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이용승 감독의 전작 '10분'이 그랬듯 '7호실'도 아픈 영화다. 독립영화에서 상업영화로 맥을 옮긴 만큼 화려해진 배우진에 곳곳에선 신선한 웃음이 튀지만, 여전히 쓰라리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중심에는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감독의 집요한 시선이 있다.

'7호실'은 망해가는 서울의 한 DVD방을 배경으로 한다. DVD방을 다른 세입자에게 넘기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지만 문턱에서 깨지기 일쑤인 두식(신하균)과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DVD방에서 일하는 휴학생 태정(도경수)이 주인공.

"10년 전이 어제 같다"는 말처럼, 두식은 변해가는 세상을 둘러볼 틈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채소 가게 일부터 대리운전, DVD방 운영까지 생계를 위해 온몸을 내던졌으나 쉽지가 않다. 여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고까지 겹쳐 사고 증거를 은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태정은 또 어떤가. 기획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내봐도 기약 없는 꿈.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할까 근무 일지를 촬영해 보관하고, 대출 상환의 달콤한 꿈에 검은 제안까지 받아들인다.


   


두식과 태정 모두 벼랑 끝을 벗어나기 위해 비상식(非常識)을 안고 달려야 하는 소시민. 당장 눈앞의 생존이 급하니 도덕이나 사회적 통념 따위는 미뤄야 한다. 7호실에 운명을 내건 두 사람의 막싸움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겉치레나 멋들어진 액션이 아니라 생을 건 처절한 몸부림…처음엔 웃으며 봤어도 돌이켜보니 짠하다.

차가운 술잔을 털어넣은 듯 씁쓸한 뒷맛이 나중에야 오는 이유는 서스펜스와 코미디의 조화로 극의 이완과 수축을 능숙하게 해낸 연출 덕분일 거다. 현대 사회상을 절정의 긴장감과 함께 그려내는 이용승 감독의 재능은 이미 전작 '10분'에서 증명됐고, 긴장의 순간을 이용해 웃음까지 잡아내니 작품의 메시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회를 비추는 감독의 거울은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공포물이 되지만, 소시민의 비극을 멀리서 보게 하니 웃음이 피식피식 샌다. 그렇게 밀도 높은 블랙코미디가 탄생했다.


   


'7호실'의 무대는 한정적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불그스름하고 그늘진 DVD방의 색채는 대한민국 '을(乙)'들의 빈곤은 물론 긴장감의 표현에도 제격이고, 그 하강 기류에 취한 듯 러닝타임 내내 몽롱하고 아른하다. 7호실을 벗어나는 건 자본주의에서 계급의 역전만큼 허황된 꿈일까. 사건이 거듭되는 공간 속 두식과 태정은 마수에 홀린 듯 우스꽝스레 춤춘다.

두 '을'에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롤러코스터를 태웠던 탓인지 엔딩에 이르러 다소 맥이 빠지는 아쉬움은 있다. 이 영화에서 '10분' 결말만큼의 임팩트를 바란다면 욕심이다. 각자도생하기 바쁜 사회에 대한 환멸을 적나라하게 선보였던 이용승 감독은 이번만큼은 잠깐 물러나기로 했다. 대신 생존을 보장받은 뒤에야 옳고 그름을 짚고 죄책감에 우는 보통 사람을 그려냈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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