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개월은 국정농단 사태로 상처받았던 많은 국민들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국민은 물론 청와대 참모진들과의 원활한 소통에 권위를 내려놓은 문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은 환호했고, 이어진 정상외교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이른 바 문재인 정부는 유혈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무혈 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를 이뤄 선거를 통한 승리보다 더 조명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단 출발이 놓은 문재인 정부가 이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국회에서 여야간 협치를 잘 이뤄나가면 국민들은 ‘3김 시대’를 벗어나 사실상 처음으로 성공하는 정부를 목도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던 중 청와대가 이전 정부에서 생산된 문건이 다량 발견됐다며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법원에서 지지부진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와 관련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이란 메모가 포함됐다. 

으레 대기업 회장들이 특정 체육 분야를 지원해왔지만 그런 국위선양을 위한 대기업의 후원사업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특정인에게 베풀어졌으니 이를 놓고 쌍방이 이득을 취한 정황이 있었을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으며, 바로 전직 대통령과 삼성 부회장의 뇌물죄 성립의 핵심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 및 문체부 주요 간부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한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

또 ‘보수 논객 육성 프로그램 활성화와 보수단체 재정 확충 지원’ 문건을 발표한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가 특정 이념 확산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에서도 다량의 문건이 발견됐고, 곧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가 “국익을 고려했다”며 발표 계획을 취소했다.   

그런데 청와대의 이전 정부 문건 공개를 바라보는 여론은 환호하지 않는 모습이다. 원래 공개되어선 안 되는 것을 문재인 정부가 공개하니 의아해했다. 언론들은 국정농단사건 재판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보도하기 시작했고, 청와대가 인위적으로 특검에 힘 실어주기를 한다는 평가도 뒤따라 나왔다.
 
청와대 문건 발표 시기는 정상외교를 끝낸 문 대통령이 국내 정치로 복귀하자마자 두 번째 인사지명 철회를 하면서 청와대의 독주에 첫 제동이 걸릴 즈음이었다. 동시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669만원짜리 침대가 화제가 됐고, 앞서 공개됐던,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관저의 사방거울’과 함께 이전 정권 욕보이기가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7월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넷에서 발견했다고 밝히며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이라고 공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적폐청산’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는 분명 이전 정부와 다를 것이라는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적폐는 도려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청와대 문건’이든 ‘대통령의 침대’이든 ‘관저의 거울’이든 굳이 까발려야 할 대상인지 오히려 뒷말이 풍성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문건 공개는 취임 2개월이나 지나 이뤄졌지만 이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 썩 명쾌하지 못해 논란으로 남을 전망이다. 대통령선거 전 특검이 그렇게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던 것을 감안할 때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수석실 수색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란 상상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초유의 대통령 파면이 있었지만 청와대에 그렇게 많은 문건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나와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는 마치 코미디 같은 일자리 추경안 처리가 벌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핵심 쟁점이었던 ‘중앙직 공무원 증원’의 경우 추경안에 포함됐던 예산 80억원이 전액 삭감돼 예비비로 지출하기로 했고, 군 부사관·군무원 채용 규모도 반토막이 났다. 

정족수 미달로 본회의 표결이 지연되면서 야당의원들의 퇴장과 입실을 반복했는데, 정작 여당 의원 26명이 불참해 이런 대치 상황을 초래했다. 정권 초기인데도 합심하지 못하는 여당의 현실이 투영된 셈이다. 지금 정치권은 거대 여야 정당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벌써부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셈법에 분주해질 전망이다.
  
청와대가 증세와 개혁을 화두로 내걸고 향후 5개년 국정운영에 본격 시동을 걸었지만 국회의 협조가 원만하게 이뤄질 것을 예측하기 힘든 이유이다. 특히 “증세는 없다”던 문 대통령이 증세 카드를 꺼내들면서 경제컨트롤 타워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소외되는 등 내각 중심이 아니라 청와대가 주도하는 국정 운영도 예상됐다.

취임한 뒤 ‘준비된 대통령’이란 평가가 쏟아질 정도로 기대감을 집중시킨 문재인 정부의 자신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대선 때 화두였던 ‘대탕평 내각’은 물 건너간 지 오래이고, 야당은 협치는 커녕 문재인 정부의 실기만 노리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국민들은 이전 정부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야당의 견제활동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해왔다. 지금 청와대도 자신들을 견제하고 비판할 건전한 야당을 필요로 할 때 성공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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