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국 영국보다 소득 앞서면서 식민지 恨 풀어
서양사 박지향의 명저 <슬픈 아일랜드> 다시 읽기
   
▲ 조우석 언론인
신뢰할만한 역사학자들이 거의 사라진 시대다. 예전엔 그들 저술에 담긴 너른 시야와 균형감각을 길잡이 삼아 지혜를 얻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지적 체험이 불가능해졌다. 이념분화가 심화되고 지식사회가 파편화된 2000년대 이후의 비극적 상황인데, 예전 같으면 '동양사의 총통' 민두기 교수 같은 분이 존재했고 서양사엔 차하순 선생 등이 계셨다. 한국사 분야에선 이기백 선생 같은 분이 표준이었다.

반면 지금 국사학자의 90% 이상이 이른바 NL(민족해방)정서에 오염되고 망가졌다. 그건 집단적인 지식파산(破産)의 현실이라서 말할 수 없이 참담할 뿐인데, 유일한 예외라면 원로 유영익 선생이다. 그분의 구한말 관련 논문이나,  <젊은 날의 이승만> 등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다룬 단행본 시리즈는 진정 보석이고, 빛나는 저술로 남아있다.

경제사 연구자이지만 현대사 일반에 괄목할만한 저술을 펴내는 이영훈 교수가 있다는 것도 희망이다. 그가 펴낸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역사> 등 대중역사서와, 대작 <한국경제사>상하권은 창조적인 자유지성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새삼 보여준다. 그런 신뢰할만한 역사학자 목록에 요즘 나는 한 분을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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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향 교수의 '슬픈 아일랜드'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64) 교수가 그 분이다. 게으른 탓에 나는 그의 옛 책 <대처 스타일>(김영사, <중간은 없다-마가렛 대처의 생애와 정치> 개정본), <영국적인, 너무도 영국적인>(기파랑)만 읽었을 뿐인데, 요즘 그가 펴낸 모든 책 읽기에 도전했다. 신간 <정당의 생명력>(서울대출판부), <근대로의 길>(세창) <클래식 영국사>(김영사)에 이어 <슬픈 아일랜드>(기파랑)과 <윤치호의 협력일기>(이숲) 등 옛 책도 확보했다.

왜 그가 매력적인가? 우리시대 범용한 학자들이 예외 없이 걸려드는 함정인 좌편향의 흔적이 그는 전혀 없다. 사실 그는 이영훈 교수와 함께 11년 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상하권을 엮어낸 지식 영웅이 아니던가?(박지향-이영훈 둘은 젊을 적엔 운동권 비슷했지만, 공부를 더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맞다. 교수사회의 최대 문제인 '지식정보의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학자의 글을 본다는 건 그 자체로 귀한 경험인데, 특히 박 교수는 문장도 좋다. 결정적으로 그가 쓴 서양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되비춰볼 수 있으니 배우는 맛지 특별하다. 그건 그가 의도한 것이다. 

"1970년대에 서양사, 특히 영국사를 공부하기로 작정한 배경에는 (그 나라를 공부하여) 우리사회가 근대화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라고 어느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중  <슬픈 아일랜드>를 먼저 소개하려는데, 이유는 그 책이 내 요즘 관심인 한일관계에 결정적 영감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이다.

그의 저술 의도도 한일문제 과거사에 집착 말고 미래로 나가자는 제안인데, 그걸 아일랜드 현대사를 통해 전달해주니 설득력이 크다. 지난 글 '소녀상-노동자상으로 온 국토가 채워지는 날'에서 밝힌 대로 지금 한국사회는 고질병 반일 히스테리가 반미-친북 이념과 결합해 정치적 재앙으로 폭발직전이다. 아일랜드도 그렇게 최악으로 치달을 뻔했는데, 그걸 극적으로 피한 케이스다.

상식이지만 한국-아일랜드는 닮은꼴이다. 강대국 잉글랜드 옆에 놓인 아일랜드의 지정학적 위치, 그래서 당한 수난의 역사, 민족주의 초강세 속에 한(恨)이라 불리는 정서까지 두 나라는 붕어빵이다. 아일랜드-잉글랜드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이듯, 한일 관계 역시 그렇다.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아일랜드(당연히 EU 회원국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잉글랜드로부터 무려 700여년 지배(1169~1922)를 받았으니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 좌절감에 사로잡힌 작은 나라 아일랜드를 놓고 대영제국은 마음놓고 짓뭉갰다. "게으름뱅이", "술독에 빠져 사는 하얀 깜둥이"…. (일제가 조선에게 했던 모욕과 완전히 닮은꼴이다.)

   
▲ 박지향 교수의 '슬픈 아일랜드'의 내용중 한 구절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을 짓누르던 '민족의 신화'로부터도 해방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말은 '묻지마 반일정서'에 경고하는 의미가 크다.

