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한계…문재인 정부 청산과 보복의 정치 이후가 문제
   
▲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런던 템즈강을 밝게 비추는 시계탑 빅벤을 구부정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처칠의 동상은 여전히 영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윈스턴 처칠, 그는 제이차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세계적 영웅일 뿐만 아니라, 독일의 히틀러의 계속되는 공습으로부터 영국의 자존심, 자부심을 지켜낸 정신적 기둥이기도 하다. 지금도 처칠의 정신과 연설은 영국의 위대한 역사로 간직되고 있고, 그 누구도 처칠의 업적과 권위에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영국에 대한 도전이며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항의로 간주된다.

실제 그는 1940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영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1945년 5월에 예정된 총선에서 당연히 그가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할 것으로 점쳐졌다. 당시 처칠 총리의 지지율은 최대 80% 이상에 달할 정도였으며, 78% 이하로 지지율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정치 평론가들이 모두 처칠의 압승을 예상했던 것은 어쩌면 상식적인 것이었다. 위대한 전쟁을 이끈 총리, 그 카리스마와 여론 장악력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힘의 원천이었으며 그 자체로 권위였던 것이다. 처칠은 곧 영국이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고, 보기 좋게 말이다. 1945년 총선에서 애틀리가 이끌던 노동당은 393석이라는 절반에 가까운 의석수를 차지한 반면 처칠의 보수당은 189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의 총선 패배의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학계에서도 수많은 분석과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의 정당 정치에 대한 전략의 미흡, 또는 당시 시대적 조류에 대한 처칠의 부족한 이해 등이 꼽히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한 가지 공통된 해석이 있다. 바로 전쟁 중 영국민이 바라는 리더십과, 전후 영국민이 바라던 리더십이 달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이차세계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위기 속에서는 처칠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을지 몰라도, 전후 평화로운 상태에서의 수습과 복구, 전쟁에 지친 영국 국민들의 삶의 회복에 있어서는 처칠의 리더십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 문재인 정부가 과연 '청산과 보복의 리더십'을 넘어 국가적 비전과 미래를 위한 리더십까지 국민들로부터 승인 받았는지는 다소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전임정부와의 전쟁'이 끝나고 나면 과연 이 정부가 설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민심은 그만큼 뜨거우면서도 차갑다. 열정적이면서도 냉정하고, 한없이 넓을 것 같으면서도 또 비좁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매번 무엇이 정답인지 기어코 찾아가는 속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 위대한 처칠마저도, 앞으로 무엇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정의 옳고 그름과는 관계없이 민심은 늘 최선을 찾아가려는 본능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한 민심의 본질이 바로 1945년 처칠의 총선 패배를 설명할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본인이 집무를 하는 청와대에 촛불집회 그림을 걸었다고 한다. 본인의 집권 정당성을 이른바 '촛불 혁명'에 두고 있는 그로서는 어쩌면 자랑스럽고 뿌듯한 결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각종 여론조사에서 7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니, 그로서는 촛불집회 그림을 청와대에 거는 것이 당위적 역사적 명령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촛불을 무려 새 헌법 전문에 새기자는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그리고 그런 자신감을 여과 없이 보여주듯, 이 정부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지난 5월 집권 이후 내내 조사, 수사의뢰, 그리고 청산과 같은 단어로 이 국정은 그려지고 있다. 전임 정부의 요직에 있던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 수감되고, 시대의 변천과 함께 관행처럼 내려져 오던 것들을 느닷없이 대단한 범죄인 마냥 몰아붙이기도 한다. 과거 조선시대에서나 쓰이던 '사화'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칼날은 숨 가쁘게 여기저기를 겨냥하고 있다.

처칠의 쓰디쓴 패배를 생각하면 오늘날 현 정부의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질주는 다소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까. 무려 '세계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영국의 국가적 존립을 지켜낸 리더십마저도 민심의 새로운 요구 앞에서는 맥없이 정권을 내줘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부가 과연 '청산과 보복의 리더십'을 넘어 국가적 비전과 미래를 위한 리더십까지 국민들로부터 승인 받았는지는 다소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위대한 처칠의 전체주의 독재와의 세계 전쟁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이 정부의 '전임정부와의 전쟁'이 끝나고 나면 과연 이 정부가 설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들 표현대로 어느 정도의 '청산'이 끝나고 나면 국민들은 새로운 리더십을 택할 수 있다. 그것이 처칠의 패배가 말해주는 것이고 또 민심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70% 이상의 여론조사 수치가 결코 설명해주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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