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충무공 탄신 469주년...부하사랑, 왜군 격멸과 노심초사 생생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9) - 목숨 바쳐 조국 지킨 승전의 기록 이순신(1545-1598)의 <난중일기>, <서간첩>, <임진장초>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이순신 장군이 우리 백성과 국토를 든든히 지켜내던 그 바다에서 세월호의 참사가 일어났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4.28일은 469주년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이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충무공의 충정을 되새겨 볼 때다.

◇ 『난중일기』, 국난극복의 여정 고스란히 담긴 최고의 전쟁 비망록

국보 76호인 이순신의 피와 땀이 밴 핵심 저작 『난중일기』, 『서간첩』, 『임진장초』를 모두 읽었다. 이제 ‘이순신 공부’의 7부 능선은 넘은 듯하다. 이제 조금씩 이순신의 모습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 3대 작품은 역사적 사료로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저작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나라 사랑과 국난극복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긴 최고의 자기 비망록이자, 전쟁기이다.

『난중일기』는 시중에 수십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난중일기』의 저본(底本)이 되는 친필 초고본 이외에 이를 옮겨 적은 다양한 전사본(傳寫本) 등 이본(異本)이 많았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스테디셀러인 점에 착안, 출판사마다 다른 이본에 근거하여 완역하거나, 완역이 아닌 부분 발췌 또는 누락된 상태로 책을 내놓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니 독자로서는 어느 『난중일기』를 골라 읽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역자 노승석이 현존하는 『난중일기』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복원된 국내 최초의 교감(校勘) 완역을 내놓았다. 2년 만에 무려 7쇄를 출간할 만큼 사랑을 받는 이유다. 역자는 2008년 현충사에 소장된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를 판독하다가 을미년(1595) 일기 29일치 등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32일치를 발견하여 추가로 번역 수록했다.

또한 초서체로 쓰인 이순신의 친필 난중일기초와 여러 판본을 일일이 비교 검토하는 힘든 교감 완역을 했다. 원문 교감을 통해 그동안 잘못 해석되어온 백여 곳을 바로잡았고, 치밀한 역주까지 달았으니, 그 전문성과 노고가 가볍지 않다.

이순신의 저작은 정조에 의해 정리되었다. 정조의 명에 의해 1792년 초고본을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었다. 이후 1885년 정유자본, 1918년 최남선 편수본, 1935년 조선사편수회 판본, 1960년 이은상 역주본이 나왔다. 역자 노승석은 지금까지 그대로 잔존하던 오류들을 대부분 교정했다.

그동안 많은 오류가 교정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이순신의 초서체 자체도 해독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 이순신의 필체가 더욱 심하게 흘려 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역자는 아직도 완전무결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더 연구 분석해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아무튼 그래도 역사적으로 소중한 고전이 이제야 제대로 번역된 듯싶다.

『난중일기』는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나 처칠이 쓴 회고록 『제2차세계대전』처럼 후세에 남길 명확한 목적을 갖고 쓴 ‘문학작품’이 아니다.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작성한 비망(備忘)의 기록이다. 제목 그래도 소박한 일기다. 그러니 카이사르나 처칠처럼 화려한 문장력으로 치장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있지는 않다. 또 후세의 평가를 의식하여 스스로 자화자찬하거나 업적을 윤색하려고 하지 않았다.

『난중일기』에는 왜란의 병화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가 자주 보인다. 주로 전쟁의 출동과 전황, 부하 장수의 보고 내용, 군율을 어긴 부하 장수의 처결, 전쟁 수행 과정과 관련한 정책 건의를 담은 장계가 담겼다. 또한 진중의 인사문제와 가족에 대한 안부 걱정, 동료 장수 및 부하에 대한 평가, 억울한 상황에서의 울분과 한탄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기록되었다.

또한 군사의 훈련과 여가 시간의 모습 등 진중 문화와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현지 실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내려지는 조정의 교지나 정책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무능한 조정에 대한 탄식,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에 대한 사랑, 전투를 준비하고 임하는 결연한 모습, 전쟁 초기에 입은 총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는 모습도 여러 날에 걸쳐 실려 있다.

『난중일기』가 40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늘 왜적을 절멸시키고자 애쓴 이순신의 충정이 진솔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기 문학 작품 중에서 『난중일기』를 대표적으로 손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투가 급박한 시기에는 일기가 상당부분 누락되었지만, 소강기에는 적은 분량이라도 꼼꼼히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모습도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이순신이 감당해내야 했던 임진왜란의 참담했던 상황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또한 7년 전쟁 동안 이순신의 활약상과 그가 체험해 낸 전쟁의 상흔도 여과 없이 살펴볼 수 있다. 이 모든 내용들은 전쟁의 참혹함, 나라의 소중함과 참군인의 모습을 후세에 생생하게 경각시키고 있다. 

