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의 이 한 마디가 2017년 연초부터 금융권을 뒤흔들었다.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의 오랜 갈등을 표출시키면서 금융개혁 청사진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논의가 확장되는 모양새다.

   
▲ 사진=금융투자협회


연초부터 금투협회장과 은행연합회장이 각자의 업권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등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양 업계는 외국환결제 등을 놓고 날을 세우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2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은행업권에서 자산운용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는데, 이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서만 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으로 합의된 만큼 다른 자산운용업으로 확대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는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황 회장은 은행권이 점점 금융투자업계의 영역으로 업권을 확장하는 모습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하며 날을 세웠다.

작년 ISA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이미 증권업계와 은행권의 ‘업권 논쟁’은 막이 올랐다. 당국이 ISA에 한해서만 은행에게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면서 증권업계가 난색을 표했던 것. 금융소비자들이 은행창구를 친숙하게 여기는 만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옹호론과 함께, 전문성 부족과 ‘깡통계좌’ 난립의 창구를 당국이 스스로 열어젖혔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해를 바꿔 지난 1월 금융위원회가 신탁업법을 현재의 자본시장통합법에서 분리하겠다고 밝히는 등 은행업계가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황 회장을 비롯한 금융투자업계의 불만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자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역시 맞불을 놓으며 논쟁을 이어갔다. 하 회장 역시 공개석상에서 “두 영역 간 칸막이를 없애는 겸업주의로 은행·증권 간 밥그릇 싸움을 없애자”고 강조하며 은행의 자산운용업 진출에 대한 뜻을 내비친 것. 

그러자 금투협이 다시 이튿날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금융제도는 전업주의를 근간으로 해왔다”면서 “이는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금융 업권간 특성에 따라 영역별 전문화된 경쟁력을 키우고 업권 간 동질화로 인한 문제 및 금융 업권간 시스템 리스크 전이를 막는 등 여러 제도적 취지와 함의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 회장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논쟁이 길어지자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고개를 든다. 자칫 두 업계가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쳐져 공멸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보다 거시적인 측면으로 논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를 잇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된 신탁업법 관련 내용은 자본시장법에 대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새 정부 출범이 임박한 만큼 서로 미시적인 문제로 날을 세우기보다는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수순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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