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양산 법권위만 훼손, 준수율낮은 규제부서 책임묻거나, 업무박탈해야

   
▲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법과 규칙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은 손해를 보고 요령좋고 법을 적당히 어기는 사람들이 더 잘된다는 믿음이 퍼져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믿음 뒤에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규제풍토가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부 규제가 현실 적용가능성이나 집행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명분과 당위론에 근거하여 도입되었다. 그 결과 많은 규제들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기준과 절차를 요구하고 법과 현실이 따로 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안전, 환경, 위생, 건축 관련 분야에 이런 규제들이 많다.

이런 규제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규제를 받는 사람이나 법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장에서 집행이 절충되거나 보류된다. 그 결과 규제가 도입된 공익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사실상 무규제 상태를 초래한다. 이 과정에서 뇌물과 봐주기가 오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안전사고나 환경문제는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도 이미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선박안전 규제가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다.

안 지켜지는 규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다. 안 지켜지는 규제는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왜냐하면 법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손해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갓길 불법 추월을 하는 차들을 보면서 정직한 운전자들이 느끼는 고통을 생각해보라. 좌회전 차선에서 한 없이 신호를 기다리는데 계속 끼어드는 차 때문에 차례를 지키는 운전자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이것이 과연 질서의식이 결여된 국민의식 탓일까. 경찰은 끼어들면 안돼요 표시 한 장 달라 붙여 놓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정직한 국민이 고통스럽고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이 제대로 된 법집행인가. 눈에 안보여서 그렇지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만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규제집행 풍토 아래서는 어쩌다가 단속을 나가도 걸린 사람이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억울하거나 재수 없다는 생각부터 하게 될 것이다. 안 지켜지는 규제는 결국 국민의 법 감정과 법 권위만 훼손하게 된다.그렇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만들 때 우선 이런 제도와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고 지켜질 수 있을지부터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과거에도 늘 그랬듯이 이번 세월호 사고 후에도 많은 규제가 신설 강화될 것이다. 이미 국회에 선박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여러 개의 법안이 제출되었다.

   
▲ 세월호 참사는 있는 규제를 제대로 안지킨데서 비롯됐다. 공무원들은 비현실적인 규제나 정책을 양산할 게 아니라, 있는 규제는 제대로 지켜지게 하는데 힘써야 한다. 규제 준수율이 낮은 부서에 대해선 이를 높이도록의무화하고, 그래도 미흡할 경우 규제권을 박탈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해경과 군잠수요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사고 후 무더기로 신설 강화되는 규제는 비등한 여론과 국민정서로 인해 엄하고 까다로운 규제들이 대부분이다. 새로 도입되는 엄한 규정과 기준들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는지,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마구 도입 되고 있다. 이번 사고도 그렇지만 이미 존재하는 규제조차 안 지켜지는 상황에서 더 엄하고 강한 규제를 무더기로 도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나마 기존 규제조차 희석시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안지켜지는 규제가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애당초 제대로 집행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무조건 규제부터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규제들은 반드시 지속적인 적발과 처벌이 있어야만 지켜진다. 법과 규제를 만드는 것만으로 정책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규제를 만들고 이를 집행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책임은 바로 그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에게 있는 것이다. 안 지켜지는 규제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에게 있는 것이다.

규제나 제도를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서 확실하게 집행해야 한다. 집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캠페인성 규제를 양산하면서 국민의 낮은 준법정신과 의식을 탓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따라서 준수율이 낮은 규제를 가지고 있는 부서의 규제는 일정 기간 내에 준수율을 일정 수준으로 높이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 아니면 그런 규제는 아예 없애거나 그 부서의 업무에서 박탈해야 한다.

   
▲ 박근혜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가 희생자와 실종자 유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규제를 담당하는 부서는 규제를 만들 때 제대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검토하게 될 것이고 준수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의 규제문화가 진작 이랬다면 있는 규제와 절차가 깡그리 무시된 세월호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규제를 만들거나, 제대로 집행할 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규제만 잔뜩 만들어 놓고 법을 안지키는 국민 탓만 하는 공무원들의 규제만능주의와 관료주의를 혁파해야 한다. 규제를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규제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집행해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공무원의 책임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에 게재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