   
▲ 이순신 장군 영정,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임진장초』,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공식 전쟁보고문서

『임진장초(壬辰狀草)』는 『난중일기』, 『서간첩』과 함께 이순신의 국보 76호로 지정되어 충남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임진왜란과 충무공 이순신을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1차 원전이다. 『난중일기』는 개인 작품이므로 충무공의 친필 초서로 작성되었지만, 『임진장초』는 조정에 보고하는 공식보고문서이므로 이순신의 초고가 해서(楷書)로 등초되어 있다.

그동안 『난중일기』는 시중에 수십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임진장초』는 이 책이 유일하다. 『임진장초』는 정조의 명에 의해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속에 『난중일기』와 함께 수록되어 전해졌고, 현충사에 별도의 장계 초본도 보관되어 왔다. 번역자 조성도 교수는 오랫동안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이순신 연구에 천착한 분이다. 아쉽게 이미 작고하셨다. 역자는 전서에 수록된 장초 71편과 전서에 수록되지 않고 초본에만 있는 7편을 합쳐, 현존하는 78편의 장초를 완역하면서 상세하고 깊이 있는 주석을 달았다.

이 책은 1983년 초판이 나온 이래, 1991년과 2010년에 중판 발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판을 고치치 않고 그대로 인쇄만 거듭했으므로 중쇄, 즉 2쇄, 3쇄로 보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최근의 책들은 중판이든 중쇄든 크게 개의치 않아도 무방하다. 모두 디지털활자체로 보기 좋은 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책은 70~80년대 구형 판형 활자체여서 글씨도 매우 작고, 줄 수도 많다. 게다가 글꼴도 눈에 익지 않아 최근의 미려한 디지털활자체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이 읽기엔 매우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옛날 판의 전사본(傳寫本)식으로 거듭 인쇄한 탓에 오히려 고졸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 고전애호가에겐 이 또한 색다른 기분이 든다. 더구나 절판된 책을 이런 방식으로라도 다시 중판한 출판사와 이미 작고하신 역자 고 조성도님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애틋해진다.

사실 『임진장초』는 진중보고문인 장계의 특성상 상세한 전황을 많이 담고 있다. 사료의 중요성을 떠나 개인의 일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난중일기』보다 전투의 수행 상황을 기록한 대목들이 매우 주목을 끈다. 이순신 관련 소설이나 출판물들은 모두 『임진장초』의 주요 내용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하며 덧붙인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필자의 경우 『난중일기』를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 일기에서 구체적 기술이 없어 궁금하던 부분들을 각 장초에서 확인하는 것도 유익했다. 두 책을 동시에 펼쳐 놓고 날짜 별로 같은 날에 전개된 상황이 어떤 식으로 기술되어 있는지 대조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장계에서 언급한 내용이 일기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또는 일기의 소략한 표현이 장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는지를 자구를 대조해 보고, 메모하면서 살펴보는 방식이다.

이 두 책을 함께 보면 이순신의 진중 활동과 활약상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해당 일시 즈음한 시기의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을 확인하면 이순신 장계에 대한 조정과 선조의 반응 및 조치 내용까지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했기 때문에 다양한 검색어로 실록의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임진장초』는 임진왜란의 전개와 관련된 정황과 전투 장면, 전법, 참전자의 공적 등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중요 대첩 장면에서는 통쾌한 서사를 보여주기도 하여 긴장과 흥분, 때로 분노와 한탄을 자아낸다. 한산대첩의 학익진 전법을 통한 승전을 기록한 대목은 압권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울러 매번 승첩의 장계에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부상한 장졸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대목에서는 마치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46용사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부를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진다.

“접전할 때 군졸들 중에 본영 2호선의 진무 순천 수군 김봉수, 방답 1호선의 별군 광양 김두산, 여도 배의 격군이며 홍양 수군인 강필인…… 낙안 배의 사삿집 종 김 말손, 거북선의 토병인 정춘…… 등은 철환을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식이다.

이름난 장수에서 부터 사삿집 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백성들의 목숨을 바친 희생이 나라를 구한 것이다. 이순신은 각 장수에게 명하여 전사자들을 고향으로 보내어 장사지내고 하고, 그들의 처자에게 휼전(恤典)을 베풀도록 조치한다. 하지만 당시 전사자에 대한 휼전이라는 것이 약간의 쌀과 베를 주는 데에 불과했다. 가장을 잃고 과부가 되거나 고아가 된 백성들이 오롯이 감당해내야 했던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또 『임진장초』는 전쟁 수행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을 건의한다. 또한 부하 장수의 포상을 주청하거나 왜군의 동향을 보고하는 장계도 있다. 육군과 수군의 수륙합공작전의 건의에서는 이순신의 장수로서의 전략적 탁월성, 백성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 왜군을 적멸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읽게 해준다.

