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무너지면 경제 재앙," 정글자본주의 운운은 심신이 편한 사람들"

   
▲ 조우석 문화평론가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인터뷰를 또 내보내요? 그래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달 연속 제 얘길 실으시겠다면 며칠 뒤 나올 자전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에 혹시 뭔가 새로운 게 있을지 모르죠.” 4월 호 ‘행복한 나의 서재’에 등장한 소설가 복거일(68)에게 5월 호에도 인터뷰를 싣겠다고 전화로 귀띔하자 그는 당혹해했다. 겸손이 몸에 밴 탓일텐데, 그때 새 소설 얘기를 넌지시 꺼냈다. 남겨둔 얘기가 많아 추가 인터뷰를 안 해도 된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새 소설에 대한 강조를 잊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인터뷰팀에게 뭔가 암시를 준 것이다. 우린 그걸 흘려들었다. 소설, 시집, 평론집을 40권 펴냈는데, 새 책에 뭐 경천동지할 얘기가 담겼을까, 그런 마음이었다. 나중 알았지만,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는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치료를 거부한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놀랍게도 그게 복거일 자신의 스토리다. 그게 알려지며 도하 신문이 난리였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2년 반 동안 글쓰기에 진력한다니…. 
 

항암치료 거부한 후 2년반동안 글쓰기 진력해와

이후 한 달 내내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항암치료 포기가 과연 현명할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안타까움과 의문에 더해 말기암 환자의 심경도 궁금했다. “기력이 다할 때까지 쓸 것이다. 그게 삶의 본질에 맞게 내 삶을 마감하는 길이니 깃발을 휘날리며 진격하다 죽을 것이다.” 복거일은 소설 주인공의 입을 빌어 그렇게 선언했다. “복거일답다”며 혀를 내두르는 이가 적지 않았다. 간암을 다룬 의학 칼럼과 기사도 여럿 등장했다. 위중한 병에 걸린 지식인의 삶과 죽음의 선택에 이만큼 관심이 쏠렸던 건 드문 일이다.

“나답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 가장 복거일다운 삶과 죽음의 선택

복거일 옹호자인 나로서는 그게 감사했다. 이제야 세상이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싶었지만, 은근히 야속하기도 했다. 세상은 암 투병 소식 전하기에 급한 나머지 ‘지식의 성직자’ 복거일의 진면목에 대한 무관심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려 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도사로 변신했던 이 남자의 실체에 대한 관심은 덜했다. 그래서 지난 달 인터뷰가 복거일 이해에 요긴한데, 이달 나가는 그의 성장과정과 사회적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별도 인터뷰가 필요 없었지만, 새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만났다. 장소를 선택한 건 그인데,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뜰과 입구로 했다. 그의 집에서 가깝다. 그 전후 우리 통화는 부지기수이다.

언론은 암투병만 관심, '지식의 성직자' 진면목 무관심 여전
-선생님 간암 얘기가 처음 알려진 건 조선일보였습니다. 3월27일이던가? ‘항암(抗癌) 치료 받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으니까’가 인물 면에 실렸죠.
“문학담당 박해현 기자가 그 소설을 읽다가 뭔가가 이상하다고 판단해 바로 달려와 저의 투병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새 소설을 읽었으면 서평을 내보냈어야하는 거 아닙니까? 저의 간암 얘기나 커다랗게 쓰고 말이죠.”(웃음)
-아니죠.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웃음) 저도 그걸 보고나서야 새 소설에 두 번째 인터뷰 얘깃거리가 있을 것이라던 말씀의 의미를 알았죠.
“소설에 제 얘길 넣었던 건 지난 2년 반 동안 간암 얘기를 남에게 알리기도 뭐했기 때문이죠. 제가 과음도 안하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도 간암이예요. 2년 반 전 간암 진단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전이(轉移)돼 치료받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이후 정밀진단도 거부했고, 병원에 가지 않았죠. 소설가 최인호 선생 등이 항암 치료를 받느라 글을 못 쓰는 걸 봤기 때문이죠.”
 

   
▲ 복거일선생은 항암판정을 받고도 치료를 거부한채 작품활동에 몰두해왔다. 사는날까지 글을  쓰겠단다.

