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금융권 내에 당국 출신 임원 비율이 갈수록 줄고 있다. 법조계에서 비롯된 ‘전관예우’ 관행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 시각도 있지만, 풍부한 노하우를 가진 인력을 조기에 소실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가에 이른바 ‘당국 출신’ 임원들이 연이어 퇴사를 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전신인 증권감독원 출신 정남성 메리츠종금증권 부사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와 같은 경향이 가속화 됐다. 정 부사장의 퇴사 원인은 ‘일신상의 이유’로만 알려졌다.

   
▲ 사진=미디어펜


이로써 금융감독 당국 출신의 증권사 임원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최한묵 NH투자증권 감사, 정헌호 신한금융투자 감사, 박찬수 대신증권 감사 등 감사직에 몇 명이 남아 있는 정도다.

원래 금융당국, 특히 금감원 임원 출신들은 임기 이후 감독원을 퇴사한 뒤 금융권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금융사들 역시 이들을 감사나 사외이사, 고문 등으로 영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경향을 두고서는 판사가 대형 로펌에 재취업하는 걸 의미하는 전관예우의 ‘금융버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당국 출신의 임원들은 계속 해서 빠져나가는 추세다. 예를 들어 김석진 전 한국투자증권 감사가 작년 3월, 이광섭 전 미래에셋증권(현 미래에셋대우) 감사가 작년 11월 퇴사했다. 이들은 모두 7년 이상 장기 근속했지만 임기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업계를 떠났다. 이들의 빈자리는 모두 당국 출신이 아닌 인원으로 채워졌다.

‘전관예우’ 재취업 코스가 감소세로 접어든 것은 지난 2015년 무렵부터로 추정된다. 바로 전해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이 해에 '관피아 방지법'으로도 불린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관피아’ 척결을 위해 추진된 이 법은 관료 출신들의 퇴직 후 재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작년 내내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역시 한몫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이후 이른바 ‘낙하산 인사’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상상도 못하게 심해졌다”면서 “명예를 중시하는 관료 출신들이 경력 후반에 구설수를 겪고 싶지 않아하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최근의 경향을 분석했다. 

달라진 금융계 재취업 풍토에 대해서는 우선 반가워하는 시선이 많다. 그만큼 사회가 투명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자연스럽게 태동한 게 아닌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판사가 판결권을 독점하고 있는 법조계의 전관예우와 치열한 경쟁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금융권의 재취업을 똑같이 보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하우를 가진 인력들을 너무 빨리 퇴장시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의 풍토가) 여론에 떠밀려 ‘눈치 보기’ 식으로 파생된 만큼 오래 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업계와 사회 전체가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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