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노숙인 상대 2015년부터 시행…혹한·폭염 비상사태 사망사고 사라져
장기화되는 불황 속에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되고 심지어 자기자신을 버리기까지 하는 노숙인들은 심리적·경제적인 면에서 누구보다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우울증으로 건강을 해치는 이는 물론이고 사업 실패로 생계를 꾸리지 못해 거리로 나앉은 이, 실패 후 대인기피증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 등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숙인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에 미디어펜은 재기에 성공해 반전의 삶을 살고 있는 노숙인들의 사례와 이들의 걱정을 덜어준 정부·지자체 지원정책을 상세히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노숙인들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를 통해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자립의 의지를 다짐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미디어펜 연중기획-아름다운 동행]- "더불어 사는 세상 함께 만들어요"

[노숙인②]-길거리 죽음 막는 서울시 응급처치 교육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추웠던 한겨울날 점심, 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던 김모씨(59)가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심하게 시작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 모여들었으나 우왕좌왕했다.

그 순간 한 사람이 인파를 비집고 들어와 김모씨의 고개를 뒤로 젖혀 기도(氣道)를 확보하고, 빠르게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목에 걸렸던 이물질이 제거되자 김모씨는 곧 안정을 되찾았고 얕은 기침소리와 함께 의식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작년 12월 서울역 인근 급식소인 따스한채움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바로 옆 사람을 살렸던 주인공은 자신이 받았던 서울시의 응급처치교육을 되뇌이며 침착하게 움직였던 동료 노숙인이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여건에 처한 상황에서 가끔 응급처치할 사건이 생기니깐 모든 노숙인 분들이 집중을 잘한다. 교육을 받는다 해서 따로 돈을 받는 인센티브 같은 것도 없으나, 본인들이 필요로 하고 거리에서 많이 보아본 분들이라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한다."

"작년 2~3건의 실제 사례가 있었다. 실제로 하셨던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심리적 압박이 대단하다. 일반적인 응급처치의 경우 살 확률이 4.8%에 불과해 대부분 119가 환자를 모셔간 다음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마음의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배우고 싶어도 실제 배울 기회가 너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이 시작되면서 '자기들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모두 얻었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시 응급처치교육을 운영, 진행해오고 있는 '따스한채움터' 강현 팀장의 말이다.

노숙인 응급처치와 관련하여 서울시 주무부처인 자활지원과의 나종택 주무관은 이에 대해 "노숙인은 바로 옆 사람이 살린다"면서 "누군가 응급처치를 할 줄 알아도 섣불리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원래 자기 밖에 몰랐던 노숙인들이 이러한 교육을 받으면서 그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 '따스한채움터' 강현 팀장이 노숙인들에게 응급처치교육을 하고 있다./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응급처치교육 프로그램은 노숙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2015년 첫해에만 90회의 교육을 통해 3810명(연인원 기준)이 응급처치를 습득했다.

2016년에는 2015년에 받지 않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631명(40회 교육)이 수혜를 입었다.

올해에는 노숙인시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80회의 교육을 실시해 2000명에게 재차 응급처치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올해는 기존 심폐소생술 뿐만 아니라 서울 지하철 각 역사와 노숙인 시설에 비치된 AED 심장제세동기(심장충격기)를 이용하는 교육도 하며, 상처 난 것에 대한 응급처치 교육도 실시한다.

강현 팀장은 이와 관련해 "교육에 임하는 노숙인 분들 모두 적극적으로 하게 한다"며 "시설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5~50명 등 교육 인원은 다양해도 그때마다 빠짐 없이 직접 해보고 모든 과정을 습득하게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 연말에 노숙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익힌 응급처치 실력을 뽐내는 '응급처치 경연대회'를 개최한다고도 밝혔다.

이러한 서울시의 노력과 노숙인들의 자발적인 응급조치로 지난 2015년 이후 노숙인의 길거리 사망은 없어졌다. 4~5년 전만 해도 강남 고속터미널이나 서울역 등에서 혹한이나 폭염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응급처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부분의 노숙인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노숙인들이다.

노숙인들에게 '인기 있는' 서울시 응급처치 교육, 위기에 처한 바로 옆 사람을 살리고 있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