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5개월의 공과에 대한 진솔한 평가
   
▲ 조우석 언론인
추석을 낀 긴 연휴도 거의 막바지인데 그동안 가족과 일가친척 모여 이러저런 얘기를 나눴으리라. 그런 게 추석 민심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론 상대방과 말 섞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우리 현실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세대별, 좌우간의 이념 장벽이 그만큼 높고 완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50~60%대를 유지한다는 대통령 지지율도 전혀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5개월을 개혁-민주화-선진화의 과정이라고 믿는 층이 그만큼 많으며, 현 상황을 안이하게 방관하는 사람도 그만큼 수두룩하다. 그건 시민정신의 퇴화인 동시에 2017년 오늘 대한민국의 생존양식에도 맞지 않는다는 걸 오늘 나는 감히 지적하려 한다. 

좌파가 집권했지만 그럭저럭 세상은 굴러가는 듯하고, 한미관계가 삐걱거리지만 당장 큰일이야 나겠느냐 싶은 안이한 판단인데, 그런 게 의외로 크고 넓게 분포됐다. 북핵이 정말 걱정인데, 그것도 예전처럼 국제사회가 그럭저럭 대처해줄 것이란 무책임한 기대도 여전하고, 평화란 기만적 구호를 외치는 무리도 상당수다.

"이번 연휴 때 인천공항 통해 외국여행을 즐기다 왔지만, 앞으로도 별 일 있을라구?"하는 식인데, 그래서 되물어야 한다. 인류 앞에 핵이 등장한 이래 국가공동체가 핵 위협에 노출된 상황은 대한민국이 처음이고, 더욱이 나라 전체가 무장해제 상태로 놓여있는데 왜 누구도 이런 무시무시한 진실을 정면에서 응시하려 하지 않는가?

YS 개혁과 문재인 정부가 같고 다른 점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다음 주 초로 집권 5개월을 맞는다. 그동안 일어난 무시무시한 변화, 그리고 뭘 모르는 국민들의 묻지마 호응이란 결코 흔한 일이 아닌데, 당장 비교해볼 건 김영삼 정부 초기의 상황이다. 그때 김영삼 정부는 실로 요란하고 시끌벅적했다.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하나회 해체가 그 하나인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40개의 별을 떼어내는 숙군(肅軍) 작업을 대통령이 지휘했다. 그해 여름 금융실명제 실시도 대단했다. "앞으론 가진 자가 고통 받는 시대가 될 것"이란 정부 발표에 국민들은 박수부터 쳤다. 그해 이듬해 초 여론조사의 공식지지율이 90%를 넘나들었다. 

그 덕에 라는 김영삼 유머모음집은 출간 한 달이 안 돼 30만 부가 팔려나갔고, 대선 때 4%밖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던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20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게 얼마나 거대한 허상이었는지는 차남 현철이 문제가 불거지고 최악의 IMF 금융위기 속에 지지율은 한자리수로 주저앉으며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 문재인 정부는 다음 주 초로 집권 5개월을 맞는다. 적폐청산 구호 아래 탈원전 선언, 군 고위장성 인사에서 방산 비리 들추기, 전작권 환수에 이르는 일련의 조치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본질은 김영삼 정부 등장 1993년 이후 한국사회는 구조적 해체 국면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해체? 맞다. 개발연대에 만들어진 뒤 5공까지 유지돼왔던 국가혁신체제가 그때 확실하게 무너져 내렸다. 일테면 김영삼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까지 집어치운 채 그걸 신경제란 걸로 바꿔치웠다. 

무엇보다 역사 바로 세우기야말로 대한민국 정통사관을 좌익 수정주의 사관으로 바꾸는 분기점이었다. 개혁-선진화-민주화란 이름 아래 벌였던 거대한 분탕질을 최고지도자란 자가 지휘했고, 그때 이 나라 허리가 꺾였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 등장도 그때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윽고 올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자칭 3기(期) 민주 정부다.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정부의 지난 5개월은 파죽지세였다. 그건 김영삼 시절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인데, 김영삼이 무너뜨린 게 국가혁신체계 정도였다면, 문재인 정부 5개월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게 서로 다를 뿐이다.

공공부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시 이래 적폐청산 구호 아래 탈(脫)원전 선언, 군 고위장성 인사에서 방산 비리 들추기, 전작권 환수에 이르는 일련의 조치가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물론 이명박 때리기를 포함해 보수 불태우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중동을 포함한 매체들은 그걸 비판하지만, 본질엔 눈을 감는다. 기껏 "과속질주는 안된다", "그래도 민주적 절차는 지켜라"하는 조언이 전부다.

사실상 민중혁명, 누가 진실 전할까

적폐 청산이란 게 반혁명세력 정리와 다를 바 없고, 탈 원전을 포함한 조치가 이 나라 정치-경제의 맥을 끊는 행위라는 게 아직 저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 흔들리는 한미관계를 저토록 방치해두다가는 연방제 통일로 갈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깨달은 게 그래도 다행인데, 그게 최근 한두 달 새 일어난 변화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예고탄이다. 며칠 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지적처럼 그건 민심을 떠보는 행위다. 더 무시무시한 한반도 환경변화로 우리는 내몰릴 수 있으며, 그런 카드가 속속 대기 중이라고 봐야 한다. 잠시 헷갈리는 건 홍준표가 정치평론가인가, 제1야당 대표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위기를 더 부채질한다.

그렇다고 이 상황의 책임을 누구에게 떠넘기겠다는 게 아니다. 대통령 문재인을 뽑은 건 지난 5월 대한민국 유권자의 선택이고, 때문에 우리 공동의 책임이다. 대선 전 나는 5월 대선이 중남미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칠레 아옌데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런데도 우린 그런 선택을 했다. 반복하지만 지금 이 나라의 앞이 안 보이는 건 새 정부의 정책 실패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뽑은 새 정부의 확신에 찬 이념적 선택에 따라 사실상의 민중혁명-체제변혁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링컨이 그랬다고 한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국민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한다." 과연 누가 그 진실을 전할 것인가?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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