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지킨 용단…위기의 대한민국 수호엔 2% 미흡
   
▲ 조우석 언론인
문재인 대통령이 박수 받을만한 일을 했다. 군 통수권자다운 결심이 아닐 수 없는데 국방예산 증액이 그것이다. 그는 "국방예산을 임기 내 GDP(국내총생산)의 2.9%로 높이겠다"고 18일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와의 오찬에서 확인했다. 현재 국방예산은 GDP의 2.4%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방예산 3% 인상을 공언했지만, 그게 빈말이 아닌 셈이다.

쉽지 않았을 이 결심을 일단 환영한다. 이 보도 다음 날 사병들의 복무기간을 현 21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이는 등 선심성 정책이 바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국방예산 증액은 전향적 조치가 분명하다. 이 정책에 신뢰감이 드는 건 그날 곁들여진 문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그는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지만 이 역시 압도적 국방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경제는 조금 더 잘살기 위한 문제이지만 국방은 국가의 존립과 생존이 달린 문제다."라는 이례적인 발언도 그날 곁들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예산이 GDP 대비 2.16~2.35%였던 것에 비해 2.9% 증액이란 큰 폭 상승이 분명하다.

국제무대에서 코리아 패싱 막을까?

그럼 이런 전향적 조치가 문재인 정부의 안보관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보수우파를 포함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북한 체제보장과 흡수통일론 배제, 남북대화 최우선을 주창해온 문재인 정부를 못 미더워 해온 민심에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또 하나 관전 포인트가 있다. 국방비 증액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국제무대에서 이른바 코리아 패싱(한국 건너뛰기)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흐름과 엇박자를 내면서 국제무대에서 '투명 국가' 취급 받는 걸 막아줄 카드가 될 것인가? 그 역시 관건이다.

이 두 가지 관전 포인트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핵 앞에 굴종하는 '가짜 평화론'의 허구를 내내 경계해왔던 필자로선 차제에 몇 가지 조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국방예산 증액이 임기 내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겠다는 계획과 직결돼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 게 우선 걸린다.

물론 "임기 내 전작권 환수"란 목표는 "조속히 전작권 환수"로 그 다음 날인 19일 수정됐다. 실무자의 임의적 조정이 아니고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의구심은 남는다. 국방예산 증액이라는 명분을 쌓아 전작권 환수를 둘러싼 논란을 차단하고, 본래의 구상을 밀어붙이겠다는 복안일까? 그런 석연치 않은 느낌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전·현직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3군 총장 등 주요 군 지휘부를 초청해 함께한 오찬에서 "국방예산을 임기 내 GDP(국내총생산)의 2.9%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제공

남과 북 사이의  문제는 핵 대 비핵 사이의 비대칭 전력 차이 문제인데, 문재인 정부의 국방예산 증액은 왜 재래식 무기 증강과 병력 운용 변화에만 집중돼 있는가. 그 점도 안타깝다. 한반도 초미 상황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때문에 “트럼프가 한반도에 핵을 재배치하지 않으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핵 개발에 나서겠다”고 선언해야 할 국면이다.

더욱이 지금은 북한 김정은의 ICBM 성공으로 미국과 한국에 심리적 선전포고를 한 마당이다. 이 와중에 사드가 배치된 성주에서는 이 무기체계 운용을 방해하는 좌익세력들의 무법천지가 연출되고 있다면, 문재인 정부는 좀 더 사려 깊은 전방위 작업으로 국민들을 안심시켰어야 옳았다. 그래야 "국방예산 증액으로 헛돈 쓰지만 막상 북핵엔 무기력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둘째 조언은 문재인 정부가 국방예산 증액한다고 선언했자면, 차제에 우리나라 예산의 구조적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북핵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혹은 향후 5~10년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증액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도한 복지 예산을 손대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에게 그런 배짱과 안목이 있는가?

눈덩이 복지예산에 과감히 손대야

구조를 들여다보자. 눈덩이처럼 커지는 추세의 복지예산은 130조 원을 돌파했는데, 전체 예산의 3분의 1이다. 이에 비해 현 국방예산은 40조 원 내외라서 복지 예산의 30%가 채 안 되는 규모다. 국가가 있어야 복지도 가능하다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절박한 명제는 이 때문에 나온다. 국방예산이 40조 원이라고 하지만, 무기구입을 포함한 전력증강비로는 10여조 원밖에 쓰지 못하는 구조다.

따라서 복지예산 130조 원에서 30조 원만 떼어내도 전력증강비를 두세 배 늘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국방예산을 GDP 대비 2.9%로 올린다지만, 우리나라 국방비는 세계 평균에 비해 높지 않다.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은 세계최대 군사밀집 지역이지만 국방비는 기이할 정도로 낮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주요 분쟁국 또는 대치국의 국방예산 평균은 3.69%나 된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향해‘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해도 우린 할 말이 없다. 더욱이 19일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178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조선일보는 "선심 국정과제에 178조 원, 국민세금을 물 쓰듯"이라고 비판(20일자 사설)했다. 이게 무얼 뜻하는가. 국방예산 증액이라는 빅 카드를 뽑았으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국가예산과 용처(用處)를 둘러싼 전반적인 균형감각과 안목이 태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평가할 건 평가하는 게 예의다. 국방예산 증액은 의미있는 전향적 조치가 분명하다. 보완작업을  곁들일 경우 문재인 정부가 큰 일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을 수 있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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