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 번영은 '기업경제' 덕분
"'기업' 위에 정치가 군림해선 안 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세상의 변화는 기업이 일으킨다. 기업의 창의성,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리더십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오만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 이 교수는 "시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었고 농경시대에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 시대를 '시장경제' 보다는 '기업경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우리가 이렇게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업경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사진=이병태 교수 제공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다"고 단언했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기업' 위에 정치가 군림하려 드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 교수는 "시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었고 농경시대에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 시대를 '시장경제' 보다는 '기업경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우리가 이렇게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업경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카이스트 경영대학 강단에 선 이병태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그 후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고,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라는 페이스북 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제발 응석부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는 그의 진심어린 충고는 '힐링'이라는 유행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 교수는 '힐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힐링'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프다는 얘기"라며 "스스로를 치료가 필요한 환자, 약자, 희생자로 규정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가장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할 젊은이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며 "이런 문화는 표를 얻기 위한 일부 정치인들의 '선전선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청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스스로를 희생자라 규정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양극화', '불평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불평등의 논리로 세상을 보니 먹이사슬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 같은 기업, 재벌 총수가 온갖 미움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 이병태 교수는 최근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라는 페이스북 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사진=이병태 교수 페이스북 캡쳐


'반기업 정서'는 '기업에 의해 내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그는 "산업혁명 후에 새로 얻게 된 발명품이 바로 '기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교수는 "커다란 자본과 많은 사람의 노동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인 '기업'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가치창출의 엔진이라고 볼 수 있다"며 "엔진이 꺼지면 다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의 긍정적인 역할이 자명함에도 '불평등'의 불똥은 늘 기업에게 튄다. 

이 점에 대해 이 교수는 "중견기업은 대기업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고 자영업은 중소기업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대기업 덕분에 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고, 중견기업이 있기에 자영업이 자신들의 물건을 납품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통신비 인하' 문제도 반기업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통신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도 했다. 

그는 "통신 시장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그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려는 이유는 '오만'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인기영합'적인 이유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가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고 하면 표가 되고, 그것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 정치인들의 오래된 습관"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된다는 말을 명심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자유시장 옹호자'를 자처하는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재벌 앞잡이'이다. 이에 이 교수는 "매우 잘못된 현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메시지'에 집중하지 않고 '메신저'의 공격을 일삼는 것인 인격살인이라는 뜻이다. 그는 "본질에서 벗어난 말로 공격하는 것은 토론의 기본자세가 안 돼 있는 것이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유는 행복의 문제고 풍요의 문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는 "내 자유가 소중하면 남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개인의 자유든 기업의 자유든 자유가 지켜져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 "자유는 행복의 문제고 풍요의 문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병태 교수는 "내 자유가 소중하면 남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사진=이병태 교수 제공


다음은 이병태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미래부 장관 취임 후 통신비 인하 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통신비 인하를 정부 정책으로 앞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정부가 통신비 인하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정부가 어떤 산업에 개입 하려면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시장실패가 일어났다거나, 독과점 횡포가 일어나고 있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통신 시장은 성공 사례지 실패 사례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품질이 가장 좋고, 단가도 제일 저렴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통신 산업에 개입 하고 있다. 혹여 독과점이 걱정돼서 그렇다면 독과점에 개입한 기업을 처벌 하면 되고 그것이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곳의 역할임.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정부가 가격을 디자인하고 서비스를 디자인 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공산주의 계획경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통신시장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겠다는 '오만'이 있는 것 같다. 정부가 개입해서 잘못된 '정치실패'의 예로 어떤 것이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북한과 우리의 경제 여건은 비슷했다. 같은 민족이고 교육 수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우리가 더 잘 살고 있다. 북한이 그렇게 된 이유는 국민의 실패, 시장 실패가 아닌 '정부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나라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떤 정부이냐가 가장 중요함. 정부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경제 개발이 달라지는 것임. 가난은 대부분 정부실패에서 옴. 그럼에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려는 이유는 '오만'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인기영합'적인 이유가 더 큼. 몰라서라기 보단 국민이 원한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정부가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고 하면 표가 되고, 그것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표를 매수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오래된 습관이다.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된다는 말을 명심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다. 그런데 기업 위에 정치가 군림하는 것 같다. 이것은 법치 하에 있는 것과 다른 문제다.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신분차별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부가가치 한번 창출해보지 않은 정치인들이 기업인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우선 '시장경제'라는 말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었고 농경시대에도 있었다. 다만 예전에는 영주 마음에 따라 시장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는데 산업혁명 후에는 자유시장 체제 하에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졌다. 시장은 원래부터 있어 왔고, 산업혁명 후에 새로 얻게 된 발명품이 바로 '기업'이다. 지금은 시장경제가 아닌 '기업경제'다. 우리가 이렇게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업경제 덕분이다. 