-간암은 가족력이 있는 것 아닙니까?
“간암 판정 때 병원에서도 그걸 물어보더라구요. 제 부친도 그걸로 돌아가셨거든요.”(웃음)(이 대목에서 엉뚱한 희망 하나를 나 혼자 품고 있다. 오진(誤診) 가능성이 그것인데, 주변의 내 친구 의사들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다고 했다. 그가 정밀 진단을 받지 않았다는 점, 암 진단 이후 2년 반인데 그가 여전히 글을 왕성하게 쓰며 건재한 정황이 그런 희망을 품게 한다.) 
 

-제가 감동한 건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와 했던 인터뷰였죠. “절망이야말로 가장 스테이블(stable·안정적)한 상태다”라는 선생님의 말…. 그날 제 친구인 사진작가 김아타도 그걸 언급한 묵직한 편지를 보내왔더라구요.
“뭐라구 했던 가요?”
""-아타가 본래 철학자이거든요. 메일을 그대로 옮기죠. “좋은 인터뷰 하나가 이 아침을 깨운다. 절망이 스테이블하다는 복거일 선생의 말은 실존의 정수이다. 나는 복거일 대인(大人)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가치는 알고 있다. 절망은 부정이 아니고, 비애도 아니다. 절망은 이상이나 추상 혹은 초월 따위를 놓아 버린 것과 같다. 오직 본질과 대적한다.” 비장하죠?
“고마운 말씀입니다. 절망이 스테이블하다는 발언은 종교에 기대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절망이 외려 확실한 평정심(平靜心)을 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과학이 내놓은 증거들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종교가 없습니다. 사실 희망을 품을 때도 그 안엔 약간의 불안이 따르는 법이거든요. 요즘 저는 남은 날들이 점점 더 소중합니다. 다가오는 죽음도 끔찍해요. 그러나 이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고, 기댈 곳도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안해집니다. 그래서 역설로 들리겠지만 저에겐 절망이 스테이블합니다.”
 

"절망은 부정도 비애도 아니다. 오직 본질과 대적한다"

-그거야 말로 신 없는 철학인 스토아철학의 핵심이죠. 소설에도 죽음을 앞둔 많은 이들이 종교에 귀의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다고 선언했더라구요. 그렇게 할 경우 지적(知的) 일체성이 붕괴되기 때문이라고 쓰셨으니 참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자각 증세는 없으세요?
“왜 오긴 오죠. 몸을 구부리면 간 부위 쪽이 압박이 느껴집니다. 좀 피곤하고. 그래도 견딜만합니다.”
-소설에 보면 “올 봄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드라마적 장치 아닐까요? 뭐 사실이기도 하죠.”

   
▲복거일선생이 자유경제원 주최한 강연회에서 칠판에 써가며 로봇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사회의 미래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세상을 섭렵하려했던 오디세우스 복거일, 이제 세상을 말하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자신을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로 설정한 대목이다. 그가 볼 때 오디세우스는 본질적으로 지식을 추구한 사람인데, 많은 이들이 그에게 매료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 그는 오디세우스가 동북아 문명권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아니라 지중해 문명권에서 만들어진 역동적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식민지체험과 전쟁을 겪은 한반도의 시골 땅에서 태어난 그가 지식인이 되어 세상을 보다 넓게 볼 수 있다면, 자신도 오디세우스의 한 명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려는 이들, 스스로 지식인이 되기를 열망한 오디세우스 과(科)의 사람들은 사실 쓸모없는 걱정, 세상 걱정을 많이 한다. 그래서 소설 제목에 ‘한가로운 걱정’이란 말이 등장한다. 흔한 말로 식자우환일까? 어쨌거나 복거일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생물학에서 한반도 주변정세에 이르기까지 아주 밝다. 그런 얘기를 할 때 더 진지해지고 신명이 나서 말한다. 이제부터는 그가 들려주는 복거일의 성장과정, 그리고 강남좌파나 친미-반미에 이르는 이념논쟁에 이르는 세상걱정의 발언을 경청할 차례다.

