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의 대부 중립성 상처…문재인 정부 과속 넘어 정치화 우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노동시장 개혁을 할 때 노동자와 사용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 결정권을 줘서는 안된다."

2015년 5월 전경련에서 열린 '독일 어젠다 2010의 경험과 한국에 주는 조언'이라는 강연에서 독일의 일자리 기적이라고 불리는 '하르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가 한 말이다.

한국의 노사정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1년 넘게 공석이던 경제사회발전 노사정 위원장에 문성현(65) 전 민주노동당 대표를 위촉했다. 신임 문성현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설을 주도한 1세대 노동운동의 대표주자다.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의 역사는 올해로 20년째다. 한국경제가 1997년 12월 3일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자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자는 1998년 1월 10일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노·사·정 및 공익단체가 참여하여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기구로 탄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되리라 보고 거의 모두 입을 모아 반대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민노총은 1998년에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한 후 1년 뒤 탈퇴했다.

복수노조 허용 덕분에 한국노총이 2014년 이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지만 타협 직전 지난 4월8일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한국노총도 지난해 1월 탈퇴하면서 1년 7개월째 파행을 겪으며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존재했다.

   
▲ 23일 노사정위원장에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임명됐다. 사진은 2012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대선 후보로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특수노동직 노동자들과 간담회에서 문성현 당시 일자리위원회 위원과 함께 자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익 추구가 다른 구성원들을 한 데 모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한 것부터가 실패의 첫 걸음이다. 예고된 실패작이었던 셈이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일침이 따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노사정위원회는 초기 김대중 정부에서만 작동했을 뿐 사실상 이후부터는 정치싸움만 일삼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싸움과 이해가 엇갈린 노사정위원회에 문성현 위원장의 등장만으로도 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화려한 그의 이력은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문 위원장은 1999년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으로 당시 정리해고 도입 반대 등에 반발하며 노사정위 탈퇴를 주도했다. 그리고 20년만에 노사정위원장이 됐다.

평생을 노동운동에 몸담아 온 문 위원장은 서울대 졸업 후 1979년 한도공업사의 프레스공으로 노동계에 발을 디뎠다. 1982년 동양기계 노조활동을 하다 노동법 위반으로 3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1세대 노동운동 대부답게 전노협 사무총장, 금속연맹 위원장을 지낸 그는 민주노총에서 단병호 전 위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과 함께 '문·단·심'으로 불리어온 한국 노동운동의 주역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은 문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맡아 노동정책 구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위원장은 노동운동을 할 때부터 문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문 위원장이 노동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을 때 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다.

야 3당은 문성현 위원장에 대해 "전형적인 코드인사"라며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줄곧 한쪽을 대변해 온 인사가 위원장을 맡는 것은 마치 특정 팀의 선수가 심판을 맡아 경기를 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문성현 위원장은 18, 19대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에서 노동관력 중책을 맡았던 인물로 전형적인 코드인사"라고 비판했으며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도 "노사정 위원장도 편중인사"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한국노총 출신이다. 김 장관에 이어 민주노총 출신의 문 위원장까지 임명되자 가뜩이나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이 노동계 쏠림 현상이 방점을 찍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 위원장 임명으로 문재인 정부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질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재계는 "노사정위원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다양한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자리인데 노동계출신 인사가 위원장을 맡을 경우 공정한 대화 진행이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불안한 반응을 보였다.

   
▲ 한국 노동운동의 1세대이자 대부로 불리는 문성현 노사위원장 임명은 한국경제의 균형추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여일의 노동정책은 사실상 과속을 넘어 일방통행식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기관 연봉제 폐지, 최저임금 인상으로 천문학적 재정과 기업뿐 아니라 자영업자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 한국경제 전반을 뒤흔들 시한폭탄도 줄줄이 대기중이다.

노사정위는 노와 사의 입장에서 균형추의 역할을 해야 하는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노동정책이나 노동 관련 법률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노사정위가 사실상 사전협의·조정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사용자의 입장은 무시되고 노동자의 입장만 우선돼서는 일자리는 고사하고 지속성장도 불가능하다. 노사간 대타협보다 정치화가 우려되는 이유다.

기업은 사용자의 '경영'과 노동자의 '근로' 두 바퀴로 굴러간다.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불가하다. 노사의 균형 잡힌 관계가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고 일자리를 창출케 하고 경제를 살린다. 대한민국의 강성노조는 경영과 근로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타협을 이루겠다면서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표했던 인물을 내세운 것은 대타협 의지를 의심케 한다. 스스로 의혹 사기를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편향된 정책으로는 대타협은 불가능하다.

노사정위는 노동계·기업·정부가 참여해 노동·경제정책 과제를 논의하는 사회적 타협기구다. 중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이어야 하며 그것만이 문재인 정부가 제 1 과제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의 기본 명제다.

노동계 출신 수장을 노사정위의 심판으로 내세우면 중립성은 금이 가고 진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어느 한 쪽이 불복한다면 갈등은 되레 확산될 것이다. 정부가 ‘하르츠 개혁’을 다시 생각하고 깊이 명심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쳐 매는 누를 되풀이 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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