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DJ 대중경제론의 짝퉁 용어…수용한 건 실수
신보수주의 깃발 내건 혁신위의 원칙 제시는 훌륭
   
▲ 조우석 언론인
용어 하나 가지고 그 법석을 떨었나 싶다. 그러나 해볼 만한 논쟁이었다.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에 들어간 서민중심경제란 용어를 둘러싼 갑론을박 말이다. 혁신위는 그게 과연 적절한지를 놓고 며칠 머리를 맞대던 가운데 그 용어를 채택하는 걸로 결론을 냈고, 여기에 반발한 혁신위원 한 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뤘다.

과연 그럴만한 사안이었나? 그렇다. 당 정체성이 걸려있고 한국경제의 어제 오늘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인데, 앞뒤 스토리는 이렇다. 2일 한국당 혁신위(위원장 류석춘)가 발표한 혁신선언문은 신보수주의 깃발 아래 보수우파를 통합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거기까진 좋다. 그 명제 아래 경제 부문에서 두 가지 노선을 병치시켰는데 이게 분란이었다.

첫째가 경제적 자유란 원칙이고 둘째가 서민중심경제 지향이란 대목이다. 좀 아쉽긴 하지만 크게 나쁘지 않은 결과인데, 헌법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다 아시듯 우리헌법 119조 1항은 경제자유의 원칙을 천명했지만, 2항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명시했다. 혁신선언문도 결과적으로 그쪽이다. 좌클릭이 유행인 시절 이만하면 다행인데, 그렇다고 뒷맛이 개운한 건 아니다.

   
▲ 한국판 대중경제론(왼쪽), 미국에서 출간된 대중경제론(가운데), 97년 출간된 대중참여경제론(오른쪽).

대중경제론 원조는 빨치산 출신 박현채

서민중심경제 용어에 반대해 혁신위원을 박차고 나온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그게 시장경제에 대한 존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사퇴의 변에서 밝혔다. "서민중심경제란 민중민주주의의 경제적 표현"이라는 견해도  내놨다. 그게 맞는 소리다.

상식이지만 한국정치사에서 서민중심경제란 용어의 뿌리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 분명한데, 그게 수상쩍은 이론이란 걸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 즉 대중경제론은 민족경제론과 형제 사이다. 주창자도 동일 인물인데, 소년 빨치산 출신의 박현채란 위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대중경제론은 박현채가 사실상 써서 1971년 대선 전 김대중의 저술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대중경제론:100문100답>이 문제의 책이다.

수상쩍다는 건 그게 196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바람 분 종속이론의 짝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가 변형된 종속이론은 이른바 자립경제를 위해 수출보다는 내수, 대기업보다는 농업과 중소기업을 강조한다. 그러다가 이내 포퓰리즘으로 곤두박질하는데, 실은 김대중 이전부터 명분 좋아하는 한국 야당이 내건 깃발이란 걸 기억해야 옳다.

박정희의 대기업과 수출 드라이브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던 야당이 그걸 대안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첫 출발이 1965년 박순천 민중당 대표가 박정희 개발정책의 대안으로 100만 안정농가 창설을 주창한 것이다. 이듬해 민중당 대선 후보 유진오 박사도 재벌경제를 대중경제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외자 도입을 특권경제라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걸 완성한 게 김대중의 이른바 대중경제론인데, 문제는 그게 한국정치사 최대의 허풍이란 점이다. 즉 현실정치 안에 채택되어본 일이 없다. 경제사학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말대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은 그 낡은 경제이론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세계 앞에서 여보란 듯 대성공을 거뒀다.

   
▲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혁신선언문에 들어간 서민중심경제란 용어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벌였다.혁신위는 그 용어를 채택하는 걸로 결론을 냈고, 여기에 반발한 혁신위원 한 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뤘다.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유동열도 잘했고, 혁신위도 훌륭했다

김대중도 바보가 아니라서 대중경제론을 포기했다. 집권 당시엔 박정희 식 시장경제와 개발노선을 사실상 받아들여 한국경제를 운용했다. 대중경제론이라는 게 정치적 슬로건일 뿐이라는 걸 김대중 본인이 잘 알았다는 뜻일까? 그래서 문제다. 왜 이 나라의 여야 바보 정치인들은 아직도 대중경제론의 망령에 사로 잡혀있는가?

일테면 집권여당 민주당 강령을 한 줄 한 줄 읽어보라. 저네들이 아직도 그 따위 헛소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또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도 현대사에 대한 확신이 없긴 마찬가지여서 애매한 용어인 '동반성장'이란 말을 줄곧 써왔다. 그게 60~70년대 성공 방정식과 완전히 거꾸로란 걸 여야를 막론하고 이 나라 정치인들이 잘 모른다.

그걸 염두에 두고 냉정하게 말하자.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에 들어간 서민중심경제란 단어를 둘러싼 진통은 그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정통 보수세력의 혁신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 용어를 들먹였다니…. "서민에 대한 배려와 복지도 잊지 않는다"는 정도의 서술이면 족했다.

그 점에서 유동열의 혁신위원 사퇴는 보수이념에 충실한 자세로 높이 사야 한다. 그럼 혁신위가 채택한 혁신 선언문은 무가치한가? 그건 아니다. 지난 9년간 집권하며 보였던 행태를 정치적 타락으로 규정하는 결기부터 혁신위의 문제의식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보수우파 세력의 통합과 재집권을 혁신 목표로 제시한 것도 만족스럽다.

문재인 정부가 목매는 이른바 광장 민주주의의 위험을 배격하고 대의제를 통한 국민 주권 실현 등을 재확인한 것도 당연하다. 강성 귀족노조 배격도 용기있는 태도가 분명하다. 한국당은 이런 기조 아래 조직과 제도 정비를 거쳐 인적 청산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제부터 볼만할 것이다.

즉 서민중심경제 문제로 잠시 논란을 빚었지만, 전반적으로 혁신위는 정치적 슬기로움을 잘 발휘했다. 이제는 각론 차례다. 선언문 말미에 명시한대로 혁신-통합-수권(受權)이라는 명제를 실현해 당의 환골탈태를 거듭 기대한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폭주 속에 국가 수호가 걱정인 상황이다. 당신들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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