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긴장하는 게 아닙니다. 당국이 마음먹고 규제에 나서면 나비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업계는 애초 의도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죠.” (A증권사 관계자)

최흥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강조한 여파가 금융투자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초대형IB 인가 문제에서도 당국은 업체들에 대해 상당히 높은 기준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 최흥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사진)이 취임 일성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강조한 여파가 금융투자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금융감독당국과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흥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일성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11일 취임한 최 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금감원이 앞장서서 중재와 보정을 통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필요한 경우 피해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가칭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설치 의사까지 드러냈다.

최 원장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금융권에 대한 감독제도 시행에 앞서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제도의 적정성을 중점 심의한다. 최 원장은 “위원의 절반을 시민단체 중심의 학계, 언론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형식상 제도의 적정성을 심의한다고는 하지만 위원회를 꾸려가는 위원들이 시민단체 중심으로 구성되는 만큼 당국의 감독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제도가 오히려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업계 다수가 긴장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 대한 새 정부의 감독 강화방침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하던 내용이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아예 공약의 한 축으로 내걸었다. 정부 취임 이후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금융 관련 내용은 주로 소비자 보호에 연결된 내용이 많았다. 쉽게 말해 금융권 기업들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내용이 다수를 이뤘다.

당연히 업계의 표정은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A증권사 한 관계자는 “지금 분위기에서 이견을 드러낼 경우 오히려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면서 “다들 새 정부 감독강화의 최초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같은 방어적인 분위기 속에 금융투자업계의 시급한 과제들은 뒤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선 한국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 문제는 이제 업계에서 거론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아졌다. 9월 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무위원회 법안 심사 통과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대형 증권사 5곳이 출사표를 내던진 초대형IB 인가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내 투자업계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시키고 소비자 편익을 증대하기 위한다는 최초 목적과 달리, 현재 초대형IB 인가 문제는 당국과 업계의 샅바 싸움처럼 돼 버렸다. 일례로 삼성증권은 초대형IB 업무의 핵심인 발행어음 업무 심사에서 ‘보류’ 결정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이 결정은 초대형IB와 관련해 정부가 결코 호락호락하게 인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인을 업계에 던진 셈이 됐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대형증권사들은 초대형IB 요건만 갖추면 인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무리해 가며 도전장을 냈다”면서 “정권교체와 동시에 분위기가 표변해 인가는커녕 추가 규제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명분으로 걸고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칫 이 명분이 증권사들을 옥죄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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