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 영화 '기억의 밤'에서 기억을 잃고 변한 형 유석 역 맡아
"장항준 감독, 9년 만의 복귀작…첫 미팅 때 확신 느낀 뒤 걱정 사라져"
"과거 대본에 갇혀 연기했다면 지금은 책임감 갖고 외적 상황에도 관심"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스릴러 베이비' 김무열. 데뷔 16년 차지만 스릴러 시도는 처음이라 걱정이라고 했다.

기우였다. 맞춤 정장처럼 멀끔한 얼굴은 선과 악을 오가며 극을 격렬하게 흔들었고, 안면근육의 작은 떨림과 몸짓만으로 러닝타임의 전반을 지배했다. 장항준 감독은 그를 보고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했다.


   
▲ '기억의 밤'의 배우 김무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영화사하늘


지난 27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기억의 밤'의 주역 김무열을 만났다. 장항준 감독의 강렬한 코멘트와 언론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연기에 대한 호평에도 그는 "스스로는 연기적으로 만족을 못 하는 편이다. 부족했다"며 자세를 낮췄다. 

"캐릭터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장점이라면 잘생겼다기보단 친근하고, 개성이 없는 얼굴이라는 것이라고 할까요. 외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 그리고 가능성을 봤다는 것에 대해선 배우로서 기뻐요."

'기억의 밤'은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 진석(강하늘)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담은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최종병기 활', '은교', '연평해전, '대립군' 등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아름다운 나의 신부', 뮤지컬 '쓰릴 미'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제법 선 굵은 배우로 자리매김한 김무열이지만, 처음 시도하는 스릴러인 만큼 촬영에 앞서 걱정이 컸다.

"평소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고, 스릴러를 활자로 경험해본 적은 없거든요. 이번 작품 때문에 공부해봤는데 스릴러란 장르를 국한하기 어렵고, 기존의 영화들은 장르라기보단 스릴러의 장치를 채용하다 보니 장르의 범위가 애매해지긴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유석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감정의 스펙트럼과 영화의 재미에 끌려 출연을 결정했다. "스릴러의 장치를 잘 활용해 많은 분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 긴장감이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라고 영화의 완성도를 자신한 김무열은 9년 만에 복귀한 장항준 감독과의 작업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동안 감독님께서 보여줬던 결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낯섦이 컸어요. 다만 오래 쉰 분들은 스스로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고집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어요. 첫 미팅 때 느꼈던 확신이 맞았죠. 감독님은 배우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려고 하셨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선 과감히 수정을 하셨어요. 확신도 충분하셨고. 그래서 작업하는 내내 한치의 걱정 없이 즐겁게 했어요. 또 그런 환경이다 보니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 '기억의 밤'의 배우 김무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영화사하늘


극 중 형제로 등장하는 강하늘은 데뷔작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부터 함께했던 터라 친분이 깊다. 김무열은 19세 때 강하늘에 대해 "처음에 하늘이를 봤을 땐 이 순수함과 맑음은 '어린 치기다', '가식이다'라고 오해 아닌 오해도 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면서 강하늘이 가진 순수함을 인정하게 됐다"며 웃었다. 

"그런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 만났던 형이고, 혹시나 연기하는데 불편해하거나 나를 어려워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러다 보니 배려를 많이 하려 하고 눈치를 많이 봤는데, 강하늘도 그러는 거예요. 서로 어려워하는 건 아니고 서로를 아는 거죠. 작품을 선택하는 성향이나 배우로서 걷는 길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작품, 캐릭터,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정말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됐어요. 그래서 그 낯섦은 금방 사그라들었죠."

지난 9월 영화계 동료들, 수많은 팬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입대한 강하늘. 김무열은 "그 또래에선 독보적인 느낌을 가진 배우라 돌아와서도 금세 활약할 것 같다. 쉬지도 않고 많이 쏟아냈는데, 쉬어가는 시간도 강하늘에게 좋게 작용할 것 같다"고 군 생활을 하는 강하늘에게 덕담을 보냈다. 적당히 놀 줄도 알면 좋을 텐데, 입대 전 마지막 시간까지 촬영장을 기웃거리던 강하늘의 모습이 선하단다.

