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 신작 '브이아이피'서 국정원 요원 재혁 역 맡아 열연
"높은 수위에 관객들 거부감? 개인마다 편차 있는 것 같아… 내용 전개에 필요했다"
"욕설 연기, 안경 쓴 내 모습 어색해 곤혹스러웠죠"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글쓴이는 어렸을 적 배우와 이름(동건)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고단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떤 세대에서도 장동건이 갖는 대명사적 의미는 잘생김이었고, 그런 놀림에 토를 달 거리 없이 함께 낄낄거리며 학창시절을 지나왔다. 이렇듯 많은 이들이 '장동건' 하면 작품보다는 외모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지만, 되돌아보면 연기를 하는 25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센세이션을 일으킨 배우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최고의 청춘 스타가 된 그는 영화 '친구'로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선보이며 파란을 일으켰고,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슴 절절한 형제애로 천만 관객을 울려도 봤다. 40대에도 여전한 신사의 품격은 기혼 여부와 상관 없이 전국의 여심을 강타했다.


   
▲ 영화 '브이아이피'의 배우 장동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우는 남자' 등 느와르물에서 두각을 드러낸 장동건이 이번에는 '브이아이피로 돌아왔다. 같은 장르에서도 자유롭게 변모하며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했던 그는 이번에도 색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을 예정.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우는 남자' 이후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로 3년 만에 돌아온 배우 장동건을 만났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 속,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영화.

이날 장동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작품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했다고 밝혔다. 앞선 16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최초 공개된 완성본을 보고 나서는 출연배우들끼리 '시나리오보다 낫다'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멀티 캐스팅이긴 해도 배우들이 한 장면에 나오는 게 아니라 계주하는 느낌처럼 분량이 나뉘어서 나오니까요. 서로의 현장에는 없었으니까 어떻게 찍혔는지 궁금하고 자기가 상상하던 장면들이 있으니까.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에요."

잔혹성 넘치는 묘사가 난무하는 작품이기에 평단의 우려도 있었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 '신세계'는 조직 간의 혈투를 그렸기 때문에 수위가 높더라도 쌍방과실의 느낌이 있었지만, '브이아이피'는 일방적으로 여성을 고문하고 처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장동건은 "장르적 특성에서는 '악마를 보았다'와 비슷하다는 말도 나오더라"라며 입을 열었다.

"영화의 수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건 개인의 편차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잔혹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어떤 한편에서는 또 너무 밋밋하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다만 그런 장면은 전개에 있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김광일(이종석 분)이라는 캐릭터의 악행이 보여지는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세게 보여줘야 관객들이 공분을 일으키고, 그래야 영화의 기능상 결말 부분도 살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출연을 확정한 뒤 대본을 받아봤다는 장동건도 이 같은 장면에는 분노했다고 밝혔다. 그는 "설정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면서도 "제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돼야 영화가 완성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 영화 '브이아이피'의 배우 장동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이종석이 맡은 사이코패스 광일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긴 하지만 박훈정 감독의 여느 작품처럼 마초 냄새가 짙은 영화다. 사냥개 같은 눈빛의 리대범(박희순)부터 광일을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채이도(김명민), 국정원 요원답게 거친 액션과 욕설을 선보인 재혁(장동건)까지 수컷들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이 속에서 장동건이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다름 아닌 욕설 연기였다.

"평소에 욕을 잘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많이 쓰지도 않고… 처음에 욕설 연기를 하는데 제가 들어도 어색하더라고요. 그래도 연습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많이 편해졌어요. 영화에서 캐릭터가 욕을 하는 건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관객 입장에서 배우의 욕설이 어색하거나 그 캐릭터가 안 쓰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욕설 연기만큼 어색했던 건 안경을 쓴 자신의 모습이었단다. 자연스러운 얼굴을 찾기 위해 안경을 고쳐 쓴 것만 수십 번.

"제가 안경이 굉장히 안 어울려요. 변장한 것 같고 굉장히 어색하거든요. 시나리오에 나와 있기 때문에 써보긴 했는데 예상대로 안 어울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잠깐 포기했다가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안경을 100개 정도 써본 것 같아요."

변장술을 한 것 같은 어색함에도 감독이 장동건에게 안경을 씌운 이유는 뭘까. 장동건은 "단순히 공무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은 아니었다"면서 "안경을 쓰면 눈이 잘 안 보이지 않나. 인물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없도록 설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사무직'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다는 설렘에 출연을 결정한 그이지만, 그 속에서 감정 표현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캐릭터 중 유일하게 변화가 있다는 점, 한 영화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재혁이라는 역이 욕심 났어요. 다만 영화를 하기로 하고 감독님과 캐릭터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감정 변화와 심정 변화에 따른 리액션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눴거든요. 그래서 나온 결론은 '최대한 빼자'였어요. 그게 후반부 전개의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심정 변화를 곧이곧대로 나열하면 재미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 영화 '브이아이피'의 배우 장동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박재혁은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대신 담배를 태우며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버거운 요구를 하는 CIA 요원 앞에서 담배 연기를 뻑뻑 내뿜는 장면이나 채이도(김명민)와 육교 위에서 끽연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에 흡연 문제로 인한 고충은 없었는지 묻자 장동건은 영화 촬영 후 6개월간 담배를 끊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리 위에서의 신에서는 김명민씨와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하잖아요. 그 신을 찍고 나서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거든요. 김명민씨는 영화를 찍고 나서 담배를 끊었어요. 그런데 전 이후 태국 로케이션 촬영에서도 담배를 피워야 했죠.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선 6개월간 한 까치도 입에 안 댔는데, 한 달 전부터 '찌는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어요."

앞서 진행됐던 V 라이브, 현장 인터뷰에서도 그랬지만 친히 담배 종류까지 설명하는 장동건은 경직돼 보였던 예전과는 달리 유연하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수많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하게 돼 부담이 적었다고.

"동료 배우들도 같이 나오고, 김명민 씨가 분위기를 잡아주니 인터뷰 현장에는 더 편하게 임할 수 있더라고요. 제가 봐도 예전에는 경직돼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찍은 작품들이 무거운 것들도 많았고, '이렇게 무거운 영화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농담해도 되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결례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죠. 요즘에는 그런 것들을 받아주는 분위기여서 편하게 얘기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얘기했죠." <인터뷰②에서 계속>

[인터뷰②가 궁금하다면 ▶ http://www.mediapen.com/news/view/293661]


   
▲ 영화 '브이아이피'의 배우 장동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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