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선거, 결선투표 등은 가위 바위 보식 엉뚱한 선거결과 초래

이성규의 정치인의 사익(私益)추구 강의(6)

본 코너에서는 ‘정치인들의 사익(私益)추구 행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나쁜 민주주의: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저, 이성규·김행범 옮김, 북코리아, 2012년)를 연속적으로 게재하기로 한다. [편집자주]

◆ “선거에서 일관성 없는 결과(투표 역설)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 “민주주의의 적(敵)은 투표자들의 합리적 무지에 있다!”.

   
▲ 이성규 국립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제3장 선거에서 어떻게 승리하는가?

“만약 당신이 법률이나 소시지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결코 보지 않는 게 좋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공공선택 학자의 선거에 대한 관점을 나타내 주는 데 아주 적합하다. 투표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의 집합적 결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결정은 ‘어떤 선거제도가 채택되느냐’에 크게 의존한다. 또한 모든 선거제도들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결과들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즉, 선거제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기계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투표자들과 후보자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련해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과정’(또는 선거제도)은 솔직히 그렇게 멋진 제도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정치적 과정으로부터 유도되는 최종 결정이 종종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훨씬 왜곡시켜서 반영하기 때문이다.

■ 투표 역설의 발생

일찍이 콩도르세(Condorcet)는 “일부 선거제도는 하나의 분명한 결과가 아니라 어떠한 결과도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를 하는 놀이를 생각해 보자. 이 놀이에서 바위는 보에 지고(보가 승리함), 보는 가위에 지고(가위가 승리함), 가위는 바위에 지게(바위가 승리함) 된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최종 결과는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투표 안건이 진행되는 순서(order)를 결정하는 사람(예를 들면, 의회에서 여러 선택안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어떤 위원회의 장)을 ‘의제 설정자’(agenda setter; 또는 ‘안건 설정자’)라 부른다. 이 ‘의제 설정자’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든 상관없이 그(또는 그녀) 자신의 선호가 채택되도록 하기 위하여 투표가 진행되는 순서를 마음대로 조작(造作)할 수 있다.
 

오래 전 블랙(Duncan Black)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i) 제안된 선택안의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ii) 투표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을수록 이러한 “순환적인(cycling) 투표역설”은 더 심해진다. 이러한 블랙의 주장은 오늘날의 대규모적이고 복잡한 정치제도에서 특히 중요하다. 블랙의 이러한 계산은 최근의 연구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한 투표역설 현상은 실제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 대통령 선거의 경우 후보자들은 일련의 예비 선거(primary election)를 통해 두 또는 세 명으로 압축된다. 또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투표역설 현상이 목격된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경우 1차 투표를 통과한 주요 후보자들이 2차 결선투표(run off)에 들어간다. 예를 들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스 ‘국민전선’(National Front)의 당수인 르팽(Jean-Marie Le Pen) 후보는 16명의 후보자가 난립한 1차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으나, 결선투표에서는 “시락(Jacques Chirac) 후보”에게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하였다. 그래서 당시 시락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반면에 사회당 후보는 1차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3위를 기록했으나 이로 인해 2차 결선투표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 프랑스의 투표제도가 이와 달랐다면 완전히 다른 투표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을 가정해 보자. 만약 당시 프랑스 선거에서 좌파 후보자들의 수가 좀 더 적었다면 사회당은 1차 투표에서 ‘국민사회당’(즉, 국민전선) 후보인 르펭을 누르고 2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국민 전선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결선투표에서 우파인 시락 후보가 아니라 사회당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고, 그 결과 시락 후보가 아니라 “사회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것이다. 이는 앞의 경우(즉, 시락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와 완전히 다른 결과이다.
 

제3정당들은 종종 투표역설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곤 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은 양당 선거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획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노동당 지지자들은 보수당보다는 차라리 ‘자유민주당’을 선택(지지)할 것이고, 보수당 지지자들은 노동당보다는 차라리 ‘자유민주당’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유민주당이 총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세 정당들이 경쟁할 때 자유민주당은 일반적으로 3위로 뒤처지게 된다.

■ 기타 투표제도들

공공선택 이론의 대부분 초기 연구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하는 “선거에서 한 사람만 선택하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first-past-the-post; 다른 후보자와 비교하여 득표수가 많은 사람을 당선자로 하는) 투표제도”(이를 일반적으로 ‘최다득표제’(plurality rule)라 부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국가는 지역구(선거구)를 지리적으로 구분한다. 각 지역구에서 여러 명의 후보자들이 출마하여 경쟁하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자가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이것은 당선된 후보자가 과반수의 득표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종 표가 많은 후보자들 사이에 분할된다면 최종 승자(당선자)는 단지 소수의 득표만으로도 당선될 수 있다.
 

이러한 염려와 단점 때문에 많은 다른 국가들은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비례 대표제는 유럽의 대륙 국가들에서 유행하고 있다. 비례 대표제를 채택하는 많은 국가들에 있어서 정당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후보자들의 리스트(명부)를 작성하고, 유권자들은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 찬성표를 던진다. 그런 연후에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수에 따라 정당 간에 ‘의석수’가 배분된다. 그 결과 소수당의 후보자들이 의회에서 좀 더 공평하게 대표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례 대표제는 또한 후보자 명부를 작성하는 당 대표자들(당수 및 주요 간부들)의 손에 커다란 힘이 주어지게 되며, 그 결과 그들은 단일 의원 선출제도의 경우보다 의사일정에 대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에 단일 지역구 의원을 뽑는 정치제도의 경우 의원들은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더욱 충실(충성)하게 된다.
 

