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풀고 국민 신뢰해야 준법정신 생겨,독립적 규제개혁기구 신설을

   
▲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어느 국가나 조직이나 구성원에 대한 통제가 강한 곳은 대개 구성원들을 관리자가 믿지 못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관의 민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부규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한 배경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관리들이 왜 민간을 그토록 불신하게 되었는가? 우리나라 정부에는 유별나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가? 아니면, 우리나라 사회가 아직도 정직성과 성실성에 문제가 있는 사회인가?

요즘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교통질서만 보아도 단속이 없을 때는 아직도 끼어들기, 갓길운행, 신호위반이 만연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교통질서가 이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 조세, 교육, 건축 같은 분야의 질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직성과 성실성의 문제는 국민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규제와 사회제도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부규제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제도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우대 받고 보상 받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정부규제는 모든 국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비현실적인 규제도 너무 많아 환경 식품위생 건축 안전 등의 규제는 지킬 수 없는 규제가 많다. 정부도 국민들을 신뢰하고, 규제를 풀어야 국민들의 준법정신과 자율능력도 함양된다. 국토부 서승환 장관(맨오른쪽)이 국토교통 규제개혁방안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주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부규제들이 모든 사람들을 일단 잠재적 범법자로 전제하고 만들어져 있다. 수많은 인허가제, 까다로운 등록기준, 복잡한 절차, 엄격한 자격제한 등이 모두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단 믿어주고 나중에 위반하는 사람을 잡아 엄하게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다. 소수의 잠재적 위법 행위자를 잡기 위하여 다수의 정직한 사람들까지도 도매금으로 엄한 감시와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종의 단체기합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성실해야 할 유인이 없다. 정직하고 성실해 보았자 우대 받거나 보상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 똑같이 피동적인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고 창의와 자율은 발붙일 곳이 없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의 규제들은 비현실적인 규제들이 많아, 지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환경, 안전, 건축, 식품위생 등에 관련된 규제에는 집행하는 사람이나 규제 받는 사람이나 어차피 규정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명목상 유지되는 규제가 상당 수 있다. “준법투쟁”이 가능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식이든 법을 위반하지 않고는 살기 어렵게 되어있다. 이런 상황 아래선 요령 좋고 배경 좋은 사람들만 법망을 빠져나가고 정직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본전은 커녕 손해를 보게 된다. 어쩌다 걸린 사람은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들테니 정직하고 성실해야 할 이유가 더욱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많은 규제제도가 정직성, 자율능력, 준법정신을 파괴하는 구조로 되어있고, 그 결과 관리들은 더욱 국민을 불신하고 더욱 강압적인 규제제도를 도입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규제현실이 문제가 많고 획기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온 국민이 동의하면서도 정작 규제를 풀자는 논의에 들어가서는 바로 이런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해답 없는 논쟁에서 규제개혁이 맴돌고 있는 이유다.

그 동안 규제개혁이 잘 안된 것은 공무원들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피규제자들의 정직성과 자율능력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큰 장애요인이다. 검사 눈에는 피의자만 보이고, 의사 눈에는 환자만 보인다고, 평생을 한 분야의 규제만 담당하던 공무원에게 그 분야의 기업인이나 민간인들은 대부분 틈 만나면 딴 생각을 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보는 금융회사들이나, 교통당국이 보는 운수사업자들이나, 교육당국이 보는 학교재단들이나, 심지어는 중앙정부가 보는 지방자치단체도 다 마찬가지다.

이런 공무원들에게 스스로 규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되지도 않을 일이지만, 규제담당 공무원들도 괴롭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규제를 풀었다가 잘못되면 그 책임과 뒷감당은 모두 자기들이 져야 한다면, 누구라도 규제개혁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밥그릇 때문만이 아니다.

결국 규제개혁은 별도의 개혁기구가 규제 공무원들을 통제해야 실효성이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정부 내에 예산, 인사 조직에 관해서는 주무부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제기능이 존재한다. 예산이나 조직은 방임하면 무제한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규제도 마찬가지다. 그냥 놓아두면 자꾸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예산이나 조직 처럼 전담 통제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규제 공무원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민간을 불신하기 때문에 규제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자율능력이나 준법정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규제를 풀고 국민을 믿어줘야 자율능력과 준법정신이 생기는 것이다. KTX가 표 검사를 하지 않고, 공항 입국시 세관신고서 내용을 믿고 짐검사를 면제해줬다고 해서 무임승차나 밀수가 급증했다는 증거는 없다.

민간의 자율능력은 자율화를 통해 얻는 것이지, 결코 규제를 풀어주기 위한 전제가 아니다. 초보운전이기 때문에 사고가 두려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영영 초보운전일 수밖에 없듯이, 시행착오가 두려워 기업과 국민을 계속 규제로 묶어 놓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타율적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이 글은 한국경제에 게재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