얻어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최소한 한 번은 물어야 옳다. 최악의 경우 천막당사를 차리거나 풍찬노숙하며 몇 년을 버틸 수 있다는 각오도 중요하다. 그래야 최악의 결과를 만났을 때 허둥대지 않고, 다행히 승리를 거뒀을 때도 경거망동하지 않을 수 있다.

최악의 결과란 물론 문재인 집권을 말한다. 그렇게 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본래 한 몸인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빠르게 흡수되는 상황도 가능하고, 두 당 사이의 선명성 경쟁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국면도 예상된다. 민주당이 1~2년 내 자중지란에 빠져드는 국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친노세력이 제한된 자리를 놓고 치고받거나, 한반도 위기 때 대처 미흡으로 국민이 등 돌리는 게 그 일례다.

이때 자유한국당이 어떤 당당한 처신을 할 수 있을까? 보수정당이 밑천까지 털리며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말려들어가지 않으려면, 그리고 민주당 위기 국면 때 치고 나오려면 지금부터 앞으로 1~2년과 그 이후까지 준비해야 옳다. 보수주의 정당의 DNA를 확보하고 지키는 준비과정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 안철수가 당선되더라도 1~2년 정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늦춰지는 효과가 있을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안철수에 대한 전략적 투표가 됐건, 홍준표에 대한 몰빵이건 간에 '대선 그 너머' 3년 뒤 총선, 그리고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누군가는 준비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대선 그 이후' 펼쳐질 상황 전망

사실 차악이라는 안철수의 승리도 그 이후도 생각한 것만큼 개운한 건 전혀 아니다. 안철수 집권시 자유한국당에겐 국민의당과 정책공조나 연정의 길이 부분적으로 열리겠지만, 원천적으로 제한된 협력관계다. 안보 분야나 대한민국 회생 처방 등의 고차원의 공조는 힘들다. 호남당이란 성격, 상왕(上王) 박지원이란 존재 등은 원천적 한계다.

즉 안철수가 당선된다면 1~2년 정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늦춰지는 효과가 있을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지금 나도는 안철수에 대한 전략적 투표론이란 문재인 집권보다 덜 가혹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사항을 전제로 한 건 아닐까?

반복하지만 이 땅에 진정한 보수주의 정당을 탄생시키는 정치실험에서 코앞의 대선 자체가 최종목표일 수는 없다. 안철수에 대한 전략적 투표가 됐건, 홍준표에 대한 몰빵이건 간에 시선을 넓히자. '대선 그 너머' 3년 뒤 총선, 그리고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누군가는 준비해야 한다.

그걸 위해 뜻있는 정치지망생을 모으고 교육시키는 작업에도 눈을 돌려야 옳다. 이런 작업을 마저 해놓아야 설혹 이번 대선판에서 참패를 한다 해도 재기를 노릴 수 있고, 승리했을 경우 준비된 집권이 가능하다. 더욱이 이번 대선은 통상적인 정치 프로세스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지금은 국가정체성의 위기 국면임을 재확인한다. 선거를 통한 자발적 체제변혁 유도와, 그걸 통한 국가전복 가능성은 여전하다. 문재인 집권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그 무시무시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분기점이다. 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둔 채 이달 말까지 최선의 백가쟁명과 교통정리가 이어지길 새삼 기대한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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