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학파 시장규제와 사법 유린 심화시켜, 국회의 대량규제도 자유 재산의 신성함 무시해

   
▲ 민경국 강원대교수
지난 4월 25일은 제51회 ‘법의 날’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법이 얼마나 존엄하고 법을 지키는 준법정신이 왜 중요한가를 되새기면서 시민들에게 법의 존엄과 준법정신을 계몽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그런 계몽은 매우 중요하다. 공동의 행동준칙으로서 법질서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야말로 그들이 서로를 믿고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몽에 앞서서 따져봐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다. 법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국회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수량규제, 인허가 차별 입법 등 수많은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규제왕국’이라는 말도 들린다. 규제가 한국경제에 겹겹이 쌓여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규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에 필연적으로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여 개인의 경제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확립된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규제도 법이기에 그 존엄을 인정하고 지켜야한다고 시민들을 계몽해야 하는가? 그런 법을 강제로 집행하기 위해서 정부가 동원하는 공권력도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원래 법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유 재산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법이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법만이 존엄성을 갖는 이유가 있다. 인간들이 폭력과 강제를 자제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정신과 개인이 획득한 재산의 신성함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재산의 존중은 모든 도덕의 출발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것을 보호하는 법은 얼마나 존엄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사회주의의 노동절에 대항하기 위해 1957년 최초로 법의 날을 정한 이유도 노동자들의 불법 파업과 폭력 시위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이 침해되는 것을 우려하여 준법정신을 계몽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런 법만이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해당하고 개인이나 인간그룹이 자신의 목적이나 좋은 삶을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준다.

그 틀의 존재는 각처에 분산된 지식의 사용은 물론 지식의 성장도 가능하게 하여 모든 개인들에게 보편적 편익을 보장한다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런 법은 ‘정의의 법’이요 ‘자유의 법’이다. 유서 깊은 법치주의의 핵심 내용도 법이란 자유 재산 생명을 침해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내용이어야 하고 그런 법을 집행할 경우에만 공권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법은 그런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고 있다.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뒷받침하는 것도 법이요, 동네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실업을 야기한 백화점 영업시간 규제, 지역 평준화의 명분으로 도입했지만 일자리 창출만을 방해하는 수도권 규제, 이런 것도 법이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법이 타락했는가? 독특한 법사상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합리적인 법이란 입법자가 구체적인 집단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하여 만든 수단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이런 사상을 뒷받침한 것이 공법학(公法學)이다. 공법 사상은 다양한 시장규제를 통하여 사법(私法)을 철저히 유린해 왔다. 그런 사상의 영향을 강화시킨 것이 흥미롭게도 케인스주의와 후생경제학이라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법을 타락시킨 두 번째 요인은 국회에 제한없는 입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민주 사상이다. 국회 다수의 지지가 있으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지가 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원천이다. 그러나 그런 사상에서 비롯된 입법은 치명적이다. 관료·특수 이익집단들이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자기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규제를 정치권에 요구한다. 정치적 요구에 영합한 결과가 지역·계층·산업의 특수 이익을 보호하는, 그래서 법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형성되어 자유와 재산을 유린한다. 법 같지도 않으면서 법이라고 부르는 규제의 대량 생산이다. 그렇게 만든 법은 자유와 재산의 신성함을 무시한다.

법의 타락과 함께 자유와 재산을 존중하는 도덕도 상실된다. 진정한 법이 갖는 존엄성까지도 손상시키고 그런 법을 지키려는 정신도 갉아먹는다. 그래서 영국 법철학자 다이시가 지적하듯이 법이 타락해서 생겨나는 치명적 결과는 무법적 사회분위기, 다시 말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이다.

그런 분위기의 치명적 결과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불안정, 번영의 후퇴, 그리고 빈곤과 실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규제와의 전쟁’을 선언할 정도로 한국경제가 규제의 늪에 빠져 어려움에 처한 이유도 법의 타락 때문이다.

자유와 번영의 길을 위해서는 법의 타락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이게 ‘법의 날’이 우리에게 부여한 과제이다. 그런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자유 재산 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하여 무법적인 사회적 혼란이 초래되고, 그 결과 저성장, 고실업 그리고 빈곤층 확대의 심각한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고 우리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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