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바른사회 연석 토론회, '이념 부재' 자성…"소모품 인재 안돼" 충고
"기회주의·패거리정치 벗어나 확고한 우파 신념하에 약자 보듬어야"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열흘 뒤면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자유한국당이 23일 보수우파 시민단체와 합동 토론회를 열고 진정한 '이념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언을 들었다.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근간이 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이념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학습하면서 당 스스로 이를 주창할 수 있는 집단이 되라는 충고가 있었다. 단순 정당민주주의를 넘어 '공론민주주의'의 장을 형성하기 위해 지식인 집단과 시민사회와 적극 연대·소통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가치 재정립을 위한 연속 토론회 첫 순서로 '보수의 미래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연석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처음부터 '쓴소리'로 시작됐다. 바른사회 공동대표인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개회사를 통해 "정당은 기본적으로 이념의 유통업이다. 이념을 베이스로 가야 한다"며 "우리가 이념이 있었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보수정권 (대통령) 취임사에 재산권, 법치, 자유권 등 자유주의적 키워드가 하나도 없었다."며 "이념이 없는 이념 유통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국당을 비판했다.

조동근 교수는 다만 "큰 변화를 감지한다. 시민단체 대표가 개회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신게 변화"라며 "시민사회의 에너지와 지식을 동원해 생각을 다듬고 고민하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우리가 이념 베이스 정당이 돼야 집권이 가능하고, 폭주하는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원동력도 온다"고 조언했다.

   
▲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가치 재정립을 위한 연속 토론회 첫 순서로 '보수의 미래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연석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 시작에 앞서 가장 앞줄에 (왼쪽부터) 박지향 서울대학교 교수, 바른사회 공동대표인 조동근 명지대 교수,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인제 한국당 전 최고위원이 앉아있다./사진=미디어펜


이에 대해 이인제 한국당 전 최고위원은 "한국당이 보수주의 정통 정당인데 이렇게 처참하게 좌절, 실패한 모든 원인은 보수 이념의 빈곤과 이념을 떠받칠 인재의 빈곤"이라고 수긍했다. 그러면서 "여연을 독일 아데나워 재단이나 미국 해리티지 재단 등을 모델로 보수이념을 계속 발전시키고 정책을 전개, 또 인재를 양성하는 거대한 호수같은 기능을 감당하는 기관으로 당에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19세기 벤자민 디즈레일리·20세기 마거릿 대처·21세기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대표하는 영국 보수당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며 성공 비결 5가지를 제시했다.

디즈레일리가 먼저 '하나의 국민(One nation)' 프레임으로 지지기반을 확고히 한 데 이어 대처가 "사회 같은 건 없다"는 구호로 거부하며 집권해 '영국병' 극복을 주도할 수 있었고, 캐머런은 "사회같은 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와 다르다"는 절충된 구호로 '시대상의 변화에 대한 적절히 대처'해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강력한 당의 결속과 충성도 ▲현실주의에 입각한 국가경영 능력 ▲애국과 국민 통합 ▲조직력과 선전 능력을 꼽았다.

김주성 전 한국교원대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실패의 원인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시장개입주의적 정치의식, 구시대적 권위주의와 같은 반(反)자유주의적 요소와 타 정파의 정책·인물 승계 거부, 20대 총선 공천파동과 같은 '뺄셈정치'에서 찾았다.

이에 따른 해법으로 보수 이미지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공칠과삼'이지만 건국·산업화의 주역으로서 민주사회 도래의 기반을 조성한 점을 자각하고, 북한정권과 종북세력을 '반민족 전체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국 보수당을 벤치마킹해 "7080 정치의식에서 벗어나 소통의 새 인물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만들어진 구도 속에서 중간자의 위치에서 선택받으면 된다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며 "기회주의적 편승의 자세를 중단해야 한다. 스스로 지지세력을 만들지 않는 게으름 때문에 '다수 대중의 중간에 서면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갖고 있다"고 한국당의 대중 영합주의적 행태를 비판했다.

김광동 원장은 "보수정당 조직과 국회의원이 지역대학이나 청년들에게 보수이념을 지향하는 단체 하나 만들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건 스스로 정당성이 없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며 "'높은사람'과의 '연고 만들기'에 집중된 연고중심주의가 작동하는 전근대적 현실을 극복하고 전국적 보수네트워크를 조직·가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강규형 명지대 교수도 한국당에 대해 "인재의 중요함도 모르고 사람을 끌어다 소모품으로 쓰기 바빴고 새로운 리더군을 형성하는데 실패했다"며 "확실한 건 한국당은 이제 당권에 연연할 때가 아니고 새로운 지도자군을 키워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그는 "한국 우파에 유리한 사실은 세계사의 조류가 우군이란 것밖에 없다"며 "끔찍한 공산전체주의를 종식하고 자유통일로 나아가는 건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에 역행하는 친·종북세력 등은 급속히 역사의 유물이 될 것이나, 이것만 믿으며 사는 건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가치 재정립을 위한 연속 토론회 첫 순서로 '보수의 미래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연석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왼쪽부터) 권순활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인영 한림대학교 교수,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고 김광동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맨 오른쪽)은 '한국 보수가 가야할 방향과 과제' 발제를 맡았다./사진=미디어펜


김인영 한림대 교수는 "보수는 사상의 빈곤, 정책의 빈곤, 풀뿌리 시민운동의 빈곤이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한국당의 보수주의 가치 학습·토론과 정책 제시를 요구하면서 ▲새로운 보수 지식인 운동 ▲미국 '티파티 운동'과 같은 풀뿌리 시민운동이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보수주의 운동은 안보를 중요시하더라도 그 지향가치가 '반공'에 머무른다면 수세적인, 수구적인 색채를 띨 수박에 없다"며 "권위주의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단지 진보좌파에 반대하고자 하는 '쉬운 시민운동'에 머물러 버린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라는 자기 정립과 주창운동이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권순활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우파와 좌파'를 '보수와 진보'라고 표현하는 풍조"를 경계해야 한다며 "계몽주의의 산물인 '역사의 진보'라는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공산주의로의 이행과 동일시함으로써 '도덕적 고지'를 선점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좌파가 진보'라는 견해는 지구촌에서 힘을 잃은 지 오래"라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지식인과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간의 활력과 사유재산권 존중을 중시하는 우파적 가치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라면서 "우파 정치권은 무엇보다 웰빙 기회주의 체질이나 개인적 친소관계에 따른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헌법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위에서, 정상적인 경쟁이 불가능한 장애인이나 빈곤층, 청소년이나 노인층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줘 '보수우파는 차갑다'는 사회 일각의 오해를 푸는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