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방카에 전략적 환대, 우린 트럼프 모욕 주기에 바빠
   
▲ 조우석 언론인
"'이방카, 요리 어땠죠' 요정·호텔 일정 생중계…요란한 일본"(중앙일보), "이방카에 빠진 일본…공항·식당 따라다니며 생중계"(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이자 백악관 보좌관인 이방카 트럼프가 일본 방문 중 받는 이례적 환대를 보도한 국내 신문들의 제목이다.

저렇게 호들갑일까 하는 한국인의 멀뚱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부러움도 깔려있다는 걸 부인 못한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에 앞서 방일한 이방카에 대한 일본 매스컴의 취재 열기는 과연 대단하다. 공항 도착부터 식사 일정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감탄한다. 일본 특유의 극진한 접대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위해 하나로 뭉친 저들의 모습이다.

당초 이방카는 트럼프와 함께 움직이려했다가 일본만 방문하는 걸로 알려졌다. 어쨌거나 이런 권력실세 독점 기회를 왜 소홀히 하겠는가? 뭣보다 국익이 걸려있지 않던가? 일본의 이런 행태는 우연이 아닌데, 1945년 패전 직후 점령국 미국 앞에 취했던 태도가 오버랩된다.

왜 일본은 敵將 맥아더를 숭배했나

확실히 일본은 한국의 기질 혹은 풍토와 사뭇 다른데, 위기국면에서 뭉치고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상식이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300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전 국민의 옥쇄(玉碎)까지 다짐했던 종교집단 비슷한 나라였기 때문에 미군은 상륙 직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천황 숭배 광신도들에 둘러싸인 적대적 환경에서 점령정책을 힘들게 펼칠 걸로 예상했다. 상륙해보니 딴판이었다. 그 진풍경을 미 역사학자는 이렇게 서술했다. "야아! 하며 환성 지르는 여자들과,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오는 남자들에 미군은 놀랐다. 우아한 선물과 접대, 그리고 공손한 태도에 즉각 매료됐다."(존 다우어 지음 <패배를 껴안고> 민음사 펴냄)

미 MIT대 교수인 존 다우어에 따르면, 패자 일본은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당시의 유행어가 '1억(億) 1심(心)'이었는데, 일본 전인구가 한 마음으로 뭉쳐 점령군에 우선 협조하고 훗날을 기약하자는 얘기다. 대단한 일본이 아닐 수 없는데, 일부는 맥아더를 아예 숭배했다. 

   
▲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2만 명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맥아더 초상화 자수 작품을 진상했을 정도다. 적장(敵將)에게 선물을 바치는 패전국민의 집단심리란 가히 사회병리학 연구대상인데, 가관은 따로 있다. 미군용 위안부를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모집한 것이다. 매춘업자에게 정부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었지만, 대장성-내무성-외무성 등이 뒤에서 기획하고 움직였다.

곧 상륙할 미군이 일본 여성을 모조리 겁탈한다는 흉흉한 소문 앞에 일본 정부가 알아서 조치를 한 것이다. 실제로 내무성은 8월 18일 위안부 시설 설치 지시를 전국 경찰에 내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 당시 도쿄 시내 한 복판에 위안부 모집 공고 '신일본 여성들에게 고함'가 내걸렸다.

"전후 처리를 위한 국가적 긴급시설의 일환으로 진주군 위안이라는 대사업에 참가할 신일본 여성들의 솔선수범을 청한다." 놀랍게도 도쿄에서만 1360명의 여성들이 몰렸고, 이후 이 국가 매춘굴은 30곳으로 확대됐다. 물 만난 매춘업자들이 황궁 앞에 모여 "폐하 만세!"를 외쳤다. 당시 한 고위관료는 "다른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방파제"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몸을 낮추고 또 낮춰 일본은 다시 일어섰다. 1952년 맥아더사령부의 점령 기간 중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주가가 90% 뛰고, 도요타차 생산이 40% 느는 등 기사회생했다. 어쨌거나 현대일본의 얼굴을 만든 굵직한 틀인 평화헌법 제정, 전범재판도 이때 해치웠다.

트럼프 따라다니며 시위하겠다는 좌파

물론 철두철미 국익을 최우선으로 돌아가는 일본 언론의 협조를 잊으면 안된다. 맥아더가 명령 불복종 죄(만주 원폭론)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던 1951년 4월 아사히는 '맥아더 원수를 그리며'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당시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그 글의 일부가 이렇다.

"패전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했을 때 우리에게 민주주의-평화주의가 뭔지 가르쳐주고, 일본을 바른 길로 이끌어준 건 맥아더 원수였다." 당시 NHK는 맥아더의 귀국을 생중계했는데, 아나운서는 "사요나라, 맥아더 원수"를 울먹이며 반복했다. 학교도 휴교령을 내린 채 무려 20만 환송 인파가 맥아더가 공항으로 가는 길을 채웠다.

기막힌 나라, 대단한 일본이 맞다. "'이방카, 요리 어땠죠'…요란한 일본"(중앙일보)을 지켜보면서 "사요나라, 맥아더"라며 울먹이던 옛 일본 생각이 난 것인데, 이미 독자들은 필자의 의도를 감지했을 것이다. 때문에 나머지 글은 사족인데,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상황이다.

확실히 대한민국은 일본과 다르다. 일본은 위기상황에서 과공(過恭)하면서까지 자신을 지켜내고 일치단결한다. 그건 성품이나 풍토, 그 이상이다. 국가 존속을 위한 전략적 마인드인데, 희한하게도 우린 아무 생각이 없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위아래가 지리멸렬 바보짓에 매달린다. 그 모양이 어찌 그리 어리석은지 어안이 다 벙벙할 지경이다.

외교장관이 사드 추가배치 반대, 미국MD 불참,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반대 등 이른바 3불(不)을 중국에 덜컥 약속한데 이어 대통령도 그걸 재확인했다. 전략이 없는 임기응변인데, 타이밍도 최악이다. 정상회담을 하러 한국 땅을 밟기 며칠 전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트럼프가 과연 기분 좋을까? 

위에선 저렇지만, 아래선 더 난리다. 좌파 단체들은 트럼프의 1박2일 동선을 따라 반미 시위를 벌인다고 야단이다. 트럼프야야말로 북핵 위기로부터 우릴 구해줄 동맹국의 최고지도자인데 이래도 될까? 이 나라 사람들은 진짜로 죽어봐야 죽은 줄 아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명운이 이번 주에 달렸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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