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국회에서 가진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은 귀와 눈으로 듣고 읽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감성을 자극하는 실제 사례가 등장해 호소력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는 지루한 방식 대신 처음으로 본회의장 스크린에 총 22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자료가 떠서 마치 ‘카드뉴스’를 연상시키듯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했다. 

면접을 기다리는 구직자가 손을 모은 채 찍힌 사진 위에 ‘면접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스크린을 띄운 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고용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우리 모두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기가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운을 뗐다.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실업자 수와 특히 2013년 이후 4년간 급격하게 높아진 연간 청년실업률을 언급한 문 대통령은 “체감 실업률은 최근 3개월간 24% 안팎이다. 청년 4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라며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붐 세대가 주 취업연령대에 진입한 반면 청년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좋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흐름을 바로잡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도 어렵다. 통합된 사회로 갈 수도 없다”면서 “민주주의도 실질이나 내용과는 거리가 먼 형식에 그치게 된다.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서게 되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 대통령은 “예상 세수 증가분 8조8000억원과 세계잉여금 1조1000억원, 기금 여유자금 1조3000억원을 활용해 총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중심 추경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번 추경 예산은 재난에 가까운 실업과 분배악화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긴급처방일 뿐”이라며 “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공공 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 “국민들에게 필요한 건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정부’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부”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번 추경으로 약 11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서민들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응급처방이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며 “일자리는 국민들에게 생명이며, 삶 그 자체”라고 일자리 추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문 대통령을 맞은 정세균 국회의장은 “취임한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다시 국회를 찾아 주셔서 환영한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추경 시정연설은 관행적으로 아마 총리께서 해오시던 모양인데 이번에 제가 직접 찾아뵙고 하기로 한 건 그만큼 국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치하고자 하는 노력, 성의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추경은 우리 일자리나 민생의 너무나 긴박한 그런 상황이고, 어차피 인사청문회는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거라 청문회와 별개로 추경은 빠르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시정연설 전 여야 지도부와 회동한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와 관련한 언급을 할 것이란 예상을 깬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경 예산 편성에 협력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날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감성적으로 시작됐지만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앞으로 일자리 추경의 쓰임새를 세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어진 점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제 추경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보고 드리겠다”고 말한 뒤 “추경 목적에 맞게 일자리와 서민생활 안정에 집중했다. 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규모 SOC사업은 배제했다. 대신 육아휴직급여,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등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통공약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거나 취업과 창업을 돕고,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는 안전·복지·교육 등 민생서비스 향상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충원이 꼭 필요했던 현장 중심의 인력으로 한정하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또한 이번 추경은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도 지원한다. 중소기업이 청년 두명을 채용하면 추가로 한명을 더 채용할 수 있게 3년간 지원해 민간에서만 5000명의 추가 채용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여주는 예산도 편성해 내일채움공제의 적립금과 대상을 확대해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들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 밖에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가구 임대주택 추가 공급, 출산 첫 3개월 육아휴직급여를 두배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두배 확대 등에 대한 지원도 포함된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한마디로 시급한 상황, 친절한 설명, 절박한 호소로 요약될 수 있는 시정연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적자 국채발행을 하지 않고,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도 없고, 선심성 지역예산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증세나 국채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하다”면서 “이렇게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다면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추경 시정연설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민주당은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며 호평한 반면,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협치 의지가 의심되는 일방적 요구”라고 혹평했다. 

특히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앞두고 언론을 통해 ‘읍소하러 간다’고 사전홍보를 하면서 제1야당을 빼놓고 3당이 기습적으로 추경심사를 합의한 것은 처음부터 협치를 할 의사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그것도 오후에 예결위 여야간사 협의를 약속해놓고 뒤통수를 때린 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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