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연초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주도했던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다시 한 번 업계 업무범위를 놓고 예민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지급결제‧외국환업무 등을 놓고 어느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 인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에 따르면, 전국은행연합회(은행연)와 금융투자협회(금투협)가 또 다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재현할 조짐이다. 각각 은행권과 금융투자협회를 대표하는 두 기관의 대표인 황영기 금투협회장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2월 이미 한 차례 언쟁을 한바 있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은행의 신탁업 진출 등이었다. 황영기 금투협 회장은 2월 한 간담회에서 “은행과 보험에 비해 금융투자업계가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그러자 약 2주 뒤인 같은 달 20일 하영구 은행연 회장이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라며 응수했다. 은행의 신탁업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금융투자업계의) 전업이 아니라 겸업으로 가는 것이 옳으며, 종합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대응했다.

통상 각 기관장들이 타 업권을 공개적으로 ‘디스’하거나 공개석상에서 타 기관장을 비판하는 일은 국내 정서상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두 기관장이 연초부터 설전을 벌일 만큼 증권업과 은행권의 ‘영역 갈등’의 골이 깊다는 평가가 많았다.

불과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은행연합과 금투협은 다시 한 번 업무 영역을 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논란은 은행연합이 지난 24일 한 언론의 기사와 관련해 금융권의 ‘업무 영역’에 대한 견해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은행연합은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해 “법인지급결제의 경우 증권사의 은행화 및 재벌의 사금고화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한 결과”라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 중 법인자금 지급결제업무를 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은행연합은 “외국환 업무의 경우 해외송금과 같은 외국환업무는 결제시스템의 안정과 직결돼 있어 예금취급기관인 은행만 영위 가능토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면서 “증권사가 이를 사례로 들어 외국환 업무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금융투자업자로서는 적절치 않은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금융제도의 근간이 되는 전업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금투협은 25일 즉각 보도참고자료를 내며 응수했다. 자료에서 금투협은 “각국마다 은행과 증권업의 겸영 가능성 차이가 있다”면서 “미국과 일본 등은 증권사의 은행자회사 소유가 가능해 증권사가 직접 라이센스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이는 미국과 일본 등은 증권사가 은행 자회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라이센스를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또 금투협은 “해외의 유수 IB처럼 IB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급결제와 외환 등의 업무를 영위할 수 있느냐가 초점”이라면서 “캐나다의 경우 2011년 캐나다지급법을 개정해 증권사도 지급결제를 할 수 있게 했으며, 유럽연합(EU)은 2007년, 일본도 2010년에 각각 지침 제정과 자금결제법 시행으로 은행이 아니더라도 지급결제를 허용했다”고 새로운 팩트를 제시했다. 

외국환 업무에 대해서도 금투협은 “미국의 금융규제 체계상 증권사의 외화(현물환) 환전과 송금을 제한하는 법이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영국도 지급결제기관으로 등록·인가시 외화 환전과 송금업무 취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논쟁 역시 어느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인지에 대한 싸움으로 귀결될 조짐이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논쟁은) 겉으로 드러난 팩트만 볼 것이냐, 그 팩트가 성립한 맥락을 볼 것이냐의 논쟁”이라면서 “IB 육성 과정에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생길 논란이었던 만큼 생산적인 결과로 수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