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병화 기자] “상황도 좋지 못한데 굳이 지금 (집을) 팔 이유가 없죠. 일단 전세보다는 월세로 돌려놓고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강남구, 57세 다주택자 김모씨)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작은 신혼 집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대출도 어려워졌고, 매매는 이제 힘들 것 같습니다. 전세 가격도 너무 높아서 월세 밖에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송파구, 35세 직장인 강모씨)

월세는 늘어나고, 전세는 귀해지고, 올 하반기 강남 재건축 이주폭탄까지 더해지며 전세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른 바 ‘8·2 부동산대책發 서울 전세대란’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책 발표가 있었던 8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09% 상승했다.

전세대란은 전세수요 증가에 반해 전세공급이 감소하며 나타나는 전세가격 폭등을 의미한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는 이번 대책에 포함된 ‘양도소득세 중과’에 대한 다주택자들의 움직임이 관건이다. 다주택자들이 정부의 의도대로 매물을 내놓으면 집값이 안정되고 전세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다주택자들은 버티기에 들어갈 모양새다. 서울 개포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번 대책에는 보유세 증가 내용도 빠졌는데 서울, 특히 강남의 고소득 다주택자들이 급하게 집을 팔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수익성 측면에서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할 것이고 전세품귀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의 월세전환 확산도 예상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8·2부동산대책의 ‘대출 규제 강화’가 전세수요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투기 수요를 잡기 위해 서울 전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각각 40%로 강화했다.

다만, 서민·실수요자에게는 10%포인트 완화한 50%를 적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지만 ‘무주택자, 6억원 이하 주택, 부부 합산 소득 6000만원(생애 최초 주택구매자=7000만원)’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함께 붙었다.

강남에 직장을 둔 37세 김모씨는 “올초 이직 후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이사를 계획했는데 (8·2부동산대책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대출이 1억원이상 감소할 것 같다”며 “내 집 마련의 꿈은 포기했고 주말부터 전세를 알아보는 중인데 이마저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월세로 내몰리는 서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 8·2 부동산대책과 강남 재건축 이주가 맞물리며 '전세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개포주공1단지의 전경.


올해 하반기 예정된 대규모 재건축 이주수요도 전세대란 속도를 높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부터 이주가 진행되는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서울에만 5만여가구에 달한다. 이중 40%에 육박하는 2만여가구가 강남 4구에 몰려 있다. 대규모 이주대란은 전세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이주가 시작된 둔촌 주공아파트의 영향으로 강동구는 지난달 전세가격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상승(0.81%)했다. KB국민은행 조사 결과이다.

한편, 8·2부동산대책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수도권 지역에서는 입주대란에 따른 역전세난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부터 10월까지 수도권 입주 물량은 5만4113가구로 전년 동기(3만4870가구) 대비 55.2% 증가했다.

8월에는 배곧신도시(3601가구), 하남미사(1천659가구) 등 2만6279가구, 9월에는 광주태전(2372가구), 화성동탄2(177가구) 등 1만224가구, 10월 위례신도시(2820가구), 수원호매실(1452가구) 등 1만7610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역전세난이 현실화될 경우 부동산 가격이 낮아지면서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도 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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