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은 숨겨진 진실 드러낸 사건…소모적 대립 끝낼 때가 지금
   
▲ 조우석 주필
아니나 다를까. 저네들이 얼마만큼 집요한 세력인가를 요즘 새삼 보여주고 있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공격이 대선 한켠에서 심상치 않다. 5.18재단이 회고록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을 포함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란다. 그전 4월 중순 5.18단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하 전두환) 자택 앞에서 회고록 판매중단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30년 핍박도 모자라 회고록 출판도 막겠다는 것인가? 그건 전체주의적 망령(亡靈)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인데, 이런 와중에 <전두환 회고록>과 <당신은 외롭지 않다:이순자 자서전> 에 대한 서평을 쓴 건 나로선 적지 않은 모험이었다. 

회고록도 막겠다는 전체주의 세력

   
그럼에도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신은 분명하다. 회고록에는 10.26과 12.12에서 광주5.18에 이르는 1980년대 현대사의 새로운 진실이 담겨있고, 때문에 전두환을 역사의 죄인인양 부르르 떠는 통념은 큰 실수란 점이다. 그래서 문제다. 그럼 이후 지금까지 한 세대 넘는 운동권과 좌익의 뒤틀린 현대사 인식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들은 본디 실체 없는 '유령과의 싸움'을 진행해온 셈이고, 그걸 전제로 한 현대사 인식이란 거대한 허구의 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광주5.18만 놓고 보자. 한 세대 넘게 저들은 이걸 빌미로 공권력-국가를 무한증오하고, 현대사를 저주해왔지만 그것도 원인무효에 불과하다. 

5.18이 어느 순간 폭동-내란행위에서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단이 바뀔 순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대법원 판결도 있다지만, 그건 사법적 잣대이자 얼치기 정치재판에 불과하다는 걸 세상이 다 안다. 저들은 오래 전 관련기록을 유네스코에 제출하고, 광주를 성지로 만들면서 '굳히기'에 들어갔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특히 5.18유공자 문제가 대선 쟁점으로 등장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의 본격적인 문제제기다. 즉 두 차례 서평과 별도로 회고록의 현재적 의미를 점검해보려 한다. 점검은 세 가지 차원이다.

첫째 전두환에 대한 지난 30년의 핍박과 박근혜 탄핵은 구조에서 완전히 닮았다는 점이다. 둘째 여기에서 축적된 무서운 파괴력이 이번 5.9대선에서 어떻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가를 살펴야 이번 대선판의 구조가 보인다는 걸 짚으려 한다. 셋째 그래서 오늘의 결정적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인데, 왜 80년대 이후 싹튼 반(反)대한민국 움직임의 싹을 전두환은 집권 당시 제거하지 않았는가? 

   
▲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가 두 손을 잡고 남편 등에 기댄 채 산보를 하고 있다.

전두환 죽이기, 박근혜 탄핵은 완전 닮은꼴

바로 그게 문제인데, 첫째 전두환 핍박과 박근혜 탄핵이 닮은꼴이란 건 금세 확인된다. 지난해 10월 이후 지금까지 광화문 촛불 현장에서 우리가 본 게 무엇이었던가? 정말 살기등등했다. 목 잘린 채 피 흘리는 대통령 얼굴 모형, 대통령에게 사약을 들이붓는 퍼포먼스 그리고 기요틴(단두대)과 장례행렬… .

그건 "중국 문화혁명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의 광기"(양동안 <벼랑 끝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게 이 땅 좌익들의 ‘30년 노하우’였다는 것, 그리고 시작은 전두환 죽이기란 점이다. 즉 우리가 기억하듯 그가 청와대를 떠나는 순간 이른바 5공 청산이란 구호 아래 백담사로 몰아넣었고, 이후 재판-사형선고-투옥-재산몰수를 반복해왔다.

전두환 죽이기가 퇴임 이후 진행됐다면, 박근혜 탄핵은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내린 폭거다. 그만큼 좌익세력에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초미의 위기상황이다. 애시당초 그런 분위기를 만든 건 다름 아닌 법원이었다.

김영삼 시절 인 5.18특별법 재판 때 대법원은 당시 광주 시위군중이 준(準)헌법기관이고, 계엄군은 내란집단이며, 전두환은 내란 수괴(首魁)라는 터무니없는 판결을 하지 않았던가? 폭도에게 왕관을 씌워준 최악의 정치재판 이후 2002년 효순-미선양 선동, 2008년 광우병 파동이 잇달았고, 그게 드디어 지난 3월 헌재의 현직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이뤄졌다. 