이 책은 이순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자, 고전적 가치를 지닌다. 모든 이순신 관련 서적에서 『임진장초』와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의 내용이 가장 많이 인용된다. 그 내용들은 정사(正史)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순신 연구자에게 『임진장초』가 필수 교과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이순신 동상, 출처 : 한국학 중앙연구원

◇ 『이순신 한묵첩(翰墨帖)』, 효성과 인간적 면모가 담긴 이순신의 편지글

이순신의 행적과 생각을 가장 많이 정확하게 담고 있는 것은 이순신의 자필 일기인 『난중일기』다. 하지만 이순신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난중일기』 이외에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헌에 실린 이순신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서애 류성용의 『징비록』이나, 조선왕조실록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순신이 직접 쓴 서간문을 들춰보는 것도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가장 적합하고 유익하다.

『이순신 한묵첩』은 『난중일기』에 담긴 편지 14편은 물론, 친척인 현덕승(玄德升)과 오고간 편지 6편, 정조의 왕명으로 유득공이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5편, 기타 문집에 실린 편지 및 독후기 3편을 함께 엮고 해설한 책이다. 특히 편역자는 여러 서한문 등의 영인본을 참고자료로 싣고 있어, 충무공 이순신의 글씨체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편역자가 국보 제76호인 충무공의 편지들을 뽑아 영인한 일차적 의도는 편지글에 담긴 이순신의 사상과 인간성을 조명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순신의 육필(肉筆)에 서린 정신과 예술성에 주목하여 서예술(書藝)術)의 교본으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즉 이순신을 신언서판(身言書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일반 독자의 경우 이순신의 여러 편지에 담긴 인간적 면모에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이순신의 편지에서 공무에 바빠 친척 간에 회포를 풀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가하면, “꽃과 버들이 피는 봄철과 단풍과 국화가 피는 가을철”을 감상할 여유가 없는 “신선과 연분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웃어넘기는 소박한 인간미를 보이기도 한다.

『난중일기』에서 “왜적들이 우리나라에 수년 동안 침범해와 그 욕됨을 아직도 씻지 못했습니다. 하늘에까지 미친 분함과 부끄러움이 더욱 절실한데, 임금의 수레는 서쪽으로 가시고 왕실과 국토(宗社)는 쓸쓸하게 빈 터만 남았으니, 온 나라 안에 충성스럽고 의리에 찬 기운을 빼앗고, 스스로 백성들의 희망을 끊어버렸습니다.”라고 술회하는 대목에서는 이순신의 애타는 충정과 적개심이 나타난다.

이와 유사한 대목은 더 있다. 정유재란 말기 명나라 황제의 선유도사(宣諭都司) 담종인(譚宗仁)이 일본으로 안전하게 철수하고자 하는 왜군에 매수된다. 그는 이순신에게 퇴각하려는 일본군을 치지 말고 모든 병선(兵船)을 각각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라는 글을 보냈다. 하지만 이순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답서를 드린다"며, 우리 땅에서 어디로 물러나라는 얘기냐며, 흉악하고 교활한 왜적은 신의를 지킨 적이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한 명의 왜적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이순신은 부모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해 늘 회한이 많았다. 이순신은 좌수영 지척인 전라도 순천 땅에서 피난살이 하던 노모를 3년 동안이나 뵙지 못했다. 때 마침 “병들어 이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죽기 전에 네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다”는 노모의 전갈을 받는다. 이순신은 잠시 전선이 소강상태인 때를 골라 체찰사 이원익에게 노모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며칠 휴가를 내 줄 것을 청원하는 편지글을 쓴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약 한 첩 달여 드리지 못하고, 영결조차 못하였으니 그것이 언제나 한으로 남아 있”다며, 어머니에게 또한번 불효자식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애틋한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있는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누구든 개인 간에 주고받는 편지글에는 무의식적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기 마련이다. 이 책은 짧은 분량의 편지모음집이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이순신의 감춰진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순신의 무장으로서의 전략과 소신, 기개와 충의, 부하 사랑의 정신은 물론, 한 사람의 친구로서의 고민, 한 사람의 자식으로서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대목들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각각의 편지글을 쓸 당시에 이순신이 처한 상황과 교류하던 사람들의 특징을 심층적으로 살핀다면, 편지글의 표면적 내용 이상의 의미와 감동을 보탤 수도 있을 법하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추천도서 : 《난중일기》, 이순신, 노승석 옮김, 민음사(2012, 7쇄), 850쪽

 

   
 ☞추천도서 : 《임진장초》, 이순신, 조성도 옮김, 연경문화사(1983년 1판 1쇄, 2010 중판), 252쪽

   
 
 ☞추천도서 : 《이순신 한묵첩(翰墨帖)》, 이인섭 편역저, 이화출판사(2000), 2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