"복 아무개 죽여라" 죽창든 좌익청년들의 큰아버지 습격

-생애 첫 기억이 중요한데, 선생님의 경우 또 다른 자전소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에 그 얘기를 슬쩍 집어넣었던 걸로 압니다.
“맞습니다. 6‧25 직후 충남 아산 신창면 고향에서 그의 나이 갓 네 살 때 이념 갈등과 살육을 저도 보고 겪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선한 건 좌익청년들의 습격이죠. ‘복 아무개 죽여라!’ 죽창을 든 열다섯 명 좌익 청년들이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만 곧바로 우리집으로 쳐들어왔습니다. 한여름 해가 뉘엿뉘엿하던 무렵이었죠. 그때 대문가에 서서 지극히 놀란 마음으로 살기등등하던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게 저의 생애 첫 기억입니다. 복 아무개란 마을의 우익이던 자기 큰아버지 이름이었거든요.”
 

-막상 부친께서는 큰아버지와 또 달리 좌익이었잖습니까?
“아버지는 여운형의 건준(建準)에 참여했죠. 적에게 붙었다는 뜻의 부역자로 불렸습니다. 아버지는 좌익 경력을 씻고 가족 부양을 위해 6·25전쟁 때 미군 의무대대의 노무자로 취직합니다. 그걸 계기로 아버지께선 미 기지촌을 따라다니며 약방과 세탁소 등으로 생업을 삼으셨고, 처자식을 부양했습니다. 저는 1950~60년대 성장기 내내 가난한 기지촌의 아이로 자라났던 거구요. 어떤 의미로 우린 우리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셈이죠. 어쨌거나 이렇게 미시사, 가족사를 파고들면, 사회과학이 포착 못하는 현대사의 미세한 결이 드러나죠.”

미군의무대 노무자 였던 부친따라 가난한 기지촌 아이로 자라

복거일의 말을 잘 새기면 얻는 게 많다. 해방공간 혼란과 6‧25란 부농과 소작농, 친미와 반미의 손쉬운 이분법으로 풀어낼 순 없다는 교훈도 그 하나다. 민족주의 울분을 터트린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실은 그의 할아버지 대도 반일과 친일이 엇갈린다.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유공자였으나, 할아버지를 두고 세상은 친일파로 분류했다. 그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 하러 상해에 가려다가 압송돼온 뒤 먹고 살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 즉 동척(東拓)의 측량기사로 일해야했으니 불운했다. 친일-반일이란 것도 초등학교 교과서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
 

복거일의 균형감각은 그런 가족사와 성찰 속에서 만들어졌다. 다행스럽게도 회색분자로 숨어들지도 않았다. 엔간하면 좌파연하는 지식사회에 묻어가는 게 편했을텐데 그것도 거부했다. 지식인의 위선과 지적(知的)사치를 사양한 그는 외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옹호자로 나섰다. 지난달 밝힌 대로 그는 대학생 때 우리가 정복당한 문명임을 깨달았고, 나이 서른에 모든 지식은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그런 복거일을 떠받쳐주는 힘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아닐까? 그래서 민중주의-민족주의 도그마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 지식인이 가능했으리라.

   
▲ 복거일선생이 강연도중 눈을 닦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옹호자로 나서다

-한 신문기자가 칼럼에서 선생임을 옹호하면서 이런 말을 했더랬습니다. “박정희 개새끼라고 말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던 사회에서 복거일은 박정희를 말하고 자본주의와 부자를 옹호했다”구요.
“박정희 개새끼라고 말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그말은 원래 평론가 김현 선생님이 저에게 들려줬던 말이죠. 김현 선생님은 본래 호남 출신이고 김대중 신봉자였지만, 박정희의 치적은 치적 그대로 인정하자는, 균형 잡힌 감각이 있었던 분이죠.”
-‘박정희 반대로’를 개혁으로 착각하는 속류(俗流) 지식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의 사후 지금까지 30년 넘도록 사회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건 정말 안돼죠. 제가 몇 해전 <보수는 무엇을 보수하는가>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경제학자 로버트슨이 쓴 <경제학자는 무엇을 경제하는가? What Does the Economist Economize?>에서 따온 제목인데,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엔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라울 플레비쉬 등의 주장이 대세였습니다. 제국주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수출 수입을 줄이라는 정책인데, 그게 종속이론으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그걸 따랐던 나라들은 예외없이 망했습니다. 박정희는 외부지향적 경제를 지향해 성공했습니다. 당시로선 정말 드물게 과감했습니다.”
 

