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장군 70대 후반까지 전쟁터 누벼…사서에 흔적 거의 남지 않아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또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징검다리다. 그럼에도 우린 때때로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로 스스로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앎과 이해일 것이다. '독도는 우리땅'이란 가수 정광태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사부(異斯夫)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이사부 장군은 경상북도 동부의 작은 부족국가 신라를 한반도의 주역으로 끌어올린 분이다. 또 다양한 종족을 하나로 통합해 한민족의 뿌리를 형성하게 했으며, 신라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위인이기도 하다. 독도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 고취를 위해 미디어펜은 이사부의 흔적을 찾아 나선 김인영(언론인)씨의 '이사부를 찾아서'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사부(異斯夫)①] 우리 민족의 원류를 만든 인물

   
▲ 김인영 언론인
이사부(異斯夫)는 우산국을 신라 땅으로 만들어 대한민국에 울릉도와 독도를 안겨준 신라 장군으로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물론 일본이 수시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그때마다 가수 정광태의 대중가요 ‘독도는 우리땅’이 울려퍼지고, 노랫말 끝에 ‘신라장군 이사부’를 외다시피 하다보니, 이사부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장군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사부는 ‘독도는 우리땅’의 주인공을 넘어서 경상북도에 국한한 부족국가를 한반도의 주역으로 확대시키고, 김유신(金庾信) 장군, 무열왕 김춘추(金春秋),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이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우뚝 서도록 초석을 제공한 인물이다.

외적의 침입에 나라를 구한 을지문덕, 감감찬, 이순신 장군 등을 우리는 영웅으로 받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삼국을 형성한 고구려, 백제를 격퇴하고, 가야, 예, 맥, 옥저, 말갈, 왜 등 1,500년 전에 우리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국을 흡수하거나 영토 밖으로 내쫓은 인물이 바로 이사부 장군이다.

이사부가 있었기에 삼국중 가장 약체였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도록 징검다리가 된 인물이다. 필자는 이사부 장군이 없었다면 신라의 통일이 이뤄질 수 없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변방의 신라를 한반도의 중심무대로 이끌어낸 사람은 천재적이고, 용맹무쌍한, 그리고 백전백승의 이사부 장군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조선, 그리고 오늘날 한민족의 토대가 형성됐다.

   
▲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 해안에 세워진 이사부 우산국 복속 기념비.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사부에 대한 사료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현존하는 최초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사부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만, 그것도 몇줄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측 사서인 ‘일본서기’에도 그가 언급되지만, 자료는 미흡하다. ‘단양 적성비’에 그의 이름 한 단어가 나올 뿐이다. 코끼리의 신체 일부를 만지는 기분이다. 그가 태어난 시점과 죽은 시점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에 이사부에 관한 스토리가 나오지만, 정통 국사학자들은 그 서책이 위서라며 정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희박한 자료 속에서도 이사부의 위대함은 드러난다.
 
   
▲ 이사부의 흔적.
지증왕 초 (500~505년) 가야 공략
지증왕 6년 (505년), 실직(悉直) 군주 부임
지증왕 13년 (512년) 우산국(于山國) 정복
                   하슬라(何瑟羅) 군주 부임
법흥왕 16년 (529년) 금관(金官)가야 정벌
진흥왕 2년 (541년) 병부령 취임
진흥왕 6년 (545년) 국사 편찬
진흥왕 11년 (550년) 적성 전투 승리
도살성 금현성 전투 승리
진흥왕 23년(562년) 대가야 함락
 
사서에 이사부의 흔적이 워낙 희박해 그가 태어난 시기는 물론 죽은 시기도 나오지 않는다. 사료에 이사부가 활약한 시기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실직 군주에 부임한 505년에서 대가야를 함락한 562년까지 57년간이다. 변방의 군주로 파견할 나이는 적어도 성년이 된 20세 전후로 보면 마지막 대가야 전투시 나이는 77세 전후의 고령이 된다. 그렇다면 지증왕초 가야 공략에 참전한 시기는 10대였을 것이다. 10대에 장군이 돼서 70대 후반의 나이까지 전쟁터에서 산 전형적인 군인이요, 장군이었다.

