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유리정원'서 과학도 재연 역 맡아
"신수원 감독님과 '언어의 장' 비슷해…촬영하며 신나게 소통했죠"
"'신데렐라 언니' 찍으며 연기 고민 시작…선배 배우들 이해하게 돼"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대한민국 최초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안았던 문근영이 어느덧 서른살이 됐다. 싱그러운 미소로 스크린을 수놓던 그의 눈망울은 깊어졌고, 상큼발랄하던 분위기에는 이제 여배우 특유의 품격이 흐른다. 이토록 매끄럽게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도약한 케이스가 또 있을까. 18년의 세월 동안 한치의 곁눈질 없이 배우의 길을 걸어온 문근영은 가랑비에 속옷 적시듯 그 존재감을 대중의 뇌리에 천천히 각인시켜왔다.

물론 문근영은 시작부터 화려했다.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로 스타덤에 오른 뒤 영화 '장화, 홍련'(2003)을 통해 천재적인 연기 감각을 드러냈고, 이내 철없는 여고생(2004·'어린 신부')의 얼굴로 변신해 전국의 오빠들을 쓰러뜨렸다. 2015년에는 영화 '사도'의 혜경궁 홍씨로 분해 모성애까지 통달한 문근영이다.

그리고 2년 만에 '유리정원'으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문근영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모든 매력이 집약된 작품이 '유리정원'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면 속 그의 모습은 다채롭고 또 신비로웠다.


   
▲ '유리정원'의 배우 문근영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올댓시네마


'유리정원'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근영은 영화 속 재연처럼 외면은 유약해 보이지만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뚜렷한 내면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지난 25일 개봉한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은 홀로 숲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를 훔쳐보며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쓰는 무명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에 밝혀지는 비밀을 다룬 작품.

색깔이 확실한 미장센과 문근영의 미친 열연은 음울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탄생시켰다. 문근영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느꼈던 분위기와 최종 완성본의 이미지가 비슷했다고 밝혔다.

"느낌적으로만 접근하면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왔어요. 디테일하게 상상했던 이미지와 비교해보면 좀 더 음침하고 진득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싱그러우면서 밝고, 수풀의 이미지가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런 차이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느낌은 비슷한 것 같아요. 맑고 깨끗해서 오히려 더 잔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문근영이 연기한 재연은 수수한 소녀와 연구에 광적으로 사로잡힌 과학도를 오가며 보는 이들에게 연민과 긴장감, 상반되는 두 감정을 느끼게 한다. 적절한 표현의 수위와 정도를 찾는 게 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책을 읽으면 느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가 느끼는 만큼 이미지가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표현하는 수위와 정도를 찾는 걸 중요한 부분으로 봤죠. 감독님과 의견이 맞닿아있었던 건 재연이 확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고,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신수원 감독과의 소통이 즐거웠다는 문근영이다.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소통과 언어에 대한 생각을 조곤조곤, 그리고 조리 있게 전하는 그의 모습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람들이 소통할 때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말이 갖고 있는 의미도 다 다르잖아요. 감정도 다르고. 이 업계에 계신 분들은 뉘앙스의 미세한 차이에 예민한 사람들인데, 그것까지도 고려해서 소통해왔어요. 근데 소통이 잘 되던 부분도 어떤 사람과는 잘 안 되고, 소통이라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낀 거에요. 그 시점에 감독님과 만나게 됐는데, 제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렵지가 않은 거에요. 재밌고 신났죠. 감독님은 '너와 나의 언어의 장이 비슷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사람들이 쓰는 단어와 그 속에 함축된 의미가 있고, 개인마다 언어의 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세계가 비슷한 사람과 만나면 어떤 단어를 써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잖아요. 저와 감독님이 그러다 보니 소통도 쉬워지더라고요."


   
▲ '유리정원'의 배우 문근영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올댓시네마


영화 속 재연은 수동적으로 비친다. 동료에게 연구 자료를 뺏겼을 때 보이는 반응이나 억울하게 실연당했을 때의 행동은 '사이다'를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답답한 대목이다. 다만 문근영은 이 같은 말을 전하자 "능동과 수동의 구분점을 아직 잘 모르겠다"고 입을 열었다.

"제가 재연 같은 스타일이라서요. 전 자극을 받으면 '악'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요. 주변 사람들은 제게 화도 내보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불편한 일인 거에요. 한편으론 억지로 화를 내는 게 제게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게 하는 대신 '내 방식대로 화를 내는 거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재연에 대한 이해도 잘 됐던 것 같고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을 걸요."

많은 이들이 상큼발랄한 얼굴 때문에 '문근영' 하면 통통 튀는 이미지를 예상하지만, 그의 외모 뒤에는 차분하고 진중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자신과 닮은 재연을 연기한 문근영은 폭발하지 않고 잠잠히 극을 이끄는 게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까지도 수많은 감정을 고요히, 또 고스란히 제 것으로 삼키는 재연이 그에게는 매력적이었다고. 휴식시간마저 행복했다는 그가 영화를 통해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촬영이 끝나기까진 이 영화가 상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완성본을 봤는데 위로받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상처에만 국한되는 영화는 아닐 수 있겠다…어떤 부분에선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고, 치유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 '유리정원'의 배우 문근영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올댓시네마


'유리정원'은 18년간 치밀하게 쌓인 문근영의 내공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03년 '장화, 홍련'으로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맡는 작품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을까. 뜻밖에도 그는 최근 연기 고민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20대 중후반부터에요. '신데렐라 언니'를 찍으면서 직감적으로 연기하는 건 끝이라는 걸 느꼈죠. 다른 선배 배우들이 고민을 왜 하는지도 이해되고…대본을 분석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기 시작했어요."

직감으로 연기했던 옛날이 더 쉬웠던 것도 같지만, 이 간극에 지쳐버린 건 아니다. 아직 연기를 알아가는 중이고 고민을 놓지 않고 있다는 문근영은 "노력하고 고민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송혜교 아역으로 출연했던 '가을동화'를 최근 다시 봤다는 문근영은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국민 여동생일 것 같았지만, 어느덧 선 굵은 성인 배우로 성장한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감회도 마찬가지다. 송혜교와는 이후 접점이 있었는지 묻자 "3~4년 전에 우연히 뵀다"며 입을 열었다.

"너무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감동받았어요. '그 땐 애기였는데…혹시 술도 마셔?'라고 물으시길래 '네, 마셔요' 하니까 '그게 너무 신기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문근영은 브라운관 속 간호사였던 언니가 선생님이 되고, 자유자재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고 꽤 이른 나이부터 연기를 꿈꿨다. 천부적인 재능 덕에 시작은 화려했고, 청소년기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긴 호흡으로 배우 생활을 이어왔다. 배우를 안 했으면 뭘 했을지 모르겠다는 문근영이지만, 그토록 긴 활동 기간에 피로감도 있었을 텐데.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연기를 위한 생활 리듬을 입에 담으면서 천생 배우의 면모를 드러냈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애정이나 애착을 가져야만 열심히 한다는 걸 알아서요. 애착을 갖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고요. 반대로 쉴 때는 다음에 어떤 작품을 만날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뭔가에 애정을 갖고 애착을 가질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 때도 열심히 하고 쉴 때도 열심히 쉬는 편이에요. 그 밸런스를 잘 지켜야죠."


   
▲ '유리정원'의 배우 문근영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올댓시네마

   
▲ '유리정원'의 배우 문근영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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