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알권리 빙자한 언론의 횡포 도넘고, 유족가슴 멍들게 해...일 NHK 차분한 보도 배워야

“기상정보­해상구조­안전 허술, 여객선 대형 참사 불렀다” (한겨레)
“여객선 정원 증원, 지난해 편법허가” (동아일보)
“승선인원 파악 안돼 항의소동”(세계일보)
“안일이 부른 전형적 인재, 여객선 참사 무엇이 문제인가”(국민일보)

위의 제목들은 여객선 참사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는 우리나라 언론들의 보도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여객선은 2014년 4월 16일 침몰된 세월호가 아니다. 20년 6개월 전인 1993년 10월 10일에 전복된 서해훼리호이다, 즉, 서해훼리호 전복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의 제목이다.

   
▲ SBS취재기자가 세월호 현장취재중 웃는 모습이 방영돼 논란이 일었다.

“중대본 기능 무색…준비없이 '사회재난' 총괄 맡아 예정된 실패”(연합뉴스),
“대통령 공들인 국민안전-부처협업-정보공개 물거품”(동아일보),
“현장 컨트롤타워 지정 안 했다…우왕좌왕 일색”(중앙일보),
“미숙한 대응, 부처간 협조 안돼” (KBS)

위 제목들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도한 우리 언론들의 기사 제목이다. 이 와중에서도 박대통령의 책임을 가볍게 해주려는 동아일보의 제목 뽑는 노력이 참 가상(?)하지만 아무튼 제목만 보면 이것이 1993년 서해훼리호 관련 보도인지 아니면 2014년 세월호 관련 보도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언론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지난 20년 동안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에 비슷한 기사들이 나오고 제목 또한 그렇게 뽑혔을 것이다.

그러면 대규모 재난사고 발생 때마다 똑같은 문구와 어조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하는 우리의 언론은 보도 내용이나 태도에 있어서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을까. 1993년의 기사 제목과 2014년의 기사 제목이 구별되기 힘들 듯 보도 내용이나 보도 태도 역시 크게 나아진 것이 없지 않을까.

○ 속보경쟁 vs. 충실한 내용
세월호와 같은 큰 재난 사고가 터지면 우리 언론, 그중에서도 방송은 속보경쟁에 돌입한다. 누가 먼저 사고 소식을 자막으로 보도했는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뉴스속보를 가장 먼저 내보낸 방송은 어디인지, 현장에 중계차를 가장 먼저 도착시킨 방송사는 어디인지 등이 각 방송사의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국민들은 어느 방송사가 이러한 경쟁에서 이겼는지 관심이 없지만 방송 종사자들은 이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이런 경쟁이 예전에는 지상파 3사에 YTN 정도만 해당되었지만 이제는 종편 4사에 뉴스Y라는 보도전문채널까지 등장해 속보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초기 속보경쟁에서 뒤쳐진 방송사는 후속 보도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무리한 보도를 하게 된다. 너무 앞서가는 보도, 확인이 안 된 보도, 현장에 대한 무리한 접근, 엉뚱한 사람에 대한 인터뷰, 기자들의 실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속보경쟁은 상대적으로 충실한 보도를 등한시하게 된다.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CNN과 MBC의 세월호에 대한 보도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CNN은 뉴스에서 바다의 수온별 생존 정도 등을 심층 분석해 세월호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보도한 반면 MBC는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도 않은 실종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언급하는 등 앞서나가는 보도를 해 지탄을 받았다. 우리 언론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속보 경쟁 때문에 정확한 내용 보다는 빠른 전달을 우선시 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 방통위가 부적절한 보도를 한 방송사들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 미확인 보도
“선장 백운두씨 살아있다 - 위도 주민들 증언” (한겨레)
“선장 갑판장 살아있다- 위도 주민 잇단 제보” (동아일보)
“백선장 등 육지도피 추정” (한국일보)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당시 선장이던 백운두씨에 대한 언론들의 추정보도이다. 당시 언론들은 백선장이 구조돼 도망갔다는 일부 위도 주민들의 제보를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그러나 백선장은 서해훼리호가 침몰된 지 닷새 만에 조타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백선장은 배가 침몰할 때까지 승객들의 구조를 위해 애쓰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언론들의 섣부른 미확인 보도는 백선장은 물론 그 유가족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런 언론의 미숙함은 이번 세월호 보도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MBN은 확인도 없이 일반인인 홍모씨를 민간 잠수부로 소개한 뒤 ‘민간 잠수부들과 관계자의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인터뷰를 방송했다.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고 MBN 측은 보도국장이 나서서 직접 사과의 말을 해야만 했다. MBN측이 인터뷰 전에 홍씨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져 사실 확인만 했더라도 이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 사건 보도 기자들의 자질
이번에는 세월호 관련 보도를 하는 기자들의 잘못된 행태이다. 4월 16일 세월호에 대한 뉴스특보를 진행하던 JTBC의 한 앵커는 생존 학생과의 인터뷰에서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라고 질문해 물의를 빚었다. 앵커로서 해야 할 질문과 하지 말아야할 질문을 분간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4월 18일 KBS 1TV는 뉴스특보에서 구조당국의 말을 인용 보도하며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막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추후 확인됐다. 확인도 안하고 추측으로 자막을 뽑은 것이다. 자극적 보도의 전형이다.

