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국정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다 뒤집어 씌웠다. 아이들이 보는데 압수수색을 당하고 후배 검사한테 15시간이나 조사 받으면서 너무나 원통해하고 억울해 했다."

6일 영장실질심사를 30분 앞두고 4층 건물에서 투신해 치료를 받다가 2시간만에 사망한 고(故)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의 유족들이 빈소에서 절규했던 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에 대한 서울중앙지검의 속도전 수사에 국정원 직원인 변호사에 이어 변창훈 검사마저 자살하자, 검찰 내부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 사이 피의자가 연이어 자살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검사가 수사 중 자살한 것도 처음이다. 피의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자 검찰이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검찰 일각에서는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대검 공안기획관 등 공안검사로 요직을 거친 변 검사를 한참 후배인 공안부 평검사가 조사하고 압수수색부터 조사까지 일일이 보도되도록 한 것이 변 검사에게 지울 수 없는 수치심을 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상부 명령에 따라 국정원에 배치되어 업무를 보았을 뿐인데 현 검찰이 국정원 내부 제보로 수사를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수사를 서둘러 몰아부쳤다는 지적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변 검사 등 현직 검찰 간부들을 조사하면서 당사자가 민감하게 여기는 피의사실을 언론에 누설하고 소환시간을 사전 공개한 것에 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고(故)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는 6일 영장실질심사를 30분 앞두고 4층 건물에서 투신해 치료를 받다가 2시간만에 사망했다./사진=연합뉴스

법조계는 이에 대해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요구로 시작한 서울중앙지검의 하명 수사가 검찰 전체에 독(毒)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더욱이 '국정원 댓글'을 포함한 '적폐청산' 사건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윤석열 검사장이 투신한 변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생(23기)이었고, 영장심사를 앞둔 변 검사가 주변에 '억울하다'고 호소한 것이 알려져 세간의 안타까움이 더해지기도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64명 검사와 8개 부서를 투입해 지난 8월 국정원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팀장 30명을 수사의뢰한 것을 시작으로, MB정부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개입·MB 다스 의혹·세월호 보고서 조작·화이트리스트·국정원 상납 청와대 특활비 40억 등 16개 사건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적폐청산TF 등 각 정부부처별 위원회들이 자체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까지 모두 밝히고, 이를 서울중앙지검이 그대로 받아 검사들을 총동원하다시피 수사하고 있다.

6일 오후8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검 간부들과 함께 변 검사의 빈소에 와 눈물을 흘리며 조문했고 오후11시경까지 빈소를 지켰다.

빈소에는 변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를 비롯해 함께 일했던 검사들 수백 명이 찾았고,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위아래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변 검사의 불행한 일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사상 초유의 현직 검사 자살 등 수사를 서두르다 빚어진 참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기존 수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고 완급조절 등 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의 고민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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