비례 대표제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비례 대표제 하에서 종종 ‘소수당 정부’(minority government) 또는 ‘연립 정부’(coalition government)가 출현하곤 한다. 소수당 또는 연립 정부는 정책결정 시 몇몇 정당들 간에 ‘타협’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연립 정부 내에서 어느 누구도 실제로 찬성하지 않는 ‘혼합(hybrid) 정책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된다. 이와 똑같은 비판이 “선택투표제”(alternative vote system)에 대해서도 가해질 수 있다. ‘대체 투표제’란 지역구 당 한 사람만이 선출되지만, 투표자들은 후보자들을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등위(rank)를 매기게 된다.

선택투표제가 실시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첫째, 투표 후 가장 낮은 등위의 후보자를 투표 대상에서 제거한다. 둘째, 가장 낮은 등위의 후보자가 얻은 득표수를 2위를 기록한 후보자에게 할당한다. 그 결과 이 후보자가 과반수를 얻으면 이 사람이 최종적으로 선출된다. 이러한 과정은 과반수를 획득하는 후보자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최종 선출되는 후보자는 50%에 약간 미달하지만 유권자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는 후보자보다 ‘50%를 약간 넘으며 가장 결점이 적은 후보자’가 될 것이다. 선택투표제(AV)와 최다득표제(FPTP)는 각각 다른 결과를 초래하지만 어느 제도가 더 낫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다.

■ 합리적 무지

유권자의 입장에서 ‘투표 행위’를 하려면 후보자를 알아보는 데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고 노력이 필요하다. 투표행위에는 투표소에 가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데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또한 올바른 선택에 필요한 후보자들과 그들이 공약하는 정책에 대해 알아보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무엇인가에 따라 이러한 시간과 노력들은 유권자들에게 잠재적으로 커다란 일(부담)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결국 유권자들은 다음 4~5년 동안 국가 경제의 절반을 책임지고 운영할 하나의 집권 정당과 정부를 선택하게 된다(이는 내각제 국가의 경우임). 이와 같이 투표 행위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어느 후보자(또는 정당)에게 “다음 5년 동안 국가 운영과 관련하여 독점권(즉, 독점운영권)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지”의 문제에 대해 유권자들은 많은 심사숙고와 면밀한 검토를 해 보아야만 하며, 또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선거는 다음 5년 동안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해 국방, 교육, 복지, 치안, 의료 등의 생산에 대한 독점운영권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산업, 금융, 수송, 공공안전 등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부여해 주는 국가의 중대사이다.
 

그러나 어느 한 유권자의 선택이 선거 결과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한 표가 투표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은 자신의 한 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어느 정직한 투표자(노동당 지지자)가 패배 가능성이 높은 노동당(Labour Party) 후보자에게 한 표를 던짐으로써 자신이 싫어하는 보수당(Conservative Party) 후보자를 낙선시킬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투표자가 자신의 한 표를 패배가 예상된 노동당 후보자에게 던지지 않고 당선이 유력한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 Party) 후보자에게 던졌다면 이 표는 자신이 싫어하는 보수당 후보자를 낙선(패배)시키는 데 기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유권자의 한 표가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를 보여준다.

또한 투표자(유권자)들은 또 다른 유형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시장에서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가격이 항상 투명한 것은 아니며, 제품의 질도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시장에서 제품의 가격과 품질도 종종 불확실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여러분들이 커피 한잔을 사 마신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커피 한 잔의 값이 얼마인지 알고 있고, 그 대가로 무엇을 얻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여러분들이 혼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면 여러분들은 혼자서 모든 혜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또는 정치시장)에서는 비용과 혜택이 많은 사람들 간에 널리 퍼지게 된다. 만약 여러분들이 공공 보건과 같은 하나의 특정 프로그램(정책)에 찬성 투표한다면 여러분들은 이 프로그램이 자신들에게 얼마의 비용을 부담시킬지, 또는 자신들에게 얼마의 혜택을 가져다줄지에 대해 반드시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만약 여러분들이 더 나은 직업을 구해서 더 많은 월급을 받아 더 높은 과세등급구간(tax bracket)으로 이동한다면 여러분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자신이 내는 세금으로부터 얼마의 혜택을 받을지는 알지 못한다. 만약 여러분들이 매우 건강하다면 (여러분들이 내는 세금에 의해 공급되는) 의료서비스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정치시장에서는 비용과 혜택 간의 관계가 분명하지 못하다.
 

비용과 혜택에 대한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리고 여러분들의 투표가 선거결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에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합리적 무지’라는 개념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다운스(Anthony Downs)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 개념이 민주주의 지지자들에게는 불유쾌한 표현일 수 있지만, 유권자들에게는 논리적으로 아주 옳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은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자들과 그들의 정책들에 대해 잘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나쁜 민주주의: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저, 이성규·김행범 옮김, 북코리아, 2012년) /이성규 국립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