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체계 이미 정착…자발적 비정규직 많아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선언했지만 증권업계는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비정규 계약직을 ‘약자’로 보는 통념과는 달리 증권업 전문인력 중에는 자발적으로 계약직을 택한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금융권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안전과 생명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선언했지만 증권업계는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비정규 계약직을 약자로 보는 통념과는 달리 증권업 전문인력 중에는 자발적으로 계약직을 택한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사진=미디어펜


나아가 비정규직을 ‘제로’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정책 기조는 노동시장 전체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우선 대기업들의 ‘정규직 전환’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마트 계열사인 편의점 브랜드 위드미의 경우 우수 가맹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고, SK브로드밴드는 우수 가맹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복수의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하반기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일정 비율 넘게 비정규직을 채용한 대기업은 벌금 성격의 ‘고용부담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대기업들의 ‘정규직 전환’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금융권의 ‘자진납세’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안에 비정규직의 일부인 사무직을 정규직 형태로 전환할 방침을 드러냈다. 지난 3월 기준 신한은행의 기간제 근로자인 사무직 직원은 약 100명 규모로 알려졌다. 

지난주 한국씨티은행은 박진회 행장이 직접 ‘전담직 직원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무기 일반사무 전담직원과 전담텔러 약 300명이 연내 일괄 정규직 전환된다. 농협은행도 비정규직 감축 계획을 가다듬고 있으며, 기업은행도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증권사들이다. 업계 공식자료를 종합하면 자기자본 기준 상위 10개 증권사의 1분기 기준 전 직원 수는 총 2만 2414명이었다. 이 중 계약직은 22%인 4986명이다. 정규직 직원은 1만 7428명으로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감소 추세다. 새 정부 방침과는 상이한 흐름이다.

이에 대해 업계는 증권업 특유의 분위기가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성과에 따라 높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연봉 체계가 이미 정착된 만큼 명목상의 정규직 비율은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업계에는 이른바 ‘자발적 비정규직자’들이 많다”면서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오히려 스스로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직 내 비정규직 비율과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증권업계에서는 꼭 반비례하지는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업계에서 계약직 비율이 가장 높은 A증권사의 지난 1분기 평균 연봉은 5139만원이었지만, A사보다 정규직 비율이 높은 B증권사의 1인당 평균연봉은 2776만원에 불과했다.

만약 정부가 증권업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새로운 노동정책을 적용하려고 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억지춘향 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진행할 경우 비정규직에도 채용되지 못한 청년들의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면서 “청년실업 해결 또한 새 정부의 주요 목표인 만큼 딜레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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