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박정희의 공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토론
'전태일 평전' 분석 결과 제시하며 "노동운동 확산 위해 '착취' 단어 활용"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류석춘 연세대 교수(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는 11일 경북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연 '박정희의 공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토론에서 과거 한반도에서도 볼셰비키가 휩쓸면서 남북한이 분단된 이후 그의 산업화 정책이 대규모 중산층을 만들어냈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공적을 강조했다.

또 류 교수는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노동자 착취’에 대해 중점적으로 토론했다.

류 교수는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한편에서는 근대화의 아버지라 추앙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친일파 혹은 독재자라 부르며 폄훼한다”며 “하지만 러시아가 볼셰비키 백년을 겪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단지 18년간 권력을 잡아 대한민국을 통치하면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며 최빈국 대한민국을 선진국 턱밑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박정희의 산업화에 기초해 대규모 중산층이 출현하면서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화는 물론 문화나 복지의 영역에서까지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정희의 산업화과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1978 일본어판, 1983 한국어 초판, 2009 신판)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누구라도 조영래의 평전을 읽으면 전태일(1948~1970)과 당시 평화시장 근로자들이 겪은 삶의 조건에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 수 없다”며 어린 전태일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너무나 버거운 데 반해 그를 도와주는 사회적 장치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전태일, 그리고 여공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경공업 노동자들이 엄청난 ‘착취’를 당했다는 인식을 가슴 속 깊이 심어 준다“고 했다.

이어 류 교수는 “그러나 ‘전태일 평전’의 내용을 기초로 전태일의 경력이동 및 임금상승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며 “16살이라는 나이에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가정형편 때문에 직장을 구하러 나온 젊은이에게 당시 사회는 일자리를 주었고, 그로부터 3년만에 월급을 열배나 받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류 교수가 평전을 분석한 것에 따르면, 전태일은 16살이 되던 1964년 봄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을 시작해 만 3년만인 19살이 되던 1967년 봄 ‘재단사’가 되었고, 같은 기간 그의 월급은 15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정확히 10배 올랐다.

또, 평전에서는 전태일이 이로부터 다시 3년 후 1970년이 되면서 재단사 월급 2만3000원을 받은 사실도 밝히고 있다. 류 교수는 “그렇다면 전태일의 월급은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 동안 무려 15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이를 두고 과연 누가 착취라는 말을 꺼낼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 류석춘 연세대 교수(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사진=미디어펜


류 교수는 이어 경제학자 박기성 교수가 전태일 분신 46주기(2016)를 맞이해 자유경제원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을 제시하면서 “전태일의 월급 2만3000원을 12달을 곱해 연봉으로 환산하면 27만6000원이 된다. 1970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8만7000원이었으므로, 연봉 27만6000 원은 당시 일인당 국내총생산의 3.2배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류 교수는 “전태일의 임금상승과 경력이동은 ‘전태일 평전’이 기술하고 있는 당시 평화시장의 일반적 경력이동 패턴과 비교해 매우 빠른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전태일 평전을 보면 당시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시작해 ‘미싱보조’로 승진하는 데 최소 4.5년~최대 6년이 필요하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전태일은 불과 2년만에 모두 올라갔다. 물론 전태일의 아버지가 재단사였다는 가족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류 교수는 “‘전태일 평전’에서 제시된 전태일의 보수는 각각의 직책에 따른 월급일 것이고, 그렇다면 전태일이 아닌 다른 노동자 누구라도 그러한 직책에 따른 보수를 동일하게 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면 평범한 여성 노동자 누구라도 ‘시다’로 일을 시작해 ‘미싱보조’를 거쳐 마침내 ‘미싱사’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최대 6년, 그 기간에 월급은 1500원부터 3000원을 거쳐 7000원으로, 즉 6년 만에 임금이 4.7배 상승함을 알 수 있다”며 “즉 평화시장 노동자는 누구라도 6년 만에 임금이 5배 가까이 상승했다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그렇다면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누구에게도 ‘착취’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없다”며 “‘전태일 평전’을 꼼꼼히 따져 본 결과는 1960년대 봉제산업 노동자의 상황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착취’라는 단어가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인 것이 드러났다”고 결론 내렸다.

류 교수는 “박정희가 이끈 자본주의 시장경제 대한민국은 노동자를 착취하기는커녕 그들을 중산층으로 육성시키며 국가발전의 핵심 역량으로 키워 냈다”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은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를 겪으며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는 1979년 서거한 박정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류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공보다 과를 부각시키는 극단적인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발생한 현상”이라면서 “오늘날의 양극화 책임을 38년 전 세상을 떠난 박정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 지금 정치권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