 '박정희 개새끼' 욕하던 시절, 박정희를 평가하다

-“나는 기지촌에 살면서 친미주의자가 됐다”는 말도 즐겨하시더군요. 그런 발언이 국내 풍토에서는 쉽지 않죠. 놀라운 건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에 담긴대로 기지촌이란 우리 현대사를 상징하는 공간 아닙니까?
“기지촌을 소재로 한 천승세의 소설 <황구의 비명> 등이 있고, 여성작가 윤정모의 반미 소설들이 있지만, 그런 작품들은 기지촌을 순전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단했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쉽게 민족감정을 터뜨리면서 대중에게 노골적으로 반미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건 안 됩니다. 해방 이후 우리는 미국에 절대적인 빚이 있습니다. 안보와 번영은 미국 때문에 가능했는데, 그걸 인정하는 게 왜 나쁩니까? 명분 좋은 민족주의자 행세를 하면서 개탄하는 척 하는 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죠.”
 

-좌파연해야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복 선생님이 비주류에 왕따인 건 좌파연하는데 동조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겠죠? 사실 문화계는 태생적으로 그런 삐뚜름한 경향이 있는 동네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죠. 9·11 테러 때 평론가 수잔 손탁이 ‘슬퍼하자. 그러나 함께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발언했잖아요. 테러에 분노하는 미국인에 대한 조롱이라서 논란이 컸죠. 할리우드도 그렇습니다. 상당수 영화가 음모의 진원지는 펜타곤이거나 CIA라는 식입니다. 소설이나 영화, 미술, 연극 등의 작품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판하면 문제의식이 남다르다고 평론가들이 추겨세워줍니다. 저처럼 그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하면 왜 작품 안에 작가의 사적인 견해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냐는 비판부터 듣습니다.”(웃음)
 

반미메시지 전하는 소설들,  "그건 안돼", 우리는 미국에 절대적 빚있다

-그래도 할리우드 영화의 바탕에는 미국 특유의 애국심이 깔려있습니다. 우리는 그게 아주 취약합니다. 역사 교과서 파동에서 보듯 반 대한민국, 반미, 친북의 이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국사회의 이념이 과연 건강한가 큰 의문입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자본주의)를 두 개의 축으로 합니다. 이게 정설이죠. 문제는 이 정설에 맞서는 이설(異說)이 너무 많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기 입맛대로 헌법의 규정을 취사선택할 순 없습니다. 비판을 할 때도 헌법 정설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게 정상입니다. 자유주의-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를 지지하는 게 보수라면, 제가 보수로 분류되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역사교교서도 바탕에도 계급사관의 변종인 민중주의와, 강렬한 좌파 민족주의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태도로 발전합니다. 이번 소설에도 한가로운 걱정들의 하나가 민중주의이더군요.
“맞아요. 암이란 게 다세포 생물에게는 본질적 위협 아닙니까? 세포 하나하나마다 자기가 번식하려고 경쟁하는 거죠. 룰을 안 지키고 내가 더 가져가겠다는 건데,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민중주의라는 게 암의 하나죠. 민중주의는 응집력이 약해진 민주주의 사회에게 본질적인 위협입니다. 지난 달에도 밝혔지만 민족의식이란 게 식민지 상황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이지만, 독립 이후 잘못하면 눈먼 민족주의로 발전합니다.”
 

민중주의는 암의 일종, 민주주의사회에 본질적 위협 

-우리시대 최대문제는 과잉 민족주의입니다. 그래서 친일파라는 딱지는 최악의 욕설로 통합니다.
“그게 국수주의예요. 우리만큼 국수주의에 완전 장악된 것은 거의 유례가 없습니다. 북한 인권에 눈감는 친북, 종북이란 것도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주의 정서 탓입니다. 나치츰 하의 독일, 군국주의 하의 일본도 그래도 소수의 지식인은 국수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린 그렇질 않아요. 특히 국사학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장 완고한 틀인 국수주의는 위험합니다. 우리역사는 중국 등 이웃나라의 움직임을 외면하면 거의 해석이 안 됩니다. 그런 상식조차 외면한 채 일국사에 갇힌 채 왜곡을 거듭하죠.”

