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한 북한 병사가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면서 북한의 추격조가 출동, 무려 40여발을 총을 난사하는 상황이 지난 13일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군의 총탄이 JSA 남쪽 20~30m 아래 지역 초소 인근 나무에까지 박힌 것이 발견되는 등 논란이 일자  유엔사는 JSA CCTV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면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게다가 귀순병사 수술 과정에서 JSA에서는 반입이 금지된 AK자동소총 탄알이 발견되면서 당시 우리 측의 무대응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6일로 예정됐던 CCTV 공개는 돌연 연기됐고, 유엔사는 “26초 분량의 영상이 너무 짧아 이 영상을 공개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어 좀 더 긴 영상을 준비하겠다”는 해명을 냈을 뿐이다.

당초 공개될 영상에는 귀순한 북한군이 군용 지프를 타고 MDL 쪽으로 접근한 뒤 차 바퀴가 배수로에 빠지자 내려서 도주하는 장면과 추격조가 그를 향해 조준 사격하는 장면, 귀순자가 MDL을 넘는 장면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개 예정이던 영상에는 북측 추격조가 MDL을 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유엔사 측은 이 부분을 제외한 영상을 공개할 경우 발생할 논란을 우려해 공개 예정시간 직전 발푶를 미뤘고, 다음 공개 일정을 밝히지 않아 무한 연기된 셈이다.

영상 공개가 연기되면서 북한군 추격조가 쏜 총탄의 일부가 MDL 남쪽에 떨어졌거나 추격조 일부가 MDL을 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은 당분간 풀기 어렵게 됐다.

“CCTV 영상에 북한군 추격조 한 명이 MDL 선상에 있는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장 건물의 중간 부분 아래까지 내려온 모습이 찍혔는데 이 추격조는 황급히 북쪽으로 되돌아갔다”고 밝힌 군 소식통의 전언도 확인할 기회가 미뤄졌다.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사진=연합뉴스


JSA는 대치 중인 남북의 최전선이자 회담 장소로서 북한군과 유엔군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경계선이다. 따라서 이 지역을 지키는 병사들은 평화 유지가 주 임무인 만큼 현재 유엔사 교전수칙에 대응사격은 없다. 

처음 JSA에서 이례적으로 귀순하는 병사가 발생하고 북한의 추격조가 40여발을 쏘는 총격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처음 문재인 대통령도 “비조준 경고사격이라도 하는 게 국민이 생각하는 평균적 교전수칙 아니겠나. 교전수칙을 좀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다음날 “우리 국방부가 JSA 교전수칙을 수정할 권한이 없다”며 “유엔사의 권한이어서 한국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이런 가운데 부상당한 귀순자를 구출한 사람이 대대장 신분인 육사 54기 권영환 중령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상황을 판단하고 군을 지휘할 대대장이 부하들 대신 현장에 뛰어든 것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지만 당시 그만큼 상황 판단이 힘들어 본인이 직접 뛰쳐나갔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지난 1976년 8월18일 JSA에서 벌어졌던 도끼만행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당시 우리 측 지역에서 미루나무를 절단하던 한미 장교와 장병들을 향해 북한군이 몽둥이와 도끼를 휘둘렀던 사건으로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하고 한·미군 장병 9명이 부상했다. 북한군이 몽둥이와 도끼로 공격했다는 것은 당시 군인들이 이 지역에서 총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 사건을 계기로 JSA도 다른 비무장지대(DMZ)와 마찬가지로 분리 경비로 전환됐다. 

양측 군인들이 비무장을 원칙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던 것을 막고, 이제는 권총을 휴대하고 있는 JSA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훨씬 더 위험할 것은 자명하다. 또 CCTV 영상과 피탄 흔적이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입증 증거자료가 될 수는 있지만 북한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번 사건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서 또 다른 딜레마를 만들었다.

유엔사 측은 JSA CCTV 영상 공개와 관련해 “언론에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는 보도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영상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 파견을 촉구하고 있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 정전협정 위반 문제를 장기적으로 끌고가는 게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