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없으면 박정희 말년 추했다" 전면 인터뷰
현대사의 진실, 왜 일등신문 조선일보마저 눈 감나
올해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이다. 11월 14일이 그날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 사망일인 10.26 대신 탄생일을 기리는 새 전통을 세운 것도 몇 해 전부터다. 이 뜻 깊은 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혁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부국혁명의 공과 과를 기리는 특별한 성찰의 기간임은 물론이다. 놀랍게도 며칠 전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박정희 공격의 포문을 열어 우릴 놀라게 했다.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의 변호인 인터뷰로 한 면 가득 채웠는데, 내용도 최악이다. "10.26이 없었으면 박정희 말년이 추했다"는 억지인데, 좌익매체 '민중의 소리'에나 어울릴 악의적 선동이다. 이런 게 현대사의 큰 이름 박정희에 대한 조선일보의 수준일까? 조선일보 지면의 타락은 정말 회복불능인가? 그 점검과 함께 박정희 탄생 100돌의 진정한 의미도 되새겨 본다. [편집자 주]

[연속칼럼]-올해는 박정희 탄생 100돌…긴급점검 두 가지<상>

   
▲ 조우석 주필
쇼킹했다. "10.26 없었으면 박정희 말년이 추했을 것"이라는 5월29일 조선일보 지면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전단(全段)제목의 앞은 더 곤혹스러운데, "박정희 영웅 만든 김재규"란 굵은 활자가 눈에 뜨인다. 이건 또 뭔가. 모시던 대통령을 총으로 쏜 김재규의 행위란 흔들리던 박정희의 말년을 구해줬으니 뜻 깊은 거사로 평가하자는 얘길까?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고, 논리비약도 이럴 순 없다. 극좌매체 '민중의 소리'는 몰라도 한겨레도 이 따위 지면제작은 하지 않는다. 그날 망발을 한 인터뷰 대상자는 당시 김재규의 변호인 안동일(77)인데, 정말 어이 없는 건 그를 찾아 일문일답을 진행한 기자가 아닐까?

인터뷰를 김재규 사형집행 37년을 계기로 진행한 점도 문제다. 물어보자. 언제부터 조선일보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모두 디자인한 박정희의 탄생 100돌 기념은 안중에 없고, 시해범의 사형집행일을 기념하는 매체로 전락했는가? 100돌 생일잔치에 재를 뿌리는 무례함은 또 뭔가?

쓴 기자는 그렇다 치고 편집국장, 편집인의 무책임도 기가 찬다. 그게 조선일보의 변화된 편집방침이고, 제작철학인가를 물어야 하는데, 그건 필자인 내가 박정희재단 이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나라의 지식-정보가 온통 오염됐고, 그래서 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뒤틀렸다 해도 조선일보만큼은 균형감각을 가져야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주최하는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 학술대회'가 지난 16일 제주도 제주대학교 아라컨벤션홀에서 개최됐다./사진=미디어펜

10월유신은 방어적 민주주의 갑옷

좋다. 기회에 유신 얘기도 해보자. 변호인 안동일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김재규의 옛 진술을 되풀이했지만, 그거야말로 자던 소가 웃을 노릇이다. 세상이 다 알 듯 김재규는 합수부 수사를 받을 때는 "집권하기 위해 총을 쐈다"고 시종일관 진술했다. 수사 초기 20일 내내 그랬다. 단 계엄사령관 정승화가 관할하는 군법회의로 송치되면서 "유신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라고 번복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공범자 정승화를 믿고 말을 바꾼 것이다. 대규모 변호인단과 시민단체들이 독재자를 제거한 영웅으로 그를 떠받들자 김재규도 '셀프 포장'을 개시했던 것이다. 그런 궁지에 몰린 김재규의 초라한 발뺌을 37년 뒤 조선일보가 맞장구를 치고 나오는 게 우스운 노릇이다.

분명한 건 유신이란 빛과 그늘의 양면성이 있다. 비상계엄령의 선포, 국회해산, 언론 검열이 포함된 1972년 유신체제는 분명 민주주의 일부를 유보했다. 그래서 온 국민이 '민주주의 종교'의 광신도인 대한민국에선 욕을 먹는다. 그게 전부일 리는 없다. 국내외 위기상황에서 방어적 민주주의란 갑옷을 갖춰 입었던 것이 바로 유신이다.

즉 국가보위의 훌륭한 장치이자,국가혁신의 선제적 조치가 유신이었다. 그 장치 때문에 베트남처럼 패망하지 않았고. 경제적 고도성장을 유지해 오늘에 이르렀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하고 지도자 박정희의 결단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데, 왜 우린 지금껏 앙앙불락인가?

