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호건 이 화두에 가장 근접한 세계최고의 골퍼, US오픈우승 후 연습장 직행

방민준의 골프탐험 (2)-치명적 중독성은 어디서 오는가

벚꽃과 진달래꽃등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4월을 맞아 골프시즌이 본격적으로 돌아왔다. 골프 시즌을 맞아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칼럼에 들어가는 골프관련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가치를 더해준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골퍼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되새겨보고 정립하기 바란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에세이스트
골프의 중독성, 조금씩 모자란듯 것들의 절묘한 조합서 잉태

육체의 운동량으로 따지면 골프는 축구 배구 같은 구기종목이나 마라톤이나 장거리달리기 같은 육상 종목과 비교되지 않는다. 쾌감 또한 사격 야구 승마 등에서 얻는 것보다 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역동성이나 관객의 열광 면에서도 밀린다. 마치 안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 없는 느슨한 취미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치명적 골프의 중독성은 바로 조금씩 모자란 듯한 것들의 절묘한 조합에서 잉태되는 것은 아닐까. 육상이나 구기종목, 격투기, 등산처럼 많은 칼로리를 요구하는 운동도 아니면서 슛, 스파이크, 펀치, 배팅처럼 강렬함도 약하다. 프로골퍼를 제외하곤 관중으로부터 주시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제각각의 스윙, 그다지 빠르지 않은 걷기, 충분히 짊어질 수 있는 골프백과 제각각의 장비,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경기규칙 등 얼핏 보면 골프는 이렇다 할 특색이나 역동성이 없는 스포츠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결구도의 모호성, 결과의 의외성, 샷의 일회성 등...

그럼에도 골프가 치명적 중독성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은 왜일까. 대결구도의 모호성, 땀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결과의 의외성, 두 번 다시 같은 샷을 날릴 수 없는 일회성, 그리고 끝없는 탐험에도 불구하고 골프의 진수를 알았다고 큰소리 칠 수 없는 불가사의성 등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골프는 그 자체가 항상 새로운 것들과의 조우(遭遇)다. 그것도 계절, 날씨, 골프장, 골프장비, 파트너, 캐디 등이 엮어내는 수많은 조합과의 조우다. 그래서 한 번도 같은 느낌은 없다. 늘 신천지를 탐험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다.
 

조우 즉 만남은 접촉이다. 접촉은 어떤 형태로든 느낌을 준다. 스포츠의 궁극적 쾌감도 승패가 아닌 접촉의 느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작열하는 펀치로부터 전해지는 짜릿한 쾌감, 가벼운 터치의 상쾌함, 네트를 떠난 셔틀콕의 느낌, 발등을 떠난 공이 골네트를 가르는 순간의 쾌감,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순간의 느낌 등은 성적인 쾌감과 마찬가지로 촉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골프 최고의 미학은 주인공과 대상이 '하나됨'에 있다. 골프는 철저하게 촉감의 게임이다. 촉감은 대상에 대한 사랑과 비례한다. 방민준 그림

골프는 철저한 촉감의 게임, 완벽한 촉감은 쏟아붓는 사랑에 비례

골프야말로 철저한 ‘촉감의 게임(haptic game)’이다. 골프는 달리 보면 손과 골프채, 볼, 그리고 지면과의 접촉에서 쾌감을 얻는 스포츠다. 골프채가 아가위나무나 감나무에서 철, 티타늄, 카본 같은 복합소재 등으로 발전하는 것도, 골프공의 소재가 끊임없이 개발되는 것도 보다 나은 촉감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골프와 관련된 모든 공학은 결국 촉감과의 싸움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골퍼들은 곧잘 잊는다. 완벽한 촉감은 도구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대상에 쏟아 붓는 사랑에 비례하며 주인공과 대상과의 완전한 ‘하나 됨’이 이뤄졌을 때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내 도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좋은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엔 부단한 연습은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골프를 하면서 ‘하나 됨’을 이뤄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골프클럽은 ‘하나 됨’의 가장 일차적인 대상이다. 클럽과 내 손과 팔이 얼마나 친숙하고 익숙하느냐에 따라 골프의 행로가 달라진다. 그 다음 쯤은 육체와 클럽과 스윙의 ‘하나 됨’일 것이다.
 

