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감사는 사라지고 기업감사 전락…호통·망신주기 '갑질' 뿌리 뽑아야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국감은 1988년 부활했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국정수행과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말 그대로 국가의 정책을 감사하는 자리다. 즉 정부가 나라 살림을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자리다.

국감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 권리다(61조). 입법부가 예산, 곧 세금을 쓰는 행정부의 잘잘못을 따져 묻는 자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가 정책 감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업이 들어섰다.
국감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치적 홍보의 장으로 전락했다. 국감 때마다 숱한 기업인들이 불려나와 호통과 윽박, 망신주기의 제물이 된다. 오죽하면 기업감사, 기업청문회라고 할까.

문재인 정부 첫 국감인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업인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나올 모양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를 넘어 역대급이란다. 재벌 개혁을 내세운 국회의원들이 기업총수·대표·사장들을 무더기 증인으로 채택하고 '군기잡기'를 벼르고 있다.
 
국감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지만 기업인들이 국감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려 나가는 경우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17대 국회는 52명, 18대 77명, 19대 124명으로 늘어났다. 20대 국회 첫 해인 지난해는 120여명에 달했다. 현재까지 주요 상임위에서 증인으로 채택됐거나 출석이 예정된 기업인은 어림잡아 150명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무위원회가 요청한 54명의 증인과 참고인 중 절반 이상이 기업인이다. GS칼텍스 회장, 네이버 창업주, 카카오 이사회 의장, SK텔레콤 사장, KT 회장 등이 포함됐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롯데그룹, SK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신세계그룹 등의 회장들을 부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국감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 권리다(61조). 입법부가 예산, 곧 세금을 쓰는 행정부의 잘잘못을 따져 묻는 자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가 정책 감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업이 들어섰다. 오죽하면 기업감사, 기업청문회라고 할까. /사진=미디어펜


촛불 ·탄핵 정국에 이은 19대 대통령 선거 등 유래없는 정치 격변기를 거치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지금 국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대내적인 상황뿐 아니라 대외적 상황을 보면 더욱 심각하다.

북한의 잇단 핵 미사일 도발로 인한 안보 불안과 미국의 예측할 수 없는 대북기조, 도마위에 오른 한미FTA 재협상,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안보 경제를 위협하는 악재의 가시밭길이다. 북핵 리스크에 이은 미국발 통상압력 등 한반도에 안보·경제 복합 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기업은 가시방석이다. 대외적 악재에 대응하기도 버겁다. 아랑곳 않고 대내적으로는 반기업정서에 온갖 옥죄기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 전 정부의 탄핵과 맞물려 기업 총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곤욕을 치뤘고 또 치루고 있다. 10월 한국 경제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다.

기업의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국회만이 마이동풍이고 우이독경이다. 청산되어야 할 적폐이자 구태가 또 다시 반복되고 있다. 총수의 국감 출석을 앞둔 기업은 그야말로 만사휴의다.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매달린다. 최고책임자가 국감장에 불려 나간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

19대 국감에 출석한 기업인 증인 가운데 5분 미만으로 답변한 비중은 76%에 달했고 이 중 12%는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하루 종일 대기하다 막상 증인으로 나서도 의원들은 자기 말만 하고 질의는 고작 몇십 초에 그치기 일쑤다. 12시간 기다리다 30초 답변하다 돌아가거나 6시간 56분 대기하다가 7초간 답변한 기업 대표도 있다.

기업들이 피감기관이 아님에도 국감 노이로제에 걸린 것은 국감이 기업감사로 변질되고 무리한 증인채택과 호통과 면박주기, 인신공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2015년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하느냐?"는 황당한 질문도 나왔다.

마구잡이로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관행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여야는 올해 '증인신청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유명무실하다. 그래도 기대한다면 이왕 기업인을 불렀으면 제대로 귀 기울여 경청하기를 바란다.

기업인을 '무차별 호출' 하고 과도하게 몰아세우는 국감 관행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 바뀌어야 한다. 혁신성장을 천명한 만큼 정부도 더 이상 기업을 옥죄는 행태로 투자의욕은 꺾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기업을 몰아붙이고 국회가 윽박지르는 것은 결국 기업의 성장을 막고 일자리를 걷어차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