산업혁명 후 생산 현장에 기계가 많이 투입됐다. 기계는 한 두 사람의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큰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드리려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 자본력으로 기계와 노동력을 합쳐서 혁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기업은 커다란 자본과 많은 사람의 노동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법률적인 메커니즘이다. 기업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가장 가치창출의 엔진이라고 볼 수 있다. 엔진이 꺼지면 다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의 경제는 기업경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고, 기업경제는 자유시장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세상은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잡스가 만든 스마트폰 때문에 변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기업이 일으킨다. 기업의 창의성, 그것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리더십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그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오만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반기업정서'의 기저에는 "내가 가난한 건 기업이 우리를 착취해서다"라는 미신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시는가?

세상은 풍요로워졌는데 이전보다 불평등해졌다는 게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학력이 달라도 임금격차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좋은 학교를 못나온 사람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이 '힐링'이다.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힐링'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프다는 얘기다. 내가 환자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렇게 스스로를 약자로, 희생자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당한 문화적 타락이라고 볼 수 있다. 

불평등의 논리대로라면 먹이사슬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이 기업, 재벌총수다. 그들 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중견기업은 대기업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고 자영업은 중소기업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 때문에 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업이 되고, 중견기업이 있어서 자영업이 무언가를 납품하며 사는 것인데 전부 강자에 의한 희생자를 자처하고 있다. 특히 가장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할 젊은이들을 다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문화를 정치인들이 만들어간다. 문화계에서도 이런 게 개념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온갖 곳에서 '힐링' 열풍이 불고 있다. 진취적이어야 할 주체들이 문화의 타락을 선도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양극화', '빈부격차'를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 '지니계수'다. 최근 새로운 통계를 공개하셨는데 소개 부탁한다.

전체의 소득분포가 얼마나 균질하게 되어 있나 보는 것이 '지니계수'다. 우리나라 지니계수를 보면 그야말로 '헬조선'이고 전 세계에서 양극화가 제일 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인구가 많을수록 지니계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인구가 작은 도시의 사람들은 소득이 비슷하지만 나라가 커지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금융이 발달하고, 어떤 데는 농업이 발달하고, 다른 곳은 어업이 발달해 있다. 도시마다 부가가치, 물가, 소득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라가 커지고 경제 분야가 다양해질수록 분산이 커지니 지니계수가 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의 인구수 별로 지니계수를 분석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면 5000만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 중 우리보다 양호한 국가는 독일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이 아닌 1000만이라고 가정하면 지니계수가 OECD 국가 중 제일 좋은 나라로 올라간다. 어설픈 통계로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심하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해석이 아닌 선동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이 내용과 관련해 "장하성 vs. 이병태 중 누가 진실을 말하냐"는 주제의 칼럼이 나온 적이 있다. 식상한 질문이지만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2015년에 발간한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살펴보면 통계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이 창출하는 부를 분석하니 근로자가 가져가는 비중이 점점 줄고, 기업 주주, 나라가 가져가는 것이 많다, 그래서 시장이 소득분배에 실패했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적이다" 이것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장하성 실장이 간과한 것이 있다. 기업이 글로벌화로 성공하면 당연히 국내 근로자가 가져가는 임금 비율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무슨 뜻이냐면 삼성전자는 지금 많은 제품을 동유럽에서 만들고 중국에서 만들고 베트남에서 만들고 있다. 그러니 매출액 중 상당 부분의 인건비를 베트남, 중국, 동유럽 사람들이 가져간다. 또 현대자동차도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이 70%고 국내가 30%다. 그러니 해외에 있는 70%의 노동자가 임금의 일정 부분을 가져간다. 때문에 해외종업원수가 늘어나면 전체 이익에서 국내종업원이 가져가는 폭은 저절로 줄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이치를 설명하지 않고 단순 왜곡하는 것은 엄연한 선동이다. 한국 기업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나쁜 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념적으로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고 보고, 거기에 맞춰서 통계를 만들다 보니 황당한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그 통계는 조작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선동이라는 뜻이다. 모르고 그랬다면 그 분이 받은 박사학위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선동이고 조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선동이라고 본다. 나는 그가 낳고 있는 숱한 오해를 풀기 위해 방송, 칼럼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OECD 통계 오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의견에 대해 장하성 실장이 반박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보고, 읽는 분들이 진실을 파악할 것이라 믿는다. 

