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출신 경영인…효성 '글로벌 그룹' 만들어
재계 큰어른·민간 외교관 활동 동분서주
   
▲ 조석래 전 효성 회장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건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와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겠다. 후진 양성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겠다.”

지난 36년간 효성그룹을 이끌어 온 조석래 전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해 그의 ‘아름다운 퇴장’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조 전 회장은 1966년 효성그룹 모태인 동양나일론에 입사한 뒤 51년 전 부터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경기도가 인천시와 분리된 이듬해인 1982년부터 경기도유도회 전무이사와 상임부회장(1993년)을 역임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서 발전을 이끌었다.

"세상에 없는 신소재 개발하라" 

공학도 출신인 조 전 회장은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만큼 '도전적인 경영인'으로 꼽힌다. 처음 효성에 입사했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진정한 경쟁력은 바로 기술력"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효성과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여는 연구개발 분야에 매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효성 하면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오는 이유도 그것이다. 효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판덱스는 그의 첫 작품으로 꼽힌다. 

효성은 1990년대 독자기술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했고 2010년부터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재분야에서 새 역사를 쓴 것이다.

   
▲ 2005년 4월 중국 칭다오 스틸코드 공장을 방문한 조 전 회장이 현장에서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제공

타이어코드, 폴리케톤 역시 효성의 자체 기술로 대표된다. 1968년 나일론 타이어코드를 생산한 효성은 1978년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를 생산했다. 

효성은 최근 "세상에 나와있지 않은 새로운 신소재 개발에 도전하라"는 조 전 회장 특명에 따라 '폴리케톤'이라는 신소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계 무대에 알리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뚝심' 기업인

지난 60년 효성 역사 안에는 그늘도 있었다. 수 없이 반복되어 온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한 일이다. 효성의 구조조정 사례는 지금도 경영혁신의 성공 사례로 소개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조 전 회장은 우량 계열사였던 효성BASF와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중공업 부문의 효성ABB를 매각했다. 동시에 효성T&C와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주력 4개사를 (주)효성으로 합병했다. 조 전 회장의 '뚝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 2000년대초 주요 생산 기지였던 중국에서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경영환경이 어려워지자 조 회장은  ‘글로벌 생산 체인’ 전략을 펼쳐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그는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주력 제품의 핵심 생산 기지를 베트남으로 낙점하고 2007년 신공장 건설에 나섰다. 이들 공장은 현재 효성이 세계 1위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재계 큰어른·민간 외교에 주력 

조 전 회장은 효성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재계 리더로 동분서주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장(2007~2011년)은 물론 한·미재계회의 한국 위원장(2000~2009년)과 한·일경제협회장(2005~2014년)을 맡아 민간경제 외교관으로 세계를 누볐다. 전경련 회장 시절 “그래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 조석래 전 효성 회장이 2007년 제20차 한미재계회의 사전 결단간담회에서 한미 양국간 투자보장협정과 FTA를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효성그룹 제공


1998년 조 전 회장이 전경련 회장 역임 당시 국민들이 전경련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 출입기자들을 불러모아 여론을 적극 수렴했다. 

그는 각계단체 및 후배들과의 대화를 즐겼고, 대화를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장에 반영하고 정책에 수용했다. 효성이 최근 발간한 '내가 만난 그사람, 조석래'라는 제목의 기고문집에서도 그는 '소통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봉사·후학 양성으로 경제 기여

효성은 지난 14일 조 전 회장이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51년만에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이다. 그는 지난해 말 장남인 조현준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물려준 뒤 대표이사 직함만 유지하고 있었다. 

효성그룹은 조 전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으로 본격적인 ‘3세 경영’에 돌입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 조 전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은 후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재계에서는 효성이 지난해 영업익 1조원 클럽에 가입하는 등 안정화되는 단계에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점이 3세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 

조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지만 후학 양성을 통해 경제에 기여한다. 그는 사임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과 후진 양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석래 전 효성 회장 프로필   

- 학력 사항 
1948年 경기중고등학교 입학
1955年 日 히비야고등학교 졸업
1959年 日 와세다대 이공학부 졸업
1966年 美 일리노이 공과대학원 졸업 (석사)

- 주요 경력
1970年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
1973年   동양폴리에스터㈜ 대표이사 사장
1975年   효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1976年   효성물산㈜ 대표이사 사장
1981年  효성중공업㈜ 회장
1984年   학교법인 동양학원 이사장 (現)
1998年   (주)효성 회장 (現)

- 대외 직책
1976年   한국-DENMARK 경제협력위원회 회장
1980年   대한배구협회 회장
1981年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87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3年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1993年   일본와세다대학 한국교우회 회장 
1996年   일리노이공과대학(IIT) 재단이사 (現)
2000年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위원장 
2000年   와세다대학 商議員 (現)
2000年   와세다대학 客員評議員 (現)
2002年   PBEC(태평양경제협의회) 국제회장
2005年   한일경제협회 회장 (現)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現)
2007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2011.2)

- 상훈
1971年   수출유공 대통령 표창
1972년   석탑산업훈장
1974年   동탑산업훈장
1976年   공장새마을운동 대통령표창
1980年   덴마크 Dannerbrog 훈장
1982年   체육훈장
1987年   금탑산업훈장
1994年   한국 경영자 대상
2000年   일리노이 공과대학(IIT) 국제지도자상
2005年   일본 와세다 대학 명예공학박사 
2009年   일본 정부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 수훈
2013年  일리노이 공과대학(IIT) 명예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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