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공론화, 진보적 민주주의 타령, 사회분열까지 '닮은꼴'
   
▲ 조우석 언론인
대한민국 돌아가는 게 월남과 똑같다는 말이 나돈 건 어제 오늘이 아니다. 4년 전 당시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이 당 공식회의에서 월남 패망의 교훈을 언급한 바 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박창신이 "NLL에서 군사훈련하면 북이 포를 쏴야한다. 그게 연평도 포격"이란 망언을 한 뒤다. 

그런 발언이 패망 전 월남의 가톨릭 신부들의 행태와 뭐가 다르냐는 게 홍문종의 지적이었다. 상식이지만 월남 신부들은 1975년 자유 월남을 향해 공산 월맹이 총공격을 취해오자 "반독재 민중 공세를 환영한다"며 박수를 쳤다. 실은 박근혜 대통령도 재임 중 베트남 패망을 몇 번 언급했는데 국내외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렇게 말할까 싶었다.

하지만 좌익 언론이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그런 발언 자체가 냉전적 사고방식이라는 알량한 비판에 베트남 현정부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도 곁들였다. 뒤틀려도 너무 뒤틀렸는데, 이게 무얼 말해줄까? 저들은 은연중 통일 베트남이 통일 한국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반미급진좌파세력이 막가파식으로 사드반대선동을 벌이고 있다. 법치가 무너지고 공권력이 조롱 당하고 있다. 북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는데도 반미 구호를 외치는 지금의 대한민국 안보 현실이 극히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왜 좌파는 월남 패망 얘길 막으려들까

자유민주냐 공산주의냐에 상관없이 이 나라가 연방제-연합제 방식으로 합쳐지길 오매불망 기원할텐데, 그만큼 세상이 무섭게 변했다. 그 훨씬 이전, 그러니까 개화기 시절에도 월남 망국의 교훈은 큰 화두였다. 한일합방 전인 1905~6년 양계초의 <월남 망국사>이 개화파 사이에 널리 읽혔다. 월남이 식민지로 전락했듯이 조선이 그렇게 될 것을 극력 경계했던 것이다.

그래저래 우리와 월남의 근현대사는 닮은꼴이지만, 자유월남의 패망을 오늘의 대한민국이 반복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가 공산주의에 먹히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티우 대통령이 이끌던 자유 월남보다 현 대한민국이 취약하다는 걸 아는 이도 드물다.

북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달으며 사이비 해결책으로 평화협정 체결이 성큼 떠오른 지금 그게 더 명백한데, 우선 북한전략이 옛 월맹과 판박이다. 오래 전부터 저들이 평화협정에 목매는 건 월맹의 모델을 적용하려는 전략이다. 실은 자유 월남보다 한국이 불리한 점도 있다. 평화협정에 한국 참여를 한사코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가 그렇다.

파리평화협정에 73년 서명한 당사국은 월맹-월남-미국 등 3자(者)였지만, 미북평화협정 논의 땐 한국을 아예 배제하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다. 평화협정 체결 전의 국내외 상황도 놀랍도록 닮았다. 북한이 핵-ICBM을 가졌다는 현상을 인정하자는 파가 미국 조야에 존재하듯이, 60~70년대 당시 미국에선 반전 여론이 극렬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한국이 '만악의 근본' 종북세력 앞에 절절 매듯 자유 월남도 '좌익의 천지'에서 꼼짝을 못했다. 월남의 좌익, 그게 누구였겠는가?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자들이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야당 지도자, 가톨릭 신부, 대학생이었다. 

사회 지도부가 그러니 월맹이란 명백한 주적(主敵) 앞에서도 시민들은 평화의 신기루에 취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정치스타가 대선 후보인 인권 변호사 쭝딘쥬다. 그는 마구잡이로 떠들어댔다. 키신저-레툭토 사이의 73년 파리평화협정도 쭝딘쥬가 이렇게 바람을 잡은 탓이다.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양심수'라고 지칭하며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베트콩과 운동권-종북세력의 같고 다른 점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시체가 산이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월맹과 대화를 통해 평화를 가져오겠다." 개 돼지 같은 월남 민중은 여기에 현혹됐다. 그리곤 반공주의자들이 "전쟁을 원하는 자는 반평화 미제 사대주의자"라며 테러를 했다. 극렬했을 땐 한 해 1000명 가까운 우익을 처단했다. 반면 "양키 고 홈!"이 하늘을 찔렀다.

그게 옛 월남 얘기인지, 대한민국 자화상인지 구분이 안 가니 소름이 돋을 판인데, 월남 베트콩과 대한민국 운동권-종북세력과의 맞비교도 해야 한다. 베트콩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믿는 무장세력이지만, 소총을 든 게 전부였다. 그에 비해 한국의 운동권-종북세력이 훨씬 강력하다.  

운동권-종북세력은 노동계-학계-문화계-언론계-법조계-정치계를 거의 장악했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군(軍) 조직 정도일까. 이런 최악의 구조와 환경에서 정점으로 치닫는 북핵 위기가 어디로 향할까? 그게 나는 못내 두렵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42년 전 패망했던 월남과 똑 같다는 경고 자체를 좌익들은 틀어 막으려든다. 그래도 할 말을 해야 한다.

이른바 통일 이후 베트남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1000만 명 넘는 월남 사람들이 숙청-재교육을 포함해 정치적 불이익을 받았다. 15만 명 보트 피플도 발생했다. 그렇게 탄생한 현 공산 베트남이 정통성이 있다는 말도 완전 헛소리다. 베트남은 대한민국 국민소득의 10분의 1도 안 되며,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 자유민주라는 근대 이후 인류보편의 가치에서 멀다. 

결정적으로 호치민의 DNA를 가진 베트남 공산당과 북한의 조선공산당은 또 다르다. 그래도 인간적 온기를 가진 호치민의 베트남과 또 달리 북한은 반인류, 반문명의 미친 체제다. 그들과 무슨 평화협정이란 말인가? 미몽(迷夢)도 이런 미몽이 없는데 용기 있게 "노!"라고 말하는 이도 드물다. 

세밑, 안타깝지만 또 하나의 냉정한 진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수준에서 결정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난 세기 가장 빠르게 일어났던 대한민국은 가장 빠르게 몰락하는 나라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내년 한 해가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의 분수령이 되리라는 점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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