이사부는 첫 업적은 실직(삼척)과 하슬라(강릉)에서 국경 전투부대 장군 격인 군주(軍主)를 맡아 우산국을 정복해 동해 바다에 대한 제해권을 장악한 일이다.

영국의 군인이자 탐험가, 시인인 월터 롤리(Walter Raleigh)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말인즉슨,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것.

개혁군주 지증마립간이 20대 초반의 젊은 왕족을 동해의 중심 거점인 삼척에 군사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먼저 동해를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내륙으로 뻗어 삼한을 통합하려는 의도였다.

백제와 가야가 남쪽과 서쪽 바다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신라는 필연적으로 동해를 장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해 한가운데 울릉도엔 우산국이라는 해상세력이 버티고 있고, 먼바다 건너엔 왜(倭)가 수시로 공격해왔다. 동해를 지배하는 것은 1) 왜국의 공격을 막고 2)풍부한 해산물을 획득하며 3) 예의 잔여세력과 말갈, 고구려의 공격을 방어하며, 4) 산맥을 넘어 고구려와 교역로를 만드는 이점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령하고, 동해 제해권을 장악한 이후 그 이전에 수십차례 신라를 공격해온 왜국의 출몰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왜국가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도록 해상에서 신라 수군이 해상에서 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차례로 복속시키면서 왜가 남해안에서 근거를 완전 상실하고, 연대세력이었던 백제가 멸망하면서 왜국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손을 끊게 된다. 삼국시대에 왜가 더 이상 한반도에 위협 세력이 되지 못하게 한 것도 이사부였다.

이사부의 성은 신라왕족인 김(金)씨이고, 내물왕의 4세손으로 진골이었다. 그는 지증왕과 법흥왕, 진흥왕 3대에 걸쳐 활약했다. 그는 왕족이지만,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했다. 진흥왕 시절에 병부령으로써 권력을 장악하고, 국사를 편찬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에 동시에 이긴다. 그는 임금이 되지 못한 한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한을 전장에서 녹여냈고, 후배들에게 등을 내줘 삼한 통합의 꿈을 실현하도록 디딤돌이 되었다.

이사부는 용장(勇將)이라기보다 지장(智將)이었다. 군사력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전투를 승리했다.

첫째 10대에 위계(僞計)의 전술로 가야의 땅을 빼앗았다. 전술은 거도(居道)의 계략. 말놀이를 하는 척 하다가 군사를 몰아 기습작전을 펼치는 전략이다.
이사부는 거도의 전술을 채택해 들판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말놀이를 즐겼다. 이사부는 말을 훈련시키고, 재주를 부리는 놀이에 열중했고, 가야를 공격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가야는 이사부의 마희(馬戲) 작전에 속았다. 어느 순간에 신라의 무장한 기병이 가야의 본거지를 급습했고, 가야는 굴복하고 땅을 내주게 됐다.

둘째 지증왕 13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공격할때였다. 그곳 사람들이 미련하고 사나워서, 힘으로 항복 받기 어려우나, 꾀를 써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해안으로 다가가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 놓아서 밟아 죽이겠다”고 알렸다. 우산국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즉시 항복하였다.
셋째 진흥왕 11년의 일이다.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을 빼앗고, 고구려는 백제의 금현성을 함락시켰다.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두 나라 군사가 지친 틈을 이용해 이사부가 군대를 출동시켜, 두 개의 성을 빼앗았다.

이사부는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중요한 역사적 인물의 한사람이다. 그런데 사료가 부족하고, 사가들의 주된 관심에서 떨어져 부각되지 않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사부에 대한 연구가 부쩍 늘고, 잊혀져 가는 신라 장군을 다시 평가하자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이사부 축제가 매년 열리고, 그의 이름을 딴 이사부 광장이 만들어졌다. 그의 이름을 딴 크루주선이 동해안을 누빈다. 독도에는 이사부가 공식지명으로 명명되고, 이사부를 연구하는 학술단체도 만들어졌다. <계속> /김인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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