이건 전두환-박근혜라는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을 죽이고, 대한민국을 마비시키려는 음모가 맞고,  ‘보이지 않는 손’인 평양 통전부(통일전선부)까지 긴밀하게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걸 안다면 이 거대한 음모 앞에 우린 전율치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명제를 재확인한다. 즉 여기에서 축적된 무서운 파괴력은 5.9대선의 저변에서 맹위를 떨치는 중인데 그게 87년 체제의 종언 즉, 문재인 식의 '완전히 새로운 나라 만들기'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필자인 나는 오래 전부터 이번 대선을 포장일뿐 내용은 체제전쟁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 저들 매체가 그걸 선언한 바 있다. "이번 대선은 87년 체제 또는 박정희 체제 이후의 축적된 적폐를 일신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선거다." "4.19혁명이 미완에 그쳤고, 1987년 6월 항쟁이 집권세력과의 타협으로 끝났다면 촛불혁명은 살아있는 권력 처벌에 이르렀다."(‘민중의 소리’2016년 12월9일, 2017년 3월31일)

   
▲ 1882년 11월 8일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이순자 여사가 37차 JCI 세계대회 참가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 다과를 함께 하며 환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젠 완전히 새로운 나라 만들자?

저들이 공언하는 87년 체제의 종언, 문재인 식의 '완전히 새로운 나라 만들기'란 무얼 뜻할까? 자명하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인민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로 가자는 얘기다. 전두환-이순자 회고록은 이 과정을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그래서 오늘 셋째 질문을 던진다. "왜 80년대 이후 싹튼 반(反)대한민국 움직임의 싹을 전두환은 제거하지 않았는가?" 그게 아쉽고 안타깝다. 전두환은 회고록 머리말에서 "나는 퇴임 이후 그 모든 매도와 능멸과 저주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던 내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언명했지만, 그게 못마땅하다. 그건 개인적 자부심일뿐, 대한민국 전체를 살피는 책임있는 시야는 못된다.

혹시 그가 전두환 죽이기 음모와 5공 청산이란 구호 뒤에 숨은 반체제-반대한민국 기류를 이런저런 이유로 놓쳐온 건 아닐까? 사실 지난 30여년 운동권이 부채질해온 정치보복과 인격살인, 그걸 통한 한국사회의 황폐화 현상이란 모두 1980년대 그의 재임시기에 시작되지 않았던가?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인 민노총이 결성된 건 김대중 시절인 1995년이지만, 전두환 집권 시인 6.29선언 전후부터 이른바 ‘혁명적 노동운동’이 이미 활개를 쳤다. 전교조 역시 89년 출범 훨씬 이전부터 형성된 80년대 민중문화운동에 뿌리를 둔다. 왜 전두환은 선제적으로 이런 상황에 대응하지 못했는가? 또 있다. 

민노총-전교조, 80년대 이미 시작됐다

왜 광주5.18문제가 그토록 부글부글 끓고, 그를 악마화하는 참담한 상황이 연출됐던 것도 그의 재임 시기 깊숙이 이뤄졌는데, 왜 그는 태무심하게 넘겼을까? 그걸 국가보위-체제수호 차원에서 접근했어야 옳았다. 특히 북한특수군 개입 혐의 등을 당시에 밝혀내는 것도 필요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국정장악력을 온전히 유지하려 애썼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부으며 머슴처럼 일했다"고 자부했다. 그 점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내부의 적' 운동권, '외부의  손'북한이 합작한 한반도 위기상황의 전체 구조를 그가 온전히 파악했는지는 의문이다. 즉 방어적 민주주의 이론에 따른 국가보위 의무를 보다 더 충실히 이행했어야 옳았다.

물론 어려운 주문이다. 특정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순 없다. 그건 역사의 도전 앞에 한국사회 전 역량이 온전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원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전두환 정부는 박정희 18년 통치를 일면 청산, 일면 계승하는 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이었는데, 박정희의 스케일을 과연 온전히 이해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내 소견을 이 자리에서 밝혀둔다.

<전두환 회고록>과 <당신은 외롭지 않다:이순자 자서전>에 대한 언급은 이걸로 일단 마무리를 짓는다. 요란을 떠는 일부 세력의 난동과 달리 이런 역사적 성찰을 할 계기를 들어준 게 두 회고록이고, 그래서 감사의 뜻을 다시 전한다. 이 역사적 기록에서 한국사회가 필요한 교훈을 어떻게 얻어낼까가 관건이라는 걸 재삼 강조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