골프는 하나됨의 미학, 일체화돼야 골프의 무애 무변한 세계 느껴

기능적인 차원만 이 정도인데 조금 시야를 넓이면 하나가 되어야 할 대상은 부지기수다. 잔디, 러프, 모래 등의 코스, 변화무쌍한 기상조건, 그리고 팀원 등과도 모래알 같은 이질감 없이 일체화가 이뤄졌을 때 비로소 골프의 무애 무변한 세계를 맛볼 수 있다.

골프를 관통하는 철학인 ‘하나 됨’은 필경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 Sure)’라는 화두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 화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골퍼는 없다. 화두의 기원은 15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훨씬 전부터 골퍼들의 가슴 속에 이 화두가 자리 잡았겠지만 명문화한 것은 이 때다. 제임스 6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찰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내기골프를 즐겼던 왕은 잉글랜드의 귀족 2명과 골프의 발상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서로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골프의 발상지라고 주장, 논쟁은 끝날 줄 몰랐다.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는 영원한 화두

그러자 잉글랜드의 귀족이 왕에게 제안했다. “좋습니다. 골프내기로 결론을 매듭지읍시다.” 이렇게 해서 잉글랜드의 귀족 2명 대 왕과 스코틀랜드인 1명이 골프솜씨를 겨루게 되었다. 왕은 신하들을 시켜 스코틀랜드 최고의 골퍼를 찾도록 했다. 왕의 파트너로 추천된 골퍼는 다름 아닌 존 패더슨이란 구둣방 주인이었다. 그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골프에는 뛰어났다. 그는 신분을 이유로 극구 사양하다 왕이 간청하는 바람에 골프장으로 나갔다.

시합은 단번에 판가름 났다. 패더슨의 묘기로 왕의 팀은 승리를 거두었고 왕은 내기에 걸린 거금 중 절반을 패더슨에게 주며 의미 있는 상패를 만들어주었다. 패더슨 가의 문장에 골프클럽을 새긴 뒤 그 밑에 왕이 직접 글귀를 써넣었다. ‘Far & Sure’라고. 세 단어로 된 짧은 명구는 이때부터 모든 골퍼들의 영원한 화두로 자리 잡았다. 찰스 2세 역시 이 명구 때문에 골프역사에 남게 되었다.

벤 호건이 가장 근접한 선수, US오픈 우승후 기자회견도 사양하고 연습장으로

이후 수많은 골퍼들이 이 화두를 좇았지만 벤 호건만큼 근접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1950년대 미국 골프계의 거성인 그는 US오픈 4승, 브리티시오픈 1승, 마스터스 2승, PGA선수권 2승 등 생애통산 62승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동시대의 골프 거두 샘 스니드는 “내가 골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 가지다. 번개와 내리막 퍼트, 그리고 벤 호건이다.”고 말했다. 진 사라젠은 “최고의 골퍼는 벤 호건 단 한사람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하루 연습안하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개디가 안다, 사흘 쉬면 갤러리가 안다" 명언

11세 때 가난 때문에 동네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은 호건은 철저하게 자신의 스윙을 분석하고 연구해 근대스윙의 이론을 정립한 ‘모던골프’라는 골프 바이블을 내놓기도 했다. 1948년 US오픈에서 우승하는 날, 호건은 기자회견도 마다하고 연습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이 사람아 지금 막 챔피언이 됐는데 기자회견을 해야지?”라고 말하자 “아닐세, 나는 지금 오늘 극복해야 할 문제점을 세 개나 발견했네.”라며 만류를 뿌리치고 연습 볼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호건인 남긴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캐디가 안다. 사흘을 쉬면 갤러리가 안다.”는 명언은 바로 완벽한 ‘하나 됨’을 추구하는 진정한 골퍼의 자세를 보여준다. /방민준 골프에세이스트 ginn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