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다민족화는 세계적 추세…다양성에 대한 이해 구축 필요
   
▲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런던은 더 이상 영국민들만의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실제 런던의 어느 거리를 가든, 우리가 흔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영국인'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백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부르카를 입은 아랍계 여성부터, 레게 머리를 길게 땋은 흑인 청년, 그리고 특히 런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도계 사람들까지. 물론 그들의 국적이 영국일 가능성도 꽤 크고, 영국인에 대한 일종의 '표준'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처럼 인식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백인의 나라의 백인의 도시'와는, 이제 런던은 조금 거리가 멀어졌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숫자도 이 풍경을 정확히 대변해준다. 약 850만 가량 되는 런던 인구 중 약 36%의 인구가 외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민자들의 자녀인 경우까지 합친다면 런던 인구의 다양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다. 이 비중은 지난 20년 동안 급격한 속도로 증가해왔으며, 이미 런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다양성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런던의 시장인 사디크 칸이 파키스탄계 영국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러한 변화는 쉽게 설명될 수 있겠다.

그런 변화라는 것이 가져온 긍정적 측면은 분명하고 가시적이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이민자들과 외국인들이 경제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2016년 기준으로 영국 전체 일자리의 11%가 비영국인의 것이며 특히 도소매, 호텔업, 식음료 분야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비중은 14%에 달한다. 금융이나 일반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에도 12%를 차지한다고 하니, 고소득 직종에서도 외국인들의 진출이 매우 활발해 보인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선진국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외국인·이민자들에 의한 노동력 제공은 경제 활성화와 세수, 그리고 복지 유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선진국 청년들이 기피하는 직종을 외국계 근로자가 대신해서 경제구조를 유지시켜준다는 불편한 진실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기존에 영국인, 런더너(Londoner)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전체 거시적인 차원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 가느냐와, 실제 나와 내 가족이 매일매일 체감하고 경험하는 것들 간의 괴리는 분명히 외국인 근로자, 이민자, 개방 등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출산·고령화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다양성에 대해 대비하고 있으며 다인종, 다민족 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선진국의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서로 양보해주고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된 거리, 조금만 옷깃이 스쳐도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는 친절한 사람들 등등.

하지만 최근 유럽의 주요 도시를 다녀 본 사람들, 특히 조금 긴 시간을 갖고 체류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지 다소 의문이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화려한 도심은 여전히 그대로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당기고 있지만 분명 그 도시의 속사정은 크게 변하고 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중,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전화기를 들고 매우 시끄럽게 통화를 하는 경우 그 승객이 누구인지 확인하면 십중팔구는 외국인이거나 이민자다. 주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거나, 영어를 쓰더라도 모국어의 강한 억양과 발음이 묻어져 나온다. 물론 영국에서 태어나서 오래 살아온 이들 중에도 그런 '비매너'가 존재하지만, 확률적으로 외국인·이민자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필자와 주변인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옳고 그름, 우와 열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문화적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기존에 영국민들이 나름대로 만들어 온 문화와 질서가 분명 외부로부터의 인적 유입, 그리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충격과 변화에 의해서 흔들리고 깨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에 대한 개방이 가져오는 긍정적 측면도 분명히 있겠지만, 이로 인해 영국민들, 특히 주요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느낄 놀라운 속도의 변화와 기존 질서의 균열은 상당한 피로감과 이질감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지난 브렉시트 찬반투표에서 모든 예상과 분석을 깨고, 다수가 찬성에 표를 던진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유럽에서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들이 급격하게 성장해서 급기야 집권까지 넘보게 된 원인이 아닐까.

문제는 이것이 비단 유럽만의 사정이겠냐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공통된 문제 앞에서 대한민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인에 대한 개방뿐이다. 엄청난 기술적 혁신으로 로봇이 대부분의 생산 및 서비스 노동력을 대체해 불균형한 세대 구성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패턴 속에서 서울은 아마도 언젠가 런던처럼 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런더너들이 느끼는 피로감, 이질감, 그리고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는 선악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이 그러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 이러한 변화는 이미 서울의 몇몇 지역이나 수도권의 일부 도시에서 현실로 굳혀진지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다양성에 대해 대비하고 있으며 다인종, 다민족 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이미 제국주의 시대부터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다양성에 익숙해져왔고, 나름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가기 위해 노력하는 런던마저도 문명과 문명의 충돌, 문화와 문화의 갈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다양성에 대한 고민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급격한 이민자의 증가가 가져다 줄 충격은 더 클 것이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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