“당신은 이념의 무임승차자인가? 심신이 편안한 자로 사는 걸 경계하라”

그래서 그는 지난해 <역사가 말하게 하라-한국사 맞수들의 가상대담>(다사현 펴냄)를 펴내면서 한반도의 좁은 땅에서 벗어나 국경 밖의 너른 세상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역사교과서와 국사학계 분위기가 글로벌한 기준에서 한참 벗어났으며, 우리의 빈약한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려는 공모(共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사실 복거일의 그런 문제의식은 꽤 오래 됐다. 그걸 드러낸 게 11년 전에 펴낸 책 <죽은 자를 위한 변호>이다. 모든 걸 친일파 때문이고, 그래서 민족정기가 훼손됐다 라면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성취를 매도하는 민족지상주의 분위기에 브레이크를 건 문제작이다. 소모적인, 너무도 소모적인 과거사 논쟁에 대한 해법을 담은 책은 얼마 전 같은 제목으로 재출간(북앤피플 펴냄)됐다.
 

   
 

-역사교과서 문제의 해법은 없는 겁니까?
“학부모 1000명만 일어서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계급사관으로 빨갛게 물드는 걸 볼 수 없다’며 항의를 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죠? 반 대한민국, 친북의 논리로 쓰여진 역사교과서에서 수능문제가 많이 출제될 거 아닙니까? 우리 아이도 점수를 많이 따야하니까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이념의 무임승차자’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막상 대한민국 가치를 지키는 건 외면합니다. 공짜 점심을 너무 당연시하는 거죠.”
 

학부모 1000명만 일어서면 좌파종북 역사교과서 해결돼

-이념의 무임승차 얘기는 복 선생님 책에서 여러번 강조되는 걸 봤습니다.
“우리 사회는 좌파들이 많은 게 문제는 문제입니다. 인구의 20% 내외로 추산되는데, 이런 무슨 무슨 주의자들은 과감하게 도려내거나, 아니면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하면 해결이 됩니다. 이보다 훨씬 많은 무임승차자들이 그 못지 않게 큰 문제입니다. 도려낼 수도 없고, 설득도 쉽지 않습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아마도 대기업의 사원일 겁니다. 노조를 조직해 자기 보호막을 친 채 누릴 건 다 누리지만, 자신들이 시장경제의 수혜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혜택에 따른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걸 몰라요.”
 

-선생님이 엮으신 책 <나는 왜 자유주의자가 되었나>를 보니 새무얼 브리턴의 책 <경제적 자유주의 재천명>을 읽은 뒤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자유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을 했더군요.
“사람들은 보통 노조를 고용주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자기보호로 압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영국병을 만든 영국 노조의 실상을 알게됐고, 그런 것을 외면하는 유럽 지식인들의 위선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겁니다. 정규직의 경우 경기가 좋아져도 고용주가 직원을 늘리지 않길 바랍니다. ‘차라리 돈을 덜 벌지’하는 심리인데, 그게 자기네 이익을 지키는데 유리하거든요. 그러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비정규직을 잘라내고 싶어합니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기득권 보호를 위한 인위적 독점의 장치이거든요.

   
▲ 복거일은 삼성에 근무하면서 야당을 찍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념의 무임승차자들이리고 지적했다. 대기업을 비난하고 평등과 정의를 외치는 자들은 심심이 편한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그는 삼성 등 대기업을 옹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진화하고,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는 대기업이 무너지면 경제에 재앙이고, 시장경제도 지탱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가장 글로벌한 삼성전자 일하면서 야당찍어, 이념의 무임승차자들

-하지만 사람들은 대기업의 사원들은 고용주에 비해 약자라고 믿습니다.
“그것도 잘못이죠. 일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로벌한 기업인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도 막상 선거 때는 야당을 찍습니다. 전형적인 이념의 무임승차에 해당합니다. 명백한 증거가 저에게 있어요. 제 고향 아산의 삼성 탕정단지가 있잖습니까? 그곳에서 근무하는 삼성 직원들이 무더기로 아산시장 야당 후보를 찍어준 겁니다. 그렇게 몰표를 받아 당선된 사람을 제가 좀 아는데, 행정경험도 떨어지고 문제가 없지 않거든요.”

대기업비난, 평등 정의 외치는 강남좌파들, "심신이 편한 사람들"

-그렇게 말하니 재벌, 대기업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듣는 게 아닐까요?
“제가 대기업을 옹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끊임없이 공격하고 해체를 운운하는 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죠. 대기업이 무너지면 경제적 재앙은 물론 시장경제의 원칙 자체를 못 지킵니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발달한 기업형태가 대기업입니다.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기업 아닙니까? 그런데 아주 짧은 생각으로 정글 자본주의가 어떠니 하면서 사람들 귀에 쏙 들어오는 평등과 정의의 구호를 외치며 스며드는 무리가 많습니다. 어떤 철학교수가 그런 이들을 ‘심신이 편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더군요. 강남좌파들이죠.”
 