영구집권? 종신 대통령? 그런 식의 비판도 없지 않지만, 그건 큰 지도자 박정희의 시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걸 박정희를 모셨던 전 문공부 장관 김성진이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박정희를 말하다>(2006년 삶과꿈)에서 썩 흥미로운 증언을 남기고 있다. 박정희는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오려 했으며, 타이밍은 1983년이었다는 구체적인 전망이다.

   
▲ 5월 29일자 조선일보 캡처.

박정희 1983년 하야 구상했다

1970년대 말 집무실에서 박정희는 김성진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초야로 돌아가 자서전을 쓰게 될 경우 임자가 와서 도와주겠나?" 김성진의 답은 "네 그렇습니다"였다. 그런데 왜 1983년일까? 그 전 해가 미 대통령 카터가 정했던 미군철수 시한인데, 박정희는 국산무기 자급과 함께 20개 예비사단 편성을 마치고 자주국방의 꿈을 이루는 국면이었다.

헌법이 정한 대통령 임기 만료는 1984년인데, 한 해 앞서 내려오면서 국무총리에게 권한대행을 시킨다는 게 김성진의 추정이다.(174쪽) 물론 마음먹었다고 내려올 수 없는 게 권력이다. 하지만 키를 쥔 박정희 본인은 애시당초 유신체제가 임시조치라고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10.26의 비극이 없었더라면 권력 이양의 멋진 선례를 만들 수도 있었다. "10.26이 없었으면 박정희 말년이 추했을 것"이라는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은 그야말로 헛소리다. 하지만 그런 지면의 등장은 우연은 아니다. 그건 정신줄 놓은 조선일보, 송희영 사태 이후 반성하지 않은 조선일보의 예견된 사고이고 앞으로 그런 꼴을 자주 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국면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나는 조선일보를 혹독하게 두들겨 팼지만,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해 송희영 사건 이후 조선일보는 변한 게 없다. 부패기득권 언론의 모습은 더욱 교묘해졌으며, 최순실 게이트를 촉발했던 원인제공자로서 반성을 한 바 없다. 외려 저들은 송희영과 공범자 그룹으로 묶여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며칠 전 조선일보는 독자권익보호위원회 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대놓고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제 진보도 귀 기울일 만한 조선일보가 돼라." 그날은 새 정부가 들어선 10일 뒤인데, 문재인 대통령 쪽에 줄서겠다는 노골적인 추파로 내겐 보였다. 그렇다면 어제의 느닷없는 박정희 때리기 지면이란 청와대를 향한 역겨운 구애의 신호일까?

   
▲ 1961년 6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도자는 모름지기 굳은 반공사상과 민주주의 신념을 견지하는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든든한 토대를 구축하는데 온갖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빨치산을 통일운동가로 포장한 조선일보

안타깝다. 나는 조선일보의 저열한 변신 따위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책임있는 주류 매체가 공멸(共滅)한 지금 상황은 단순한 언론환경 변화 그 이상의 위기임을 강조하려 한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려는 언론 매체가 거의 전무(全無)하며, 그래서 지금은 여전히 국가위기의 상황이 맞다.

어떤 헛똑똑이 언론학 교수는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 몽드'가 중도좌파 신문이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선동했다. 딱한 얘기다. 영국-프랑스의 이념분포는 정상적인 사회변화를 반영하지만, 한국의 이념분포는 다르다. 그건 가슴 철렁한 체제위기의 신호탄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내내 선동언론으로 타락했던 조선일보의 요즘 다시 망가진 모습 재연이 안타까울 뿐이다.

덧붙일 건 조선일보의 타락은 뿌리가 깊다는 점이다. 12년 전 당시 여배우 문근영의 인터뷰 기사가 상징적이다. 문근영의 외할아버지(류낙진)는 엄연히 지리산 빨치산 출신인데도, 그를 말도 안 되는 통일운동가로 둔갑시키는데 앞장섰던 게 그 신문(2005년 4월15일자)이었다.

류낙진은 출소 뒤에도 1971년 통혁당 사건에 다시 연루됐고, 1994년 구국전위 사건에도 또 얽혔던 악질 중의 악질이었는데도 그걸 포장하기에 바빴다. 당시 노무현 홍위병들이 주도한 안티조선운동이 먹혀든 셈일까? 아니면 세상을 덮친 붉은 물에 그 신문도 몸을 담근 것일까? 그건 이미 고황에 든 병인데, 주필로 있다가 낙마했던 송희영도 그걸 보여준다.
 
기업과의 유착이 심했던 그가 쓰는 글의 대우부분은 경제민주화를 지지하고 대기업을 때리는 쪽이었다. 조선일보의 정체성과 심하게 부조화스러웠다. 이게 무얼 말해주나?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수호하는 데 등을 돌린 지 오래이고, 믿을 매체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박정희의 진면목을 전해주는 언론도 귀해진 지금 박정희의 모습을 다음 회 소개하려 한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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