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열 포스터/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미디어펜=황국 기자]아나키스트는 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과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제도권에서 봤을 때 일견 '불량아'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민족의 한이 맺힌 일제시대에 아나키스트는 단순한 '불량아'일가.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은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와 조선의 불량 청년이었던 박열(이제훈 분)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대중에게 비교적 낯선 아나키스트 청년 박열을 주인공으로 택했다.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

이 감독은 영화 '아나키스트' 제작을 준비할 때 살폈던 자료들 중 박열의 기록을 보고 언젠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박열의 냉정했던 논리와 뜨거웠던 투지,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뚝심은 이 감독을 매료시켰다.

이준익 감독은 자신을 매료시킨 박열을 보다 사실적으로 그리길 원한 듯 보인다. 그는 당시 발간됐던 아사히 신문과 박열의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 평전 등을 참고하며 인물을 넘어 일본 내각 정부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앞서 많은 한국 영화들이 일제시대를 그리며 고정적으로 가져가는 '틀'이 있었다. 가난한 조선인, 악독하기만 한 일본인. 이 모든 것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진실은 아니다. 냉정히 봤을 때 조선이 가난했더라도 지역 유지는 떵떵거리며 살만 했고 일본인 중에는 조선을 사랑한 자도 분명 존재했으며 억울하고 서러웠을지언정 그 속에 분노와 독을 품을 조선인도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틀'을 '박열'을 통해 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배경의 전환. 이 감독은 대부분 경성을 배경으로 다뤘던 일제시대 영화의 '틀'을 깨고 동경을 배경으로 삼았다. 배경이 바뀌니 다채로웠던 당시 일본인의 감성이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됐고 박열이라는 캐릭터의 심리상태가 보다 선명해졌다. 마치 다양한 꽃이 자란 꽃밭의 빨간 장미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것 처럼.

나아가 이 감독은 박열의 탈국가적이고 탈민족적인, 일본이 아닌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박열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시점을 관객들에게 제시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약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 삶의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와 함께 이준익 감독은 이제훈과 최희서를 주연으로 발탁해 관객들에게 보다 강렬한 분위기를 제시했고 배경에 맞는 자연스런 일본어를 위해 재일교포 극단 신주쿠양산박으로 일본 수뇌부를 구성했다.

이준익 감독은 기존의 '반일영화'와는 조금 다른 시각의 영화를 연출했다. 또 박열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알리는 것이 아닌 그의 생각과 감정을 면밀히 그려내기 위해 힘썼다. 이를 통해 이 감독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관점을 세세히 파헤쳐 관객들 앞에 가져왔다.

관객들은 더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준익 감독은 '소원' '사도' '동주' 등의 실화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몰랐고 외면했던 부분을 속 시원히 긁어줬다. 더 이상의 고민은 시간낭비일 뿐 아닐까. 오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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