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자본주의 더럽다고 욕하는 그들, 생각따로 삶따로 인지부조화 빠져

아니러니다. ‘심신이 편한 사람들’은 젊을 적 만났던 낡고 왜곡된 지식-정보에 진리라고 착각한다. 공산당 선언이든, 가이아 이론이건 간에 그 안에 안주한 채 관념적 사치를 즐긴다. 자본주의의 핵심 경쟁단위인 기업에서 일하면서도 자본주의는 더럽다고 여기니 생각 따로, 삶 따로의 인지(認知) 부조화에 빠져있다. 그래서 복거일을 보고 그들은 “기업을 옹호해 돈 버느냐?”고 짐짓 준열하게 꾸짖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념의 무임승차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막상 복거일은 검소하게 산다. 아니 가난하다. 서울 변두리 수색의 월셋집 아파트에서 30년 넘은 앉을뱅이 자개상에 앉아서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옹호하는 글을 쓴다. 책상은 시집올 때 아내가 들고 온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나보다 더 가난한 지식인은 한 때의 진리에 안주하는 자들이다.” 정문일침이다.

   
 
-그런 분들에게 들려줄 메시지의 하나는 ‘자본주의는 효율적일뿐만 아니라 정의롭다’는 것 쯤이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내가 쓴 책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 쓴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사회 번영과 개인의 자유를 가져오는 체제입니다. 통념과 달리 가장 빠른 경제성장이야말로 공평한 분배의 첫걸음이구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시장경제를 옹호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제대로 지켜낼 수 없습니다.”
-평등이야말로 궁극적 정의라면서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여전합니다. 대기업은 그렇게 목청 높이는 시민단체에 뒷돈을 찔러주는 일도 많구요.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깊이 성찰했던 분인데, 안타깝게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자기파괴적 경향도 드러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징후는 우리에게 유독 강한데, 일테면 대기업을 포함한 우파는 혜택을 받으며 기업을 키웠는데도 그 뒤에는 막상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지키는 데는 소홀합니다. 좌파의 표적이 되지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겠죠. 좌파들이 빌딩이 많이 갖고 있는데, 그게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대기업이 민변 소속 변호사에게 더 많은 일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대기업과 우파, 시장경제 혜택받고도 체제 이념 지키는데 소홀

-슘페터가 말한 자기파괴적 경향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대중정치인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도 해당되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맞습니다. 시장경제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저들에게서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그걸 모르니까 가난한 상인,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놓고 혼내주는 정책을 즐겨 내놓습니다. 그런 기회에 시장 규제를 하고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죠. 그런 배경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한 이익공유제까지 논의됐던 게 아닙니까?”
-그런 생각을 압축하는 구호가 경제민주화 아닐까요? 그럼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선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는데 말이죠.
“경제민주화 구호는 단순한 선거전략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한때 경제학자 김종인 씨를 중용했던 것도 그렇잖아요.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 겁니다. 집권 이후 해보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규제를 줄인다 뭐한다며 혼선을 빚고 있는 겁니다.”
 

박근혜정부도 자유민주주의 이념 후퇴한 것 아닌가 걱정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니 이명박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섣부른 중도주의를 천명하는 바람에 지지기반이 이탈했고, 이념 정리를 할 기회를 잃었다고 지적하셨더라구요.
“그 생각에 변함없습니다. 집권 1년여가 지난 지금 어쩌면 박근혜 정부는 그때보다 더 후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좀 전에 평등한 가난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말하셨는데, 그건 우리 눈앞의 현실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그쪽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단 박 시장에게 누구 못지 않게 강한 민중주의 정서가 깔려있으니까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은 꽤나 높습니다.”