'하얀 깜둥이' 아일랜드의 대역전

초라해진 아일랜드인들이 자긍심 고취를 위해 자국의 문화적 전통을 유독 강조했는데, 그것까지 한국-아일랜드는 어찌 그리 흡사한지. 실은 아일랜드의 경우 문인 조지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에서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를 줄줄이 배출한 저력의 나라다.

"지난 200년 영어로 된 글을 쓴 위대한 문인은 거의 아일랜드 사람이거나, 아일랜드 피가 흐른다." 시인 예이츠가 그렇게 으스댔고, 사람들이 그걸 따라 했지만, 막상 식민지배를 받는 조국의 현실은 초라했다. 1922년 독립 이후의 아일랜드 현대사 역시 비참했는데, 그게 일제로부터 독립한 나라 한국의 초기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모른다. 

아일랜드의 경우 높은 관세와 보호주의 정책이 문제였다.(방어적 민족주의에서 나온 자폐주의 심리 탓인데, 한국에서는 좌익세력이 그 짓거리를 반복하며 결국엔 '우리민족끼리'로 타락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무엇보다 '자립', '자주'란 구호 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서와 딱 맞았지만, 그 덕에 경제성장은 불가능했고, 실업율은 마냥 높았다. 

1960년대까진 그랬는데, 직후 놀라운 대반전이 일어났다. 1985년부터 죽기 살기로 대개방 정책을 실시한 것인데, 법인세를 낮추고, 외국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그러자 노사관계도 안정됐다. 무엇보다 민족주의 초강세를 누그러뜨리면서 낡은 이념, 명분 따위와 굿바이했고 실용주의로 돌아선 것이 주효했다. 그 덕에 일자리와 돈이 넘쳐나면서 변방의 외떨어진 나라에서 세계화된 나라로 완전 탈바꿈했다.

1970~80년대 아시아의 성장을 이끌던 한국-홍콩-싱가포르-대만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했듯이 아일랜드를 두고 '켈트 호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놀라운 역사의 대반전 속에 급기야 기적이 일어났다. 국민소득이 옛 식민종주국 잉글랜드를 앞질러버린 것이다.

지금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소득(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5만2560달러(세계 18위)로, 잉글랜드 4만2390달러(27위)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반세기 전만해도 꿈도 못꿀 일인데, 이통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품고 있던 잉글랜드에 대한 원망과 악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2005년의 조사는 아일랜드 국민의 60&가 잉글랜드를 가장 잘 통하는 나라로 생각한다.…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을 짓누르던 '민족의 신화'로부터도 해방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한다."(408~409쪽)

위의 인용 글은 박지향 교수 책의 마지막 문장인데, 이어지는 글이 이렇다. "우리와 너무도 닮았던 아일랜드의 변화하는 모습은 한국사회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 점점 더 나빠지는 한일관계의 어제 오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린 힘을 키워 일본을 따라 잡자는 극일(克日)이 모토였지 '묻지마 반일'이 결코 아니었다.

   
▲ 민감한 안보환경에서 반일 히스테리를 부추기는 것은 자살골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진=연합뉴스

잘 사는 게 곧 복수…징징대지 말라

노태우 정부까지만 해도 그랬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그곳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해 일본과 우리를 감동시켰다. "실은 오늘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 지난 일을 되새겨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이전 박정희의 속생각도 그러했다. 1965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국교정상화 담화도 대일 콤플렉스를 접고 미래로 나가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국민 중에 한일교섭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등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습니까?"

그게 맞는 길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우리 현대사는 길을 잃었다. 아일랜드 현대사의 대반전이 보여주듯 '잘 사는 게 복수하는 길'이 아니던가? 춘향이의 한은 이 도령을 만나면 풀리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 극일을 해야 했던 지금 우린도 반일이란 바보짓에 매진한다. 한국의 지금 대일 외교란 과거사를 붙잡고 계속 징징대는 꼴에 다름 아니다.

그런 반일 외곬주의란 친북-종북세력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인데, 나라의 문 닫는 지름길이라는 걸 나는 새삼 경고한다. 못난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다음 회 나는 <윤치호의 협력일기>(이숲)를 마저 소개하려 한다. 물론 박지향 교수의 저술인데, 윤치호(1865~1945)가 누구이던가? 근현대사의 거물인 그는 조선인을 향해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라"는 따끔한 말을 했던 사람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일제시대 그는 "징징대는 울음소리로 이 세상의 고통이 제거될까?"라며 국가경영을 위한 실력 양성을 강조했다. 한국사회를 망치는 저주인 '민족주의 집단사고'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그였다. 그런데도 한국인 대부분은 윤치호에게 친일파 딱지를 붙여놓은 채 희희낙락이다. 뻔뻔하고 유치할뿐이다. 그의 정신세계에 대한 차원 높은 이해 없이 한국인은 역사의 퇴행을 반복할 것이라는 걸 다음 기회에 전하려 한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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