4월 20일 SBS 뉴스특보에서는 해난 구조 전문가 출연 장면에서 생방송 준비를 하던 기자의 웃는 모습이 4초간 방송됐다. 해당 기자는 다음 방송을 준비하는 동안 동료와 잠시 사담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는데 현장 화면을 송출하던 담당자의 실수로 기자의 웃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방송기술상의 실수였다지만 사고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욱 신중했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기자들의 이러한 실수에 대해 각 방송사에서는 즉각 책임자가 사과를 하였지만 기자들의 이런 실수에는 방송사의 과도한 속보 경쟁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현장에 투입된 기자는 물론 보도국 안에서 뉴스를 내보내는 기자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속보경쟁 때문에 쉴 틈이 없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 헛도는 재난보도 준칙
1993년 서해훼리호 전복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등 잇따른 사고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가 개선되지 않자 언론계 내부에서 자성이 일기 시작했다. 대구지하철 사고가 발생한 뒤 언론계에서는 우리 언론의 재난 보도에 대해
1. 재난보도 기본방향 부재,
2. 객관적 사실과 의견의 혼동,
3. 지나친 상업주의와 선정주의,
4. 전문기자 부족 등의 문제를 노출했다고 분석하고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하고자 했다.

당시 한국언론재단과 기자협회가 제시한 초안은
- 이미 발생한 피해 상황 전달보다 앞으로 전개될 다른 피해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보도
- 인명 구조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취재
- 위기 상황에 대한 심리적·정신적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데 주력
- 불확실한 내용의 검증과 유언비어 발생이나 확산 억제에 기여
-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인터뷰 강요 금지
- 생존자 및 사상자의 신상 공개 자제
- 근접 촬영 자제
- 자극적인 장면 반복 보도금지 등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언론사에 대해서도 기자들에게 재난보도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무리한 취재 지시를 내리지 말도록 했고, 기자들도 안전 장비 지참과 관련 법규 숙지, 안전지침 준수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어렵게 마련된 재난보도준칙 초안은 그 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침몰중인 세월호.

언론에서 무대책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는 정부는 그래도 재난사고가 날 때마다 해당 규정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는다. 서해훼리호 사건후에는 건축자재에 불이 잘 번지지 않는 마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고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는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하고 안전 규정을 강화하였다. 물론 이런 대책이 제대로 잘 지켜지는지 확인을 못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재난 때마다 보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였으면서도 후속조치 없이 지나쳐 왔다. 
 

최근 한국 기자협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일부 언론이 취재 보도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며 신뢰를 잃는 오욕의 민낯을 드러냈다며 재난보도 준칙 제정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발 이번에는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일본의 재난 보도 본 받아야
2011년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우리 언론들은 NHK 등 일본 언론이 보인 차분한 보도에 찬사를 보냈다. 당시 우리 언론들은 “언론도 달랐다, 시신·부상자 현장 보도 선정적 기획·기사 없어”(문화일보), “유족인터뷰 안하고 시신 수습 멀리서 찍고, 절제 돋보인 NHK”(중앙일보) 등의 기사를 통해 일본 언론의 재난 보도에 대해 호평했다.

이제 우리도 재난보도에 있어서 국민의 알권리를 빙자한 언론의 횡포등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 한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절제되지 않은 언론의 취재 방식과 보도는 또 한번 유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취재 방식과 보도는 구조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기자협회가 재난보도준칙을 만든다면 현장에서 실제 사용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매뉴얼은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각 언론사는 매뉴얼 따로 취재보도 따로가 되지 않도록 기자들에게도 충분히 인지시키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곽경수 전 청와대춘추관장, 고려대강사(언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