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신상관련 의혹 대응 역부족...與 재벌개혁 추궁에도 직면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5대 비리 연루자 고위공직 원천 배제' 원칙을 거스른다는 부담을 안고 시작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신상을 둘러싼 비위 의혹이 대거 제기됐다.

야권에서는 아파트 위장전입, 특혜 분양, 다운계약 신고, 논문 자기표절과 중복 게재, 부인 조씨의 공립고 영어강사 채용특혜 및 재직 중 토익점수 허위보고 등 의혹 제기가 줄을 이었고 김상조 후보자는 대개 적극적인 소명보다는 고의성을 부인하는 데에 그쳤다. "불공정거래위원장"이라는 야당의 비난에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우는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재벌 해체"와 "충격적 조치"와는 거리를 둔 신중론을 제시하자 여당에서는 "회의적"이라는 반응을 보여 여야 모두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20년 가까이 기업 상대 시민운동을 하는 동안 칼날 위에 서 있는 긴장감을 갖고 살았다"며 "나름의 원칙에 따라 몸가짐을 단속했다"고 피력했지만 이내 날선 검증공세에 직면했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후보자 부인 조씨가 채용조건인 토익점수 901점에 1점 모자란데도 S고 강사로 특혜 채용됐으며, 재직중 S고가 상급기관인 교육청에 매년 점수를 901점으로 고쳐 허위보고했다는 의혹을 잇따라 제기했다.

김 후보자는 "아내가 2013년 취업할 때는 경쟁자가 없었고, 두 번째는 4년간 근무한 학교 측에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잘못된 행정처리는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고 부인했다. "2013년뿐만 아니라 2014~2017년까지 매년 (토익점수) 허위보고가 계속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김성원 한국당 의원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김 후보자의 장인장모가 실거주하지 않고 전입·전출을 반복한 점 등을 들어 위장전입·투기 의혹을 추궁했다.

김 후보자는 "자식 교육을 위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며 "영국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뒤 아내가 쓰러졌고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위해 (강남 모 대학병원과 가까운 곳에) 이사한 것"이라는 사연을 들었다.

그러나 2004년~2005년은 은마아파트 '재개발 광풍'이 불었던 때이며, 2005년 11월 김 후보자의 아파트에 김 후보자와 관련 없는 4명이 전입했다는 지적에는 "정말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서울 강남 청담동 한신오페라하우스 2차 아파트를 공개분양 절차 없이 구입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청담동이라고 하니 고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동 짜리 작은 아파트"라고 말을 흐렸다가, 이내 "41평형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빈축을 사기도 했다.

홍일표 한국당 의원이 분양신청 경쟁률이 평균 74대 1 수준, 2006년 10월 실거래가 기준 9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어떻게 6억원에 미분양 상태로 구매할 수 있었는지를 묻자 그는 "살던 지역이라, 지나가던 복덕방에서 미분양된 것을 알아서 재건축사무소에서 직접 계약했다"고 답했다.

김 후보자는 1999년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아파트 36평형을 1억7500만원에 산 뒤 구청에는 매입가를 5000만원으로 기재한 계약서를 내지 않았느냐고 김한표 한국당 의원이 캐묻자, "다운계약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청문 준비 과정에서 5000만원으로 신고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시인했다.

또한 "2006년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되기 전 공인중개사나 법무사에 맡겨 신고하는게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며 "무비판적으로 당시 관행을 따라간 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김종석 한국당 의원은 같은 학자 출신인 김 후보자가 과거 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와 2002년 학술지 '산업노동연구'에 낸 논문이 동일하다며 "3인 공조의 연구실적물을 고스란히 떼어다가 자기 이름으로 학술지에 게재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김 후보자는 "'산업노동연구' 측이 해당 논문을 실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이라고 학술지 측에 책임을 넘기면서도 "지금의 윤리규정에 비춰보면 미흡한 점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이에 앞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논문 중복게재·자기표절 지적사항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을 때는 "저는 연구실에만 있는 연구자라기보다는 현실에 참여하는 시민운동가로서 살아왔다"며 "(외부 간행물 등) 학술지가 아닌 곳에 기고를 하다보니 각주 처리나 참고 문헌을 병기하는데 소홀했다"고 표절 등을 일부 시인했다.

김 후보자는 2011년 2월 한성대 연구관 4층에서 발생한 화재가 김 후보자의 담뱃불 때문이었다는 의혹 제기에는,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면서 사과의 의미로 학교에 발전기금 300만원을 냈다고 했다.
 
김 후보자가 대부분의 의혹 제기를 직접 논박하기보다는 일부 시인하거나, "특수한 사정" 등 다른 사유로 해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인사권을 쥔 청와대의 부담을 덜기에는 '역부족'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가 2일 실시됐다./사진=미디어펜


김 후보자는 '재벌개혁수'로 불리는 자신에 경제계와 범보수진영의 거부감을 우려한 듯 재벌개혁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는데, 그러자 집권여당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재벌 해체'란 표현을 쓴 적이 없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며 "재벌기업들은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인데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때문에 경제력이 오남용되는 문제가 있어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면 한국경제를 발전시키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사익 편취 행위를 조사할 '기업집단국' 신설 방침을 밝혔고,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 폐지를 두고는 "전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형사·민사·행정 규율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공정위의 재벌의 불법행위 조사·처벌 권한 행사에 대해서는 "현행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하며 "행위 규율만으로 개선되기 어려운 경우 구조적 조치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행위 규율만 계속해나간다면 (공정위의) 패소율이 높고 공정위의 입증 책임이 무거워 한계에 부딪힌다"며 "아무리 (법 집행을) 강화한다 해도 근본 문제를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가 "현재 한국경제는 저성장이라는 뉴노멀의 불확실한 상황임을 감안해 (재벌개혁은)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취지"라고 하자, 민 의원은 "이는 과거 정부의 공정위원장과 근본적 차이가 없다"며 "굉장히 회의를 갖게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혜영 민주당 의원은 "김 후보자는 지난해 한국금융학회 심포지엄에서 '공정거래법상 61개의 재벌 전체를 대상으로 금산분리 규제를 계속 유지하는 게 비합리적이고 전체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 있다"고 검증에 나섰다.

김 후보자는 "(금산분리가) 여당의 주요한 정책임을 안다. 금산분리원칙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현실정합성을 높이는 걸 고민하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주장이 여당 당론과 어긋난다'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는 "대통령 의견이나 (여당) 당론과 배치되는 의견을 말하는 일은 앞으로 없도록 하겠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2일 청문회를 마친 정무위는 이달 7일 전체회의를 열고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을 시도할 예정이다. 같은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당일치기'로 청문보고서 채택을 시도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이 중 강경화 후보자는 위장전입 전력과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데다, 해명 과정에서 불거진 '거짓말 논란'으로 험난한 청문회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후보자 청문회가 '깔끔한 마무리'를 짓지 못한 가운데, 청와대가 임명 강행 카드를 꺼내든다면 그 후폭풍이 고스란히 후속 청문회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국무총리를 제외한 국무위원의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 여부엔 법적 효력이 없어,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한다고 해도 국회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의 선택이 7일부터 펼쳐질 청문회 정국의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