"하늘이 입대 5일 전에 같이 술을 먹었거든요. '밤새워서 먹겠지' 했는데 12시에 집에 간대요. 여자 만나러 가냐고 했더니 진짜 집에 간다더라고요. '너 미쳤니?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라고 했죠. 홍대 클럽이라도 가서 놀라고 하니까 '집에 가서 자려고요. 피곤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입대 이틀 전에는 '기억의 밤' 예고편을 촬영했는데, 새벽 1시에 촬영이 끝났어요. 제 촬영이 늦게 끝났는데 하늘이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빨리 가서 놀라고 하니까 집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너 모레 입대야'라고 하니까 또 그냥 집에 간대요. 그래서 군대 가면 후회한다고 했는데, 궁금해요. 안 논 게 후회될지 안 될지.(웃음)"


   
▲ '기억의 밤'의 배우 김무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영화사하늘

 
치밀하게 짜인 전개와 반전이 이 영화의 큰 쾌감인 만큼 김무열의 '기억의 밤' 이야기를 자세히 담을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유석의 아픔이 살갗으로 와닿았다"는 그는 "어느 때보다 머리를 써서 작업했는데, 홍보를 하다 보면 (스포일러 때문에) 딜레마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신 김무열이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언급하며 눈을 빛내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그 들뜸이 흐뭇했다.

"전 '덩케르크' 같은 작품이 너무 좋아요. 분명하고 쉽고 확실한 이야기에 시차를 주고 공간감을 주고… 놀란식 연출의 방점을 찍은 작품이 아닌가 해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재밌게 봤어요. 여러 인물이 나오는데 관객이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어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거든요. 아니, 그 자체가 없죠. 입장만 있을 뿐이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그런 상황이 부딪혀서 제3자가 몰입할 수 있게 해줘요. 그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연출과 내러티브 등에 있어서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 부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김무열의 바람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맛보고픈 관객들의 욕구에 공감하는 김무열은 결코 연기에만 능한 기술자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배우가 있고, 생각을 전하고 싶은 배우가 있잖아요. 가까운 선배도 제게 '넌 생각을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그게 좋은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해요. 큰 그림을 본다고 좋게 얘기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세한 걸 놓치고 가게 되거든요. 큰 그림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할 때도 있고요."


   
▲ '기억의 밤'의 배우 김무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영화사하늘

2002년 뮤지컬 '짱따'로 데뷔한 뒤 역할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왔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타이틀롤을 꿰찬 만큼 불어난 책임감. 연기를 대하는 방식과 자세도 확연히 바뀌었다.

"제가 걸어온 길에도 나름의 어떤 높낮이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에 비하면 공연 쪽에서 일찍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요. 그 관심을 토대로 매체로 올 수 있었지만, 그런 게 없었을 땐 모든 오디션에서 떨어졌어요. 그런데도 그냥 좋아서 했어요. 또 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치열하게 저를 몰아붙이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제 자신과 주변, 배우의 외적인 것들에 대해 신경을 두려 하죠. 그건 배우로서의 책임감과 관련이 있는데… 제가 하는 일은 어찌 됐건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거고, 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준단 말이죠. 제가 관객들에게 하나의 작품, 인물로 다가가려면 사람을 이해해야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죠. 옛날에는 대본에 갇혀서, 그 상황 속에서 캐릭터에 대해 생각했다면 지금은 직접적인 것들을 둘러보는 편이에요. 제 살갗에 닿는 느낌으로 연기를 하려고 합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연기를 할 때도 책임감과 무게감이 느껴지고 제게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작품, 공연을 찾아주는 팬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 같은 책임감을 느낀단다. 고등학생 소녀가 대학생이 되고, 어느덧 취직을 해 자신의 무대를 또다시 찾는 속에서 "저라는 사람이 그 사람의 인생에 닿아있고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책임감을 느꼈다. 그 팬이 그렇게 기억에 남더라"라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일은 배우와 관객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무열. '쓰릴 미', '대립군', '머니백', '기억의 밤'에 이어 '나쁜 녀석들2'까지 올해를 누구보다 바쁘고 풍성하게 보냈지만 여전히 '인랑'의 남은 촬영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고, 한편으로 또 땀방울이 맺히는 무대 위를 그리워한다. 섣불리 뽐내진 않지만 무턱대고 열정을 숨기지 않는 워커홀릭의 모습은 김무열이라는 배우의 가장 큰 미덕이었다.

"올 한 해는 특히 3,4분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시기를 보냈어요. 전 열정의 정해진 총량은 없다고 생각하고, 매 작품에 열정을 쏟아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아쉬움이야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그것만으로 긍정적인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 '기억의 밤'의 배우 김무열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영화사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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