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국가책임 강조…국정 시스템에 또다른 혼란 우려
2008년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사건

2008년 3월 경기도 일산에서 초등학생 납치미수사전이 발생했다. 경찰은 당초 이 사건을 납치가 아닌 단순폭행 사건으로 상부에 보고해 늑장·축소 수사라는 지탄을 받았다. 무차별적인 폭행장면이 담긴 CCTV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시민들은 분노했고, 성질 급한 이명박 대통령은 일산경찰서를 찾았다.

현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은 안일한 경찰의 대처를 질책하고 속히 용의자를 검거할 것을 지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초등학생 납치미수사건에 미온적 대처로 물의를 빚은 경기 일산경찰서를 찾아 "일선 경찰이 너무 해이해져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통령이 경찰서를 방문한 뒤 6시간 만에 범인이 잡히자 대통령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많은 누리꾼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해 "너무너무 멋져요"라고 하면서 격려글 달기 행진을 이어갔다.

당시에 뜻있는 사람들은 이걸 보고 "큰일 났구나!"라고 여겼다. 국정은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리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일선 경찰서를 찾아가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경찰에게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중에 여러 현장에 나타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챙기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곤 했는데, 나중에 이 대통령의 부지런함은 큰 감동을 주지 못했고 그의 말은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됐다.

   
▲ 5일 오후 인천시 서구 북항 관공선부두에 정박한 급유선 명진15호에서 중부지방해양경찰청과 인천해양경찰서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명진15호 선장 전모(37)씨와 갑판원 김모(46)씨는 3일 오전 6시 5분께 인천시 영흥도 남서방 1마일 해상에서 9.77t급 낚싯배 선창1호를 들이받아 낚시꾼 등 15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12월 영흥도 낚시어선 전복

2017년 12월 3일 오전 선창1호는 전날 오전 영흥면 영흥대교 인근 해상에서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됐다. 이 사고로 승선원 22명 중 15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실종된 2명은 5일 모두 숨진채 발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전원이 일어나 인천 낚싯배 전복사고 희생자에 대한 묵념을 제안하고 묵념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 책임은 무한 책임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입니다"라고 강조햇다. 대통령 지지자들은 "투표 한 번 제대로 하고 몇 번을 대우받는지 모르겠다"고 감동의 찬사를 올렸다.

사고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고 발생 사흘만인 2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 회의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9년 6월 30일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지자 곧바로 다음날 합동분향소를 찾아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고 유족들에게 사과한 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93년 10월 10일 서해 훼리호 참사가 터지자 발생 8일 만에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새 정부 출범 이래 대형안전사고가 수차례 발생하는 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제대로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과 죄송 책임의식'등을 얘기했지만, '국가책임'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책임'이란 단어의 무게를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낚시 인구의 안전관리에 관해 제도와 시스템에서 개선하거나 보완할 점이 없는지 점검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자료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 묵념과 국가책임의 의미

청와대 묵념에 대해 당장 나오는 의문은 '묵념의 기준(커트라인)이 무엇일까'라는 반응이다. 몇 명이 사망하면 청와대에서 묵념을 올리는가 여부다. 사람이 살면서 교통사고 화재 천재지변 등 사고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숙명적으로 일어난다. 일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만  2016년에 3904명으로 하루에 11명 꼴이다. 그나마 4000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67년만에 처음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 모두 각각의 사연이 있는데, 한 사람의 생명은 가볍고 10명이 넘으면 무거운가?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인명 사상자의 숫자를 놓고 경중을 따지기는 참으로 어려운 철학적 질문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책임'이라고 할 경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도의적 책임을 표명한 것'이라고 하면 대통령 발언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청와대는 사고 후 위기관리센터를 가동했는데, 낚싯배 전복이 과연 위기센터가동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위기센터는 대형 천재지변이나 북한의 도발 등 큰 사건에만 가동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의미인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책임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건의 수습이 끝나면 늘어나는 낚시 인구의 안전 관리에 대해 제도와 시스템에서 개선하거나 보완할 점이 없는지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되면 당장 낚싯배에 대한 안전기준이 대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영세한 어민들은 안전기준이 미비한 작은 배로 낚시꾼들을 끌어들이는데, 안전기준이 강화되면 손님을 끌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하거나 아니면 법을 어기고 영업을 해야한다. 생계유지냐 범법이냐의 선택 기로에 놓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안전기준 강화는 대형 낚싯배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형 낚싯배에게는 생업을 방해하는 강력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낚시 인구는 골프 인구를 넘어 대한민국 최대의 여가활동이 된 상태인데, 안전규정이 강화되면 그게 비용으로 전가돼 앞으로 낚싯배 타기가 더욱 비싸질지 모른다. 돈없는 서민들은 낚시 즐기기도 더욱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괜한 기우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정은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 리더는 리더 자리에서, 팔로워는 팔로워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게 옳다.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리더가 챙기면 어느 순간 국정은 뒤엉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병길문우천(丙吉問牛喘)>이란 고사를 한번 되새겨보면 어떨까 싶다. 지도자는 일소일노(一笑一怒)에 신중해야함을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병길문우천(丙吉問牛喘)-재상은 재상 일을, 경찰은 경찰 일을

중국 한나라의 재상인 병길(丙吉)은 창고지기에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성품이 소탈하고 성격이 원만했다. 하루는 병길이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는데, 술에 취한 마부가 명길의 마차에 오물을 통했다. 사람들이 그를 고발하려고 하자 병길은 "취중에 저지른 작은 잘못은 용서하게. 기껏해야 차를 더렵혔을 뿐인데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게"라고 달랬다.

다른 날 그가 외출을 했다. 그가 탄 마차가 지나가는데 한 무리가 모여서 패싸움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피를 흘리는 사람 등 상자들도 보였다. 그런데도 병길은 아무것도 종자들에게 묻지 않고 지나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달구지를 끌고 오는 농부가 나타나자 마차를 멈추게 햇다. 소를 보니 혀를 늘어뜨리고 침을 줄줄 흘렸기 때문이다. 병길은  농부에게 "지금 이 소가 어데서 얼마나 멀리 걸어 왔는가"고 물었다. 농부가 "아직 여름 전인데 땀만 흘리고 영 맥을 못춘다"고 답하자 병길은 갑자기 "마차를 돌려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지시했다.

종자들은 재상의 두 가지 행위를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재상 어른, 물어야 할 것은 묻지 않으시고 묻지 않아도 될 것은 물으신 뜻이 무엇이옵니까?"

그러자 병길이 대답했다. "아닐세. 그렇지 않네. 도읍의 치안을 지키며 소란을 막는 것은 지역의 관리들이 할 일일세. 내가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네. 그런데 여름철이 오기전인 봄철에 소가 혀를 내어 더위를 식히려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 기후의 조짐일수 있고, 만일 그렇다면 올 여름 농사가 걱정이 되고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를 일인 것이야. 그래서 재상인 나는 큰 입장에서 급히 대책을 생각해야 하네." /김필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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