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 인정-평화협정 체결은 북의 전략목표
한-미도 그쪽 접근중…안보환경 송두리째 전환
   
▲ 조우석 언론인
지난주 북핵 게임에서 '나쁜 놈' 북한과, '착한 나라' 미국,  '이상한 놈' 한국 사이의 기이한 삼각구도를 분석한 바 있다. 이른바 '놈·놈·놈'의 구조에서 한국이 왜 혈맹 미국과 등진 채 '나쁜 놈' 북한 편을 드는 '이상한 놈'으로 분류되지도 설명했다. 문제는 그렇게 철없이 놀던 한국이 최악의 경우에 빠져들 위험성인데, 그게 미북평화협정 체결이다.

즉 평화협정 체결시 지구상에서 사라진 1970년대 월남처럼 대한민국이 패망할 가능성이 크게 높은데, 유동적인 북핵 게임이 그런 뜻밖의 결론으로 이어질 것을 많은 이가 걱정한다. 기우가 아니다. 한·미·북 사이에 그쪽으로 가려는 강력한 기류가 존재한다는 걸 부인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선 북한. 최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은 방북 러시아 대표단에게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있다. 단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협상한다"고 언급했다. 두어 달 전 외무상 이용호도 6자 회담엔 관심 없으며, 미와의 직접 대화를 원한다고 했다. 핵 지위 인정, 평화협정 체결이야말로 저들의 변함없는 전략목표인데, 어느덧 미국도 그쪽으로 간다.

   
▲ 키신저 빅딜론과 중국 쌍중단은 닮은꼴이다. 즉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이 북한 정권 붕괴를 책임지고,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결단해 둘을 맞바꾸자는 그림이다. 이는 한반도 안보환경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사뭇 위협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키신저 빅딜론과 중국 쌍중단은 닮은꼴

얼마 전 해프닝으로 끝난 미 틸러슨 국무장관의 "무조건 대화" 발언도 그런 기류를 반영하는데, 백악관의 공식 부인에도 북한 핵 보유란 현상 인정하자는 파가 존재한다. 키신저의 미중 빅딜론도 그 맥락이다. 그건 한반도 안보환경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사뭇 위협적이다.

즉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이 북한 정권 붕괴를 책임지고,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결단해 둘을 맞바꾸자는 그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통하는 스티브 배넌도 그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우리로선 얼떨결에 당할 수도 있는 상황전개가 걱정이다. 어느듯 중국-러시아도 북핵 해법으로 쌍중단을 들고 나오는데, 키신저 빅딜론과 크게 보아 닮은꼴이다.

북핵-미사일 도발과 한미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이 그것인데, 당초 한중정상회담에서 그게 거론될 걸로 관측됐으나 불발되고 4대 원칙이 등장했다. 중요한 건 한반도 안보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을 미북 평화협정 체결, 미군 지위 변경은 어느 새 대세몰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의 공식 입장은 쌍중단 거부다. 하지만 유독 문재인 정부의 한국이 그쪽에 한 다리를 걸친 채 전에 없던 흐름을 만드는 중이다. 일테면 여권 실세 이해찬-송영길 의원 등이 북한 비핵화와 미북 평화협정 체결 동시 추진을 흘리고 다닌다. 그 전에 문정인 특보야말로 평화협정에 목매지만 평화협정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듯한 착시현상도 있다.

지난 1~2년 이걸 어젠더로 만든 매체가 바로 뜻밖에도 홍석현의 중앙일보였다. 그 신문이 지난해 이맘 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매달리기 전 몰입했던 게 바로 평화협정 문제였던 걸 우린 기억한다. 김영희-정운찬 등 사내외 칼럼니스트를 총동원해 그 짓을 반복했다.

   
▲ 새 정부 출범 이후 분위기가 바뀐 올 들어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는 슬로건 아래 좌익들이 평화협정 체결 지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북핵 위기가 평화협정 체결로 넘어갈 경우,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건 삽시간이다. 그건 북한 김정은도 바라는 바다. /사진=연합뉴스

중앙일보가 총대 맨 평화협정

지금도 기억나는 게 종종 대북 굴종의 논조를 펴온 칼럼니스트 김영희의 황당한 글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 1일 칼럼 '사드를 포기하자'에서 좌익의 가짜 평화론을 개진해 우릴 놀라게 했다. "방사능과 독가스에 뒤덮인 폐허 위에 이루는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삼류 궤변이다. 실은 그 전인 2월 5일자 칼럼에서 이미 마각을 드러냈다.

제목도 '핵 동결과 평화협정의 교환이 답이다'로 되어있다. 본격적인 평화협정 체결 천명의 목소리는 이 나라 보수언론으론 처음이었다. 대한민국이 죽을 꾀를 내는 무시무시한 헛소리였지만, 누구 하나 큰 이의제기 없이 대충 넘어갔다. 한국의 허술한 지식상황이 그 지경이다.

그러더니 새 정부 출범 이후 분위기가 바뀐 올 들어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는 슬로건 아래 좌익들이 평화협정 체결 지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어어 하는 새 북핵 위기가 평화협정 체결로 넘어갈 경우,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건 삽시간이다.

왜 그런가? 1953년 7월 체결된 현행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근거가 사라진다. 북한과 좌익들의 오랜 꿈인 주한미군 철수가 자동 시행되는 것이다. 실은 이걸 노리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왔다고 해도 된다. 이래저래 한국으로선 악몽 중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내용도 그렇다.

엉거주춤한 핵 동결에 그칠 가능성 때문이다. 북미지역을 때릴 ICBM의 폐기 수준에 미국이 만족할 경우 한국인 5000만 명이 핵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엔 전혀 변화가 없다. 외려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종북의 나라로 전락하는 국면이 열린다. 북한은 핵을 터트리지 않고도 이 나라의 정치에서 경제까지 완전히 삼킬 수 있는 찬스를 잡는 셈이다.

그래저래 1970년대 월남처럼 지금의 한국이 패망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자유 월남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훨씬 더 불리한 조건이라는 걸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물다. 북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그 문제를 곧 한 번 더 다룬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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