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잔디는 맨땅 모래밭 태반, 겨우내 칼갈은 보람도 무위로

방민준의 골프탐험(1)-잔인한 4월의 필드여!

벚꽃과 진달래꽃등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4월을 맞아 골프시즌이 본격적으로 돌아왔다. 11일부터는 미국 조지아주 내셔널 오거스타cc에선 세계최고의 남자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고 있다. 전세계 골퍼의 눈과 귀는 온통 마스터스대회에 쏠려 있다. 골프 시즌을 맞아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칼럼에 들어가는 골프관련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가치를 더해준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골퍼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되새겨보고 정립하기 바란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에세이스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

골퍼에게 4월은 무엇인가?
센스 있는 골퍼라면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를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굳이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Waste Land)'의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골퍼들에게 4월은 견디기 힘든 시련과 절망의 계절이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골프채를 잡은 이후 멋모르고 쫓아다니던 초보시절을 제외하고 4월에 고통 없이 라운드 한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매년 4월이면 많은 골퍼들이 골프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좌절감에 빠지고 극심한 배반감을 경험한다. 잔인한 계절을 정확히 구획 짓는다면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이겠지만 잔인함의 강도로 따지면 4월이 가장 심한 편이다.

   
▲ 골프백과 클럽을 들고 굿샷을 기야하며 그린으로 향하는 4인. /방민준작

그동안 겪어온 4월의 필드를 곰곰이 떠올려보자. 새 봄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는 꿈을 안고 겨우내 연습장을 열심히 찾은 뒤 끝에, 목을 빼고 기다려온 4월의 초원에서의 경험이 어떠했는지. 겨울 칼바람을 견디며 열심히 연습장을 찾은 보람도 없이, 스윙은 리듬을 잃고 볼은 허공이 좁다 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낯선 그린은 읽어내기도 힘들어 좀처럼 홀인을 허용하지 않는다.  18홀을 벗어나면서 힐끗 쳐다본 스코어카드는 더욱 가관이다.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가운데 수많은 오리 떼가 몰려다니고 교미하는 오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아주 가끔 굵은 오리알이 흩어져 있다. (보기와 더블보기, 트리플 보기 그리고 드물게 파가 섞인 스코어카드를 은유적으로 표현해본 것이다.)

왜 4월이 이렇게 잔인한가는 대부분의 골퍼들은 잘 안다. 잔디가 잘 자란 초원을 머릿속에 그리며, 열심히 갈고 닦은 노력의 보상을 바라며 봄기운이 완연한 골프장을 찾았으나 골프장의 환경은 머릿속에 그린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코스 주변은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봄을 노래하지만 페어웨이 잔디는 이제 겨우 싹을 내밀기 시작해 맨땅이거나 모래밭일 경우가 태반이다. 그린 주변은 더욱 심해 정상적인 어프로치가 어렵다. 겨우내 추위와 눈에 시달린 데다 모래까지 뿌려진 그린은 아예 독해 불능상태다. 모처럼 필드에 나왔으니 클럽별 거리도 일정하지 않고 몸과 마음 역시 흥분과 긴장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기대에 근접한 라운드 결과는 언감생심이다.

손꼽아 기다려온 봄의 들판이 어김없이 가혹한 형벌을 안기는 보다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일체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Integration이나 Unification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자는 굳이 Oneness라는 철학적 느낌이 짙은 용어를 선택하고 싶다. Oneness란 바로 ‘하나 됨’이 아닌가. 일체화를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용어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연습장에선 평탄한 매트 위에서, 그리 길지 않은 목표지점을 향해, 방해요인도 없는 편한 마음으로 샷을 하지만 필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매트 대신 잔디 위에 공이 놓여 있다. 아직 잔디는 제대로 자라지 않아 땅바닥에 붙어있고 지면도 평평하지 않다. 때로는 러프도 있고 모래도 있다. 여기에 내기가 걸려 있고 동반자의 보이지 않는 견제와 은밀한 방해공작까지 가세한다.
 

무엇보다 정상적인 플레이를 방해하는 것은 겨우내 땀 흘리고 연습한 대가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이다. ‘올봄에는 뭔가 골프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보자’ ‘당하기만 하던 친구들에게 왕년의 도시락이 아님을 보여주자’ 혹은 ‘70대 스코어를 달성하자’ ‘생애 신기록에 도전하자’는 등 많은 기대와 각오 희망이 골퍼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가슴은 흥분되어 울렁이고 맥박은 빨라지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이런 상황이 낯설고 고통스럽기에 어서 빨리 이 상황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집중이 되기 전에 스윙을 감행하고 만다. 결과는 미스 샷이기 일쑤다. 연습 상황과 현장 상황의 일체화, 즉 ‘하나 됨’이 이뤄지지 않은데서 생기는 문제다.

4월이 골퍼에게 잔인한 계절이라고 해서 바로 5, 6월로 건너뛸 수는 없다. 어차피 치러야 할 홍역이다. 좌절과 절망 비애를 안기기는 하지만 이런 홍역을 치르면서 잔인한 계절을 극복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 기간의 시련에 자포자기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상황에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골퍼에겐 새로운 골프의 신천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 됨’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골퍼로서의 대성을 꿈꾸며 미국에 처음 건너간 최경주는 하루 종일 연습장에 살다시피 했다. 하도 연습을 많이 해 장갑이 손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살집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장갑을 떼어냈다는 일화는 손과 장갑과 그립의 ‘하나 됨’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골프에서의 연습도 바로 ‘하나 됨’을 고도화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골프가 갖는 숙명적 중독성도 바로 ‘하나 됨’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임도 구력이 오래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된다. /방민준 골프에세이스트 ginn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