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저는 더 이상 제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대학을 마칠 때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는게 아무래도 안전할 것 같아요."

"좌파적 편견에 사로잡힌 교육이 만연합니다. 지난 몇 년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고, 악랄해졌으며, 심지어 전체주의화 됐습니다."

왠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내용들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우파 세력이 내놓는 주장과도 유사해보이고, 전교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하는 발언들과도 비슷해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한국이 아닌 영국의 이야기다. 영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중 하나인 보수 그룹(The Bow Group)은 영국의 보수적 성향을 가진 대학생들 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영국의 대학생들이 대학 교육에서 느끼는 이념적 편향성이나 불균형성을 짚어보기 위한 조사였다. 위에 소개된 발언은 이 조사에 인용된 인터뷰 중 일부이다.

생각보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국민투표로 통과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서 불균형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80%를 넘었고, 그들 중 대부분인 97%는 브렉시트에 대해서 부정적인 내용의 강의를 들었다고 답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교원들도 비슷한 경험들을 제보해 소개되기도 했다. 실제 국민투표에서는 브렉시트 찬성이 더 높게 나온 점을 고려했을 때, 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진 편향성을 띠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조사를 한다면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정확한 수치를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대략적으로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다면 더더욱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것은 필자가 10여년 전 대학을 다니면서 직접 느꼈던 것이기도 하고, 또 필자가 이끌던 단체에 문을 두드리던 수많은 대학생들이 풀어놓던 푸념들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단체와 국회 등에서 실무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체험한 우리 학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어떤 사회적 이슈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수우파의 시각을 대변하고 전달할 학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특히 50대 미만의 젊은 학자를 찾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는 필자뿐만 아니라, '업계'에서 종사하는 다른 이들도 쉽게 공감했던 문제다. 그만큼 학문적 영역에서의 좌파의 헤게모니는 날로 강해지고, 공고해지고, 탄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 교육과 연구의 주도권을 쥔 대학에서 특정 이념적 성향을 띤 강의와 연구 결과들만이 넘쳐난다면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불균형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학문 영역에서 좌파의 목소리와 입지가 커지고, 상대적으로 보수우파적 생각을 가진 이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비단 학문적 차원에서의 불균형성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쏠림을 가속화시키는 매우 위험한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 연구의 주도권을 쥔 대학에서 특정 이념적 성향을 띤 강의와 연구 결과들만이 넘쳐난다면, 자연스럽게 이 사회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이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발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불균형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분명한 현상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별다른 위기의식이나 우려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초중고 공교육 영역에서 전교조의 편향적 교육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우려가 있고 또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응도 있었지만,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단순히 '사적 영역', '대학 내부의 문제'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편향성은 분명히 '공적인' 사안에 해당된다. 적잖은 국민 세금이 장학금이나 연구비, 대학 재정 보조 등을 명목으로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공립 대학에서의 편향적 교육 및 연구에 대해서는 더더욱 강도 높은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곳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벌어지는 각종 갑질과 폭력, 노동착취 등은 대학의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특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실제 대학원에서의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일반적인 직장에서의 상사-부하의 관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수직적이며, 교수의 권위에 학생이 도전하거나 대응한다는 것은 학생으로서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한 대학의 특성이 특정 이념의 절대적인 강요와 주입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앞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보우그룹의 벤 해리스-퀴니 의장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영국 대학들은 국민의 세금과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받아오면서, 학생들에게 세상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을 주입해왔다.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은,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진시킬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지적과 우려가 비단 영국만의 문제일까? 눈에는 잘 보이지 않기에, 당장의 시급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의 지적 토양이 어느 한쪽으로 고착화되어 버리면, 그것이 가져올 사회의 퇴보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권력의 남용과 잘못된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학계와 지식인계가 어느 순간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윤주진]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