△4차산업혁명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AI, IoT 같은 것을 신기해하면서도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음모론자에 의해 생성된다. 음모론자들에게 일침 부탁드린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일자리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몇백만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과장이고 오만이다. 반도체를 처음 만들었을 때 주판이 없어지고 전자계산기가 나온다고 예측했을 뿐 음악, 미술, 영화, 사진, 심지어 신문이 그 안에 다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웹이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단지 정보를 검색하고 전달하는데 편리한 인터페이스의 발전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이 택시를 검색해서 불러주고 아무 때나 들고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원하는 것을 검색한다. 그게 가능해지니 우버라는 회사가 생기고 에어비엔비가 탄생했다. 

어떤 기계든 그 기술이 발명되면 1차 목적 외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기술이 다른 기술 응용 분야를 찾아내고, 그것으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는데 어떻게 예측이 가능하겠는가. 농업혁명이 없었으면 지금 다 배고팠을 것임. 2차 농업혁명 때 화학비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산력이 늘어났다. 또 산업혁명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 농경시대에 살았을 것이다. 과거의 다른 모든 혁명은 인간의 부를 증진시키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병을 쫓는데 기여를 했는데 이번 4차 산업혁명만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잘못된 생각이다. 

또 나쁜 일자리는 파괴 돼야 한다. 정부는 일자리라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래전 맥킨즈라는 사람이 정부가 잘못하는 것 중 하나가 '일자리 신화'라고 했다. 정부가 할 일은 일자리 파괴를 도와주는 것이다. 예컨대 60년대 산업화 시절, 우리나라에 가장 흔한 것이 가발 공장이었다. 만약 일자리가 없어지면 안 된다며 가발공장을 계속 지켰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됐겠는가, 계속 못 살았을 것이다. 가발 공장 일자리가 기계 만드는 일자리가 되고 그것이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만드는 일자리로 변하고, 배 만드는 일자리가 됐기 때문에 번영이 있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공장에서 빨리 뛰어다닌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고 산업이 고부가가치로 바뀌면서 생기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부가가치가 낮은 일자리는 빨리 파괴 되고 더 좋은 일자리로 옮겨가야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전환을 잘 못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런 분들 도와주기 위해 있는 것이 '사회복지'다. 

△스스로 'freemarket freedom believer'라고 규정하셨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재벌앞잡이'라 비판 받기 쉽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자유가 소중하면 남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람은 아니지만 법인임.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한 게 법인임. 기업의 자유든 개인의 자유든 자유가 지켜져야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해야 행복할 수 있다. 제약이 많으면 안 된다. 자유는 바로 행복의 문제고 풍요의 문제다. 그 철학에 확신 없는 사람들이 희생자를 자처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특정 세력을 비호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는 매우 잘못된 현상이다. 시민단체에 계신 분들과 통신비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는데 통신비 인하에 반대를 했더니 돌아온 말이 "재벌 비호하냐"였다. 아주 야비하고 나쁜 태도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논리적으로 타당하냐에 대해 논의를 해야지 사람의 인격을 공격하고 의심하며 '재벌 앞잡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토론의 기본이 안 된 것임. 그것은 본질을 벗어난 논의임. 때문에 "누구를 비호하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해하고 반성해야함. '메시지'에 집중해야지 '메신저'에 집중하는 것은 인격살인과 같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이런 말이 있다. "젊어서는 'value creator',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 혁신하는 사람이 되지만 나이가 들면 'value keeper', 사회의 가치를 지키려 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사회적 도움을 받아 이 자리까지 왔다. 내가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건 경영학 지식, 경제학 지식이다. 또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 봤기 때문에 열린사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너무 국수적으로 폐쇄적이고 획일적이며 집단적인 면모 때문에 서로 행복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높일 생각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