   
 
박원순식 마을공동체는 반시장, 반자본주의, 필연코 실패할 것

-마포에 있는 성미산마을 같은 대안공동체를 서울 외곽에 열다섯 곳 육성한다면서 예산 380억 원을 투입한다는 신문기사를 봤습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평등한 가난’이 좋았다며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키우는데, 그게 반 자본주의, 반 시장경제의 심리에서 나옵니다. 대안공동체의 마지막 시도는 1960년대 말 이후 미국에서 일었던 히피공동체인데, 그게 남겨준 교훈이 있다면, 공동체운동은 필연코 실패한다는 것이죠. 그건 제가 단언할 수 있는데, 생산성이 크게 낮기 때문이죠. 그리고 외부와의 연결을 끊어진 닫혀진 체계(closed system)라서 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종교집단 아미쉬도 예전 같지 않다고해요. 공동체 운동의 소멸은 분업을 원리로 하는 시장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새삼 보여줍니다.”

지식인이 한가로운 걱정을 아무리 직업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대화는 본격적인 담론이 되어버렸다. 무거운 얘기가 맞다. 하지만 그의 발언들은 우리 사는 삶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니 어렵고 말 것도 없다. 사실 약간의 의견차이를 접고 큰 대의(大義)를 찾아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사람 드는 건 몰라도 나간 건 안다고…. 앞으로 복거일이란 딸깍발이 선비가 없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득해진다. 그래서 더욱 그가 들려줬던 말 하나 하나가 가슴에 새겨진다. 몸 성치 않은 그를 붙잡고 말을 시키는 건 도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의 인터뷰는 그래서 충분히 인간적이다.
 

위엄지니고 죽음 맞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어

그의 인터뷰 말미를 보면 “허 선생, 슬퍼할 거 없어. 안타까울 거 없어.”라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여 기자를 복거일 선생이 외려 위로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참고로 그 기자는 며칠 뒤 기명 칼럼 ‘복거일 선생님, 오래 사세요’를 썼다.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우리 대화의 마무리로 삼는다. “죽음을 앞둔 작가 복거일은 ‘(남들에게) 잊히고 기억되는 것이야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위엄을 지니고 죽음을 맞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정직하고 용감하게 살아온 진정한 지식인인 그의 생명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기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미니박스 "항암치료 안 받는 건 글 쓰고 싶기 때문"
-그가 밝힌 간암 진단과 2년 뒤 지금의 삶

복거일 선생은 병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건 좀 구차하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래도 궁금하다. 발병(發病)을 안 것은 2년 반 전이다. 몸살감기가 계속되고 해서 건강 진단을 받았는데, 폐와 간이 이상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당시 암 세포가 폐에서 간으로 전이된 것 상황이다. 폐에 반점이 보이고 간에는 종양이 붙어 있었다.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길래 “다시 오겠다”며 일단 일어섰다. 나오며 의사에게 자기 책을 선물로 주니 “암 선고 받고 이렇게 태연한 환자는 처음”이라고 병원 쪽에서 당혹스러워했다. 그날 아내와 딸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 나온다.
 

"치료받기엔 너무 늦어, 남은 날 글쓰는데 쓸란다"

그가 선언하듯 밝혔다. “치료 받기엔 늦었다. 남은 날을 글 쓰는데 쓸란다.” 딸이 울면서 매달렸다. “그래도 병원에 가자. 포기할 단계는 아니잖아.” 그게 벌써 2년 반 전인데, 그는 태무심하게 인터뷰 일행에게 말했다. “침샘암 발병해서 투병 5년만에 돌아간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경우가 어땠는지를 우리가 알잖아요. 저는 좀 약아서 그런 치료를 안 받는 겁니다. 뭐 버틸만하구요.” 복거일의 분투는 놀랍다.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쓴다. 죽는구나 싶으니까 집중이 외려 더 잘되서 요즘엔 하루 종일 글을 쓴다. 간암 선고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SF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세 권(4∼6권) 매듭지었다. 지금 그는 편안하다. 진단 초기 스스로 너무 놀라 암 판정 받은 이들이 심리적 쇼크로 사망하는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때의 충격에 잠 못드는 밤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어느 날 저녁 내가 불쑥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가 크고 밝았는데, 시인 정현종 선생과 저녁 식사하는 자리라고 전했다.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최근 그의 심경을 반영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몸에서 정보처리가 잘못되어 암이 자란다는 사실은 마음 한구석에 늘 무겁게 얹혀있지만, (한강변을 산책하는) 이 순간엔 자신이 이곳 생태계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부드럽게 씻어준다. 이 세상과 거의 화해한 느낌이 들면서,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 가슴에 찬다. 죽음을 앞둔 처지에서 그것도 작지 않은 성취라고 할 수 있다.”(28~29쪽) /조우석 문화평론가,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