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산경쟁력 약화 고용감소 초래 않도록 종합적인 검토 필요
   
▲ 이동응 경총 전무
근로시간은 왜 단축할까? 크게 보면 두가지 목표가 있다.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두가지 목표는 동시에 달성되기는 어렵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려면 줄어드는 근로시간만큼 소득이 줄어야 하고 그래야 새로운 인력을 더 채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소득이 줄게 되면 비록 일하는 시간은 짧아지지만 삶의 질이 반드시 높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줄어드는 시간만큼 소득이 줄지 않으면 기업은 일자리를 새로 만들 여력이 전혀 없게 된다.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창출, 두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겠다는 말은 그다지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어느 중소기업인 사장은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 회사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직원들의 소득이 줄어 불만이 커지고, 줄어든 근로시간을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인력을 더 뽑으려 했으나 오려는 사람이 없고, 결국 생산량을 줄이는 결과만 초래됩니다. 근로시간 단축의 목표가 생산량 감축과 근로자 소득 저하가 됩니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업들에게는 인력 부족,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도 큰 문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오랫동안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만큼 산업현장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11월 정기국회에서 환노위 여야 간사들은 기업규모별로 3단계로 나누어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일근로 중복할증과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가 그나마도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여당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기업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안이 노동계의 반대로 무산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이다.
 
여야 간사 합의안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격한 소득감소가 우려되는 근로자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모두에게 부담을 줄 소지가 크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되어 사실상 더 큰 문제들이 있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있어 급변하고 있는 경제·사회상에 대한 고려가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제도개선 문제는 단순히 근로제공 시간을 단축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근로제공 방식의 다양화에 따른 유연화를 전제로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생산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고용감소라는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도록 경제,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산업사회를 고려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의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진=청와대

현행 근로시간제도는 사업장에 집합해 일정시간 동안 근로를 제공하는 제조업 생산공정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전제로 한 규정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은 매우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규제 일변도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근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로제공의 질이나 결과가 근로계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업장별 특성, 근로자 개인별 근로제공 방법의 특색을 반영하여 당사자의 자율적 규율이 가능하도록 유연성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현장 변화에 부응하는 근로시간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을 높일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성수기와 비성수기 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그리고, 재량근로시간제 역시 지금보다 요건을 완화하고 기획, 영업 등 사무직처럼 업무수행방법이 근로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직종으로 그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NETFLIX나 Google 직원들에게 근로시간이 얼마냐고 묻는 것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 금지 입법을 추진하는 포괄임금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장기적으로는 실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해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무·관리·전문직의 경우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근로시간 산정에 애로를 겪는다.
 
또한 업종 가운데는 특성상 특정 기간에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업종의 경우 안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대정비작업을 실시하도록 관련 법령에서 의무화 하고 있다. 대정비작업은 수십일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하는데 이 기간에는 일시적으로 주 52시간 초과근로가 필연적이다.
 
소위 turn-around라고 하는 대규모 장치산업의 대정비 작업과 같은 경우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를 인정할 필요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근무형태 다양화 추세에 맞게 노사 당사자가 근로시간을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생산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고용감소라는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도록 경제,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산업사회를 고려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의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동응 경총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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