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다채로운 색깔의 배우들을 한데 모아놓고 판을 까니 제법 구미가 당긴다. 두뇌 싸움을 곁들인 사기꾼 신화도 킬링타임으론 제격이다. 다만 '꾼'을 스타일리시한 범죄오락영화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여느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범람할 뿐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꾼'은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허성태)을 잡기 위해 뭉친 꾼들의 팀플레이를 다룬 작품. 매력적인 사기꾼 황지성(현빈)을 필두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검사 박희수(유지태), 행동대장 고석동(배성우), 지략가 김 과장(안세하), 투자꾼 곽승건(박성웅)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미끼들을 단번에 홀려버리는 춘자(나나)가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도둑들'(2012)로 그리는 '마스터'(2016)'라고 요약할 수 있다. 구성과 그 스토리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비슷한 맥을 걷더라도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거나 구성원들의 매력이 있다면 괜찮다. 관객들도 속고 속이는 치밀한 정보전과 쫀쫀한 액션 신을 보기 위한 범죄물이라는 것을 동의하고 들어서기 마련이다.

다만 영화를 보며 아쉬움이 남는 지점은 독창성에 있다. 범죄오락이 신선하려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강한 한 방을 날리든지, 미치도록 강렬하거나 섹시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 속도감 넘치고 시원시원한 쾌미를 남기는 '꾼'이지만, 이 '한 방'이 없다는 데서 깊이감이 다소 떨어진다.

가령 꾼들이 사기판을 꾸미고 제물들이 걸려드는 과정은 빈약한 긴장감으로 무난하게 흘러간다. 목숨을 걸고 눈알을 굴리고 식은땀이 팽배해야 할 판이 점잖은 연기와 적당한 밀당 몇 번으로 성사되고, 직접 무대에 나서는 황지성을 제외하면 모두가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기만 한다. 꾼들의 활약이 안기는 전율을 시식할 새가 없다.

영화의 맹점이겠으나 '꾼'이 쓰는 트릭에도 문득 치사하게 굴고 싶어진다. 반전에 반전을 기하는 작법은 관객들에게 이미 익숙해졌다. '꾼'은 반전의 끝없는 되새김질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줄 알고 이 작전을 준비했지", "그 작전을 쓸 줄 알고 이 작전을 준비했지", "그 생각도 간파했지"…피로감이 쌓인다. 범죄 스릴러의 클리셰를 비웃는 개그 코너의 도마 위에 스스로 걸어가는 꼴이다.


   


물론 '꾼'만이 갖는 참신함도 있다. 바로 지난해 개봉한 '마스터'의 기시감을 비껴가는 주제의식이다. 사기 친 놈도 나쁘지만 이를 방조하는 이들과 돈·권력에만 혈안이 된 우리 사회의 초상은 또 어떠냐고 외치는 '꾼'은 오락성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는 미덕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깔끔한 수트를 입은 유지태는 그 선한 인상을 또 한 번 서늘하게 만들어 짜릿함을 안기고, 현빈은 젠틀함과 헐렁함을 오가며 종잡을 수 없는 황지성의 매력을 십분 살렸다. 배성우, 안세하, 박성웅, 나나까지 집중력 높은 배우들의 호연은 러닝타임을 지루할